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괴담이 피를 말려요"

꼬리 문 소문에 투자심리 위축 등 엄청난 타격

최근 잇따라 터진 벤처게이트로 벤처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감사원, 검찰, 금융감독위원회, 정보통신부 등 정부기관들이 총동원돼 벤처비리를 뿌리뽑겠다고 나선 이후 벤처의 본원지라고 할 수 있는 서울 강남의 테헤란밸리는 꽁꽁 얼어붙었다.

벤처업계에 대한 정부의 지원 정책이 위축되고 투자업계의 투자손길도 끊기면서 이래저래 자금여력이 없는 벤처기업들이 이대로 무너지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벤처업계의 떠도는 벤처괴담들이다. 대표적인 것이 사정대상리스트. 사정대상 리스트는 정부에서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일부 벤처기업들을 대상으로 만들어 놓은 죽음의 명부로 꼽힌다.

업계 입소문에 따르면 이 리스트에 오른 기업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름만 들으면알 수 있는 유명 벤처기업들이다. 보안업체, 생체인식기술업체, 인터넷복권업체와 온라인게임업체, 전자상거래업체 등 수십개 업체가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줄 잇는 게이트, "정치권과 연루" 소문

특히 리스트의 주인공들은 정계, 재계 및 언론계 유력자들에게 주식을 제공했을 것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대부분이 해당 기업들의 최고경영자(CEO)가 성공한 벤처기업인으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거나 코스닥에 등록이후 주가가 예상보다 더 뛰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괴담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모 벤처기업 CEO의 경우 정부 공식행사에 참석해 수상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해외로 돈을 빼돌리고 도피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또 다른 벤처기업인은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는 소문이 돌아 지인들로부터 사실여부를 묻는 전화에 시달리느라 업무를 못 볼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벤처괴담 때문에 가장 큰 괴로움을 겪는 것은 당연히 해당 벤처기업인들이다. 모인터넷업체의 CEO는 “창투사의 투자를 앞둔 시점에 정치권과 연루됐다는 근거없는 소문이 돌아 투자가 보류됐다”며“가뜩이나 어려운 시점에 말도 안되는 소문으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 같은 소문에 시달리다 못한 모 전자상거래 업체 사장은 최근들어 대인기피증에 가까울 정도로 사람 만나는 것을 아예 꺼리고 있다. 만나봐야 좋은 소리 안나오니 차라리 안만나겠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이 같은 벤처괴담은 벤처 업계 전체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모 인터넷 경매업체직원은 “자신이 몸 담고 있는 기업이 벤처괴담과 아무 상관이 없는데도 주변에서 괜찮냐고 안부인사를 물어온다”며“벤처괴담의 주인공들 뿐만 아니라 벤처업계 전체가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투자자들도 피해를 보기는 마찬가지. 모 보안업체의 IR담당 직원은 “주가의 영향이 없겠느냐는 투자가들의 전화를 하루에도 여러통씩 받고 있다”며 “벤처괴담이 이제는 일반인들에게까지 확산돼 불안심리를 가중시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덩달아 벤처캐피털들도 홍역을 앓고 있다. 최근 검찰에서 벤처캐피털들의 투자심사역과 벤처기업 사이의 비리나 유착여부 수사에 들어감에 따라 대부분의 벤처캐피털들이 몸을 사리는 분위기이다. 현재 관련업계에서는 중소기업청에 등록돼 있는 148개 벤처캐피털 가운데 투자 규모가 상당한 10여군데 벤처캐피털이 수사 물망에 오르내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쟁업체 죽이기로 변질

상황이 이처럼 급박하게 돌아가자 현재 진행중인 투자 상담마저 위축되는 분위기이다. 모 벤처캐피털업체의 관계자는 “각종 벤처게이트와 정부의 조사의지가 발표되면서 전체 분위기가 얼어붙고 있는데 어떻게 투자상담이 진행되겠느냐”며 “벤처괴담은 경기 회복의 기미가 보여 기대를 갖는 벤처기업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각종 벤처괴담으로 벤처기업에 대한 신뢰성은 떨어질대로 떨어졌다”며 “더욱이 어수선한 분위기를 틈타 업체들 사이에도 일부러 경쟁업체를 죽이기 위한 근거없는 소문을 퍼뜨리는 경우마저 있어 부작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관련업계에서는 여기에 정부의 벤처지원 정책마저 위축된다면 거시적인 시각에서 국내의 벤처산업은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인터네티즈의 김종범 이사는 “머니 게임과 무관하게 기술개발에만 매달려온 알짜배기 벤처기업들은 정부의 각종 지원정책이 위축되거나 중단된다면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며 “정부에서는 지원정책을 축소할 게 아니라 옥석을 가리는 일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 이사는 “만약 지원책의 축소로 벤처기업이 잇따라 도산할 경우 국가 경제 및 실업문제에 미치는 파장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문제가된 기업들 때문에 벤처업계 전체가 책임을 지는 분위기로 가서는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그래텍의 배인식 사장은 “벤처업계에서도 이런분위기를 자성과 검증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라며 “모든 벤처기업인들이 불안해 하기보다는 오히려 참다운 벤처정신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벤처업계에서는 스스로 자성과 자정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일부 사이비 벤처기업인들이 조장한 비리로 건실한 벤처기업마저 비리와 부정의 온상으로 비쳐지고 있는 현실을 자정의 기회로 삼겠다는 것이다. 업계는 아울러 정부의 벤처기업 육성정책이 훼손돼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직원 사기진작 위해 안간힘

이런 가운데 일부 벤처기업들은 나름대로 위축된 직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애쓰고 있다. 이들은 주로 재교육과 포상 등의 방법으로 직원들의 사기 진작에 나섰다.

온라인 게임업체인 CCR은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하고 건강관리나 외국어학습을 위해 일부 비용을 회사에서 부담하고 있다.

전자화폐 개발업체인 이코인은 우수사원을 뽑아 해외여행을 보내주고 있으며 NHN은 직원들의 취미활동을 위해 동아리 운영비를 지급하고 있다.

또 게임개발업체인 태울엔터테인먼트와 온라인 솔루션 개발업체인 그래텍도 주5일 근무제와 매출확대에 따른 연동 상여금지급 계획 등을 도입했다.

이동통신 중계기 개발사 위다스는 매월 마지막주 금요일에 회사 근처 맥주집에서 `호프데이'를 열어 맥주를 무제한으로 마실 수 있는 이벤트를 열고 있다.

바닷가재 요리 전문사이트 바이킹앤닷컴은 직원의 생일에 바닷가재 요리사 출신인 김중만 사장이 직접 바닷가재 요리를 만들어 생일 파티장으로 배달해 준다. 이 회사는 또 미혼인 직원이 결혼정보업체의 회원으로 가입하면 수십만원에 달하는 가입비를 회사에서 대신 내준다.

최연진경제부기자

입력시간 2002/01/23 15:37


최연진경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