검찰 살리는 길은 '정면돌파' 뿐

이명재號 검찰, 물갈이성 대규모 인사태풍 예고

위기의 검찰이 일단 기회를 잡았다. 이명재 신임 검찰총장의 임명에 대해 여야가 잘된 것이라고 얘기하고 언론도 호의적인 반응이다. 새 총장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얘기다. 이는 거꾸로 말하면 실망이 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그의 책임이 막중하다.

국민의 기대를 의식한 이 신임 검찰총장은 취임식에서 "앞으로 일체의 부당한 외부의 영향력으로부터 검찰권을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또 "인적 개혁은 물론 검찰 전반에 관한 제도적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39년만에 처음으로 검찰외부에서 발탁된 이 총장은 취임식에서 "많은 국민은 검찰이 이른바 정치적 사건 등 중요사건에서 특정 정당이나 정파에 유리하게 또는 여당과 야당에 상이한 잣대를 갖고 수사한다고 믿고 있다"고 반성을 촉구하면서 "외부에 영향받지 않는 공정하고 불편부당한 검찰권 행사로 국민 신뢰를 회복하겠다"고 강조했다.


게이트 수사라인 문책, 수사팀 재구성

국민신뢰 방안으로 공정과 청렴, 명예를 든 이 총장은 "우선 지금까지 검찰을 옥죄고 있는 이른바 각종 게이트관련 의혹 수사를 한점 의혹없이 깨끗하고 명예롭게 마무리 하겠다"고 말했다.

이같은 발언은 나아가 검찰의 위상을 실추시켰던 각종 게이트 사건 수사라인에 대한 대대적인 문책성 `물갈이' 인사와 수사팀 재구성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도 해석돼 조만간 있을 인사에서 태풍이 몰아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 총장은 취임후 가진 첫 기자간담회에서도 각종 의혹사건에 대한 검찰수사가 미진했다는 의견이 많다는 지적에 대해 "(수사팀이)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을 묻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수사미진론이 제기되고 있는 대표적인 사건은 `이용호 게이트' 수사외에 국가정보원과 정치권의 연루 의혹을 제대로 파헤치지 못해 재수사가 진행중인 `진승현 게이트'.

검찰 내부에서는 이들 사건의 처리와 관련, 차장급 이상 고위 간부 4-5명이 우선 대상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내달로 예정된 정기인사때 수사 실무를 책임진 부장급 간부 3-4명에 대한 문책론도 나돌고 있다.

이용호씨 사건의 경우 신승남 전 총장의 동생 승환씨를 몇시간동안 소환 조사한 뒤 무혐의 처리해 `봐주기 수사'라는 의혹을 산 것을 비롯, 이씨의 정ㆍ관계로비의혹에 대한 수사미진으로 결국 특별검사 수사를 불렀다는 지적이다.

진승현 게이트는 2000년 당시 진씨의 금융비리 수사과정에서 눈덩이처럼 불어난 진씨의 정ㆍ관계 로비의혹을 규명하지 못한 채 사건을 종결했다가 결국 재수사 결과 김은성 전 국정원 2차장, 정성홍 전 국정원 과장, 신광옥전 법무차관의 연루 사실이 드러난 데 대해 책임추궁이 예상된다.

2000년에 있은 `정현준 게이트'수사 역시 김형윤 전 국정원 경제단장이 이경자 동방금고 부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진술을 받아놓고도 수사를 미뤄 `봐주기 수사'라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차정일 특별검사팀으로 부터 서면질의서를 받은 현직 검사 6명도 특검결과에 따라 징계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이 총장은 기자간담회에서 "특검결과에 따라 대응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총장은 검찰 개혁과 관련해서는 인적쇄신과 제도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총장은 "검찰인 각자의 자질과 인격, 능력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조직 역량을 극대화하는 인적개혁, 수사역량 강화와 업무의 능률을 높이기위한 검찰전반에 관한 제도적 개혁이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밝혀 능력 본위의 공정한 인사와 업무 효율화를 위한 조직개편 추진을 예고했다.


인사시스템에 대한 개혁작업에 착수

이 같은 분위기는 벌써 나타나고 있다. 법무부는 검찰 간부 인사에서 비리관련자와 무능력 인사에 대한 문책조치와 함께 능력에 따른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등 인사시스템 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작업에 착수했다.

법무부는 검사장급 이상 인사에서 비리 관련자 등은 승진에서 제외시킬 방침이다. 또 인사와 관련, 외부청탁이 들어올 경우 해당자에게 경고조치하고 인사상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최근 검란(檢亂)의 근본원인이 지연ㆍ학연에 따른 무능력ㆍ부적격 인사의 요직 독점과 정실인사에 있다고 판단, 능력과 자질 청렴도에 기초한 능력위주 인사를 단행한다는 방침”이라며 “이를 위해 검사 개개인에 대한 철저한 평가와 인적 검증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먼저 곧 있을 고검장급 승진인사(4명)에서 승진대상자들중 최소 1명을 탈락시킬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사시13회 5명중 1명은 승진을 하지 못하고 일선 지검장으로 남거나 옷을 벗을 공산이 높아졌다. 또 검사장 인사에서도 연공서열 위주의 나눠먹기 대신 확실한 신상필벌 인사가 단행될 전망이다. 검사장 승진 대상자인 사시 17,18회중 개인비리나 부실수사 관련자는 탈락할 가능성이 크다.

그 동안 고위직 인사에서 능력이나 자질과는 상관없이 지연이나 학연 등에 의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따라서 이에 대한 전면적인 수술 없이는 검찰개혁이 불가능하다는 게 검찰 수뇌부의 판단이다.

고위층을 통해 인사청탁을 하는 검사에 대해서는 인사기록에 기재하고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승진ㆍ전보 인사에서 철저히 불이익을 주겠다는 방침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2년 전부터 외부의 인사청탁 내역을 전산기록에 입력, 관리해왔다”며 “인사청탁 검사에 대해서는 예외 없이 경고조치를 취해 청탁ㆍ정실ㆍ연줄에 의한 인사를 완전히 뿌리 뽑을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검사장급 이상은 물론이고 일선 지청장과 지검 부장급 등 중간 간부 상당수가 인사태풍을 맞을 전망이다. 개인비리나 부실수사 관련자, 능력부족 인사는 대부분 이번 인사에서 한직으로 옮길 가능성이 높아졌고 중간 간부의 절반 이상이 자리를 옮기는등 인사폭도 사상 최대규모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심재륜(58ㆍ사시7회) 전 부산고검장이 18일 퇴임식에서 “검란(檢亂)의 책임자는 정부 최고책임자”라며 김대중 대통령을 비판한 데 대해 대부분의 검사들은 “당연히 할 말을 했다”고 지지를 보내면서 그의 ‘쓴 소리’가 후속인사에 반영되기를 희망했다.

언론에 퇴임식 기사가 보도되자 퇴임사 전문을 구하느라 부산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던 검사들 중에는 “이명재 선배가 총장으로서 할 수 없는 말을 심선배가 대신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내부에서 이 총장에 거는 기대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원칙과 정도’ 지키는 구성원들의 자세 필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할 것은 검사 개개인의 마음자세. 검사들의 올바른 마음자세는 17일 사표를 내고 30년간의 검사생활을 마감한 김경한 전 서울고검장(사시 11회)의 퇴임사가 잘 말해주고 있다.

“과연 나는 검사생활을 하면서 필요할 때 마다 검사로서의 용기와 정의감을 발휘하였던가? 혹시 의욕적 요소와 타의에 후둘려 바른 길을 버리고, 내키지 않는 그릇된 길을 선택한일은 없었던가? 과연 나는 말로는 원칙과 정도를 말하면서 실제로는 그 뒤안길에서 현실에 안주한 일은 없었던가?

혹시나 강자리 이익에만 봉사하고 가난한자, 소외된 자, 기타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억울한 사연을 외면한 일은 없었던가? 과연 나는 실체적 진실 발견에 대한 인내와 끈기를 지니고 있었던가? 과연 나는 검사라는 직업이 본래 외로울수 밖에 없다는 속성을 잊어버리지는 않았던가?

그 외로움을 견뎌내지 못한 나머지 마음의 형평과 판단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는데 소홀히 했던 일은 없었던가? 혹은 그들로부터 정당치 못한 혜택을 받았던 일은없었는가?”

자신이 스스로 던진 이들 물음에 대해 김 전 고검장은 “저는 이러한 일이 없지 않았음을 부끄럽게 여깁니다”고 답했다.

그가 후배검사들에게 당부한 것은 실천과 행동이 따르는 ‘원칙과 정도’다.

배성규 사회부기자

입력시간 2002/01/23 15:02


배성규 사회부 veg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