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과 건강] 식탁위에 녹색혁명- 채식

"채식의 왕도"는 잘못된 인식, 사람따라 식사법 달라

간단한 논리 문제 하나: ‘육식은 건강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다’라는 명제의 역은? 답:생식과 채식은 건강을 위하고 세상을 구한다.

21세기 초입 한국, 식탁 위 녹색 혁명이 삶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고기를 탐하지 않는다. 극소수 기아 지역을 뺀다면 먹을 게 넘쳐 나 탈인 21세기 인류, 이제 채소와 생식(천연식)에서 탈출구를 찾고 있다.

최근 일본을 중심으로 세계로 퍼지고 있는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이 바로 맛깔스런 채식 요리 덕분이다. 특히 최근의 퓨전 바람까지 불어 김치가 새롭게 각광 받는 것은 물론, 두부 아이스크림, 두부 피자, 두부 케익 등 두부 상품까지 속속 선보이고 있다.


문전성시 이루는 채식전문식당

17일 오후 6시 서울 강남구 포이동 J&J 채식 뷔페. 저녁 식사 시간에 맞춰 문을 연 뒤 20분도 채 안 돼 60석이 찬다. 무농약 백미, 현미, 밀, 콩단백 등으로 만들어 진 음식들이 맛깔스럽게 치장하고 사람을 기다린다. 국내 최대 규모의 채식 전문 뷔페이다.

월남 태생 미국인 채식주의자 수마 칭 하이(53)의 이름을 딴 세계적 채식 뷔페의 한국점인 이곳은 여타 채식 뷔페가 따라올 수 없는 다양한 메뉴가 자랑. 다른 곳은 메뉴가 16~20가지이지만, 이곳은 35가지를 헤아린다.

최근 EBS의 ‘문화 교실’ 등 TV의 채식 관련 방송 강사로도 이름 나 있는 김재혁 주방장의 손맛 덕분이다.

고기맛에 길들여진 요즘 어린이를 위한 채식은 겉모양뿐 아니라 맛까지 고기 뺨친다. 고기 씹는 맛을 내는 글루텐 가루로 만든 밀고기와 콩으로 만든 소고기(채식 스테이크), 녹말물에 푹 담근 채식 닭고기와 채식 탕수육 등이 어린이들을 부른다.

콩단백 음식은 맛은 물론 저작감까지 햄과 흡사하다.

아이들이 찡그리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것은 밀가루에서 단백질만 뽑아 낸 글루텐이내는 육질의 저작감(씹는 맛) 덕분이다.

밀가루 1포(25㎏)를 주방에서 특수 공법을 거쳐 3시간 쪄서 뽑아 낸 10㎏의 밀가루 단백분(紛)이 그것. 콩단백 탕수육, 콩 불고기, 글루텐밀까스 등 최고 인기 메뉴의 원료다. 이렇게 만들어진 채식 요리들을 마음껏 즐기는데 필요한 돈은 어른이 1만2,000원, 어린이가 7,000원.

요리 가짓수와 함께 여타 채식 전문점과 뚜렷이 구분되는 특징이 이곳엔 하나 있다. 파, 마늘, 양파 등의 양념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 그것들은 육식 친화적 양념이란 이유에서다.

특히 1월 11~13일 SBS-TV가 연속 방영했던 ‘잘 먹고 잘 사는 법’ 이후로는 밖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손님을 보기가 예사다.

이날 푸른생명 한국채식연합의 대표 이광조(35ㆍ정진학원 강사)씨도 이현정(35ㆍ보광약국약사)씨 등 5명의 회원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1999년 10월 1일 대학로에서 열렸던 ‘세계 채식인의 날’ 행사를 신호로 발족한 발족한 국내 첫 채식동호인 모임이다.

이 대표는 창립 이후 줄곧 회장직을 맡고 있으면서 단행본 ‘채식혁명’의 원고를 집필중이다. 서울시립대 원예학과 대학원에서 식물유전 분석학 등 첨단 과학으로 무장한 그는 16일 하루만도 교통방송과 불교방송 등 두 군데서 인터뷰를 했다. 현재 전국에 10개의 지부를 두는 등 일반인들에게 빠른 속도로 알려지고 있다.


곡물 두가지, 채소 세가지 이상 먹어야

채식하는 요령이 있다면? “곡물은 반드시 두가지 이상을 잘 쪄서 먹으라. 이것이 주요리라면, 부요리격으로 세 가지 이상의 채소와 한 가지 이상의 해조류를 곁들여야한다.” 이씨의 경험 법칙이다.

이 단체는 올해를 채식 확산의 호기로 보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 해 오고 있는 ‘5천인 운동’이 바로 올해를 겨냥한 것. 채식연합사무실을 마련, 확보중인 방대한 자료를 체계화하고 밖으로 알리는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그들의 사이트(www.vegetus.dr.kr)에는 성금 기탁자의 신상이 명시돼 있다. Vegetus란 ‘건강한, 온전한, 활기찬‘이란 뜻의 라틴어. 현재 500여만원의 성금이 확보돼 있다.

이 단체는 98년 PC 통신 하이텔에서 ‘하이텔 채식 소모임’ 동호인 10명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개인이 채식의 신념을 밀고 나가기에는 벅찼다. 일과 후동료들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육류 안주를 거부하는 그를 두고 “너 때문에 안주를 제대로 못 시킨다“는등 지청구가 따랐다.

혼자서는 채식 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씨가 하이텔상의 정신과학동호회에 채식 소모임을만들자고 제안 한 것.

현재 회원수는 하이텔과 천리안 합쳐 모두 1,800명. 특히 최근 1주일 동안 400명이 늘어나 이 소모임 회원들을 기쁘게 하고 있다. 보름전에는 사이트 조회수가 200명선이었으나 지금은 1만명을 넘어섰다. 폭주하는 조회자를 감당 못 해, 16일은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다.

이들이 지적하는 또 하나의 현안은 학교 단체 급식의 채식이다. 교육청에 일반식과 채식, 두 가지 메뉴로 병설 급식할 것을 제안했던 이들은 ‘현실로서는 힘들다’라는 답을 받기도 했다.

이들은 대만은 군대에서도 채식을 배급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재 학생에게 채식을 급식하는 곳은 제 7안식일 교회 소속 삼육교회 산하 학교와 부산의 명상 요가 단체인 ‘이난다 마르가’ 등 극히 제한돼 있다. 본질적으로 나아가자면 채식이란 결국 인생과 세계에 대한 태도이다.

채식주의자는 노총각이 많다. 소개 받은 남자가 스테이크 요리에서 고기에 손을 대지 않는 것을 보게 되는 여자들은 ‘피곤한 사람’이라 생각한다는 것. 교제하면서 이해 조정해 나가는 과정이 꼭 필요한 것은 그래서다. 최근 채식주의자가 늘면서 채식주의자 간의 커플도 종종 생겨나고 있다.


고기, 반찬으로 소량섭취하면 문제 안돼

현재 전국의 채식 전문 식당은 인사동의 ‘산촌’ 등 서울 지역 5곳 등 모두 17곳이다. 채식 재료 전문점으로는 베지러브, 채식바다, 베지푸드 등 독립 업소를 비롯, 갤러리아 백화점 등이 있다.

또 상반기 중으로는 F 채널(케이블 방송)의 채식요리 전문 프로 ‘식물나라 생생쿡’은 그간의 방영분을 묶은 채식 요리책을 선보일 예정이다.

‘뉴 스타트 채식 식이요법’의저자 송숙자(70ㆍ채식 식이요법 상담실 소장)씨는 “식물성 기름까지 배제한 자연 상태의 음식, 쌀 아닌 현미, 콩을 통째 갈아 만든 두유인 전(全)두유가 진정한 채식”이라며 채식 근본주의를 대변한다. 진정한 채식은 입맛에 맞기 힘들고 식생활이 제한돼, 큰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방 차병원 전세일 원장은 “생식도 잘 못 하면 오히려 영양 실조 등 위험이 있다”며 “채식과 육식을 골고루 섞어서 천천히 씹어 삼키라”고 강조한다.

고기는 주식이 아니라 반찬으로, 즉 소량으로 천천히만 먹는다면 매끼 먹어도 전혀 상관 없다는 것. 최근 음식에 대해 불어닥치는 바람과 관련, 전 원장은 “‘잘 먹고 잘 살자’가 아니라 ‘제대로 먹고 제대로 살자’가 돼야 한다“며 걱정했다. 모든 사람에게 다 들어 맞는 식사법이란 없다는 지적이다.

장병욱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2/01/23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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