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현의 영화세상] 몸, 그 자체도 연기다

배우는 먼저 몸으로 말한다. 몸, 자체가 연기의 시작이다. 물론 얼굴도 포함된다. 아주 멋진 청춘 남녀의 사랑을 그린 멜로영화의 주인공의 얼굴이 누가 봐도 못생겼다고 하자.

그러면 관객들은 그 사랑을 아름답거나 환상적으로 받아들이겠는가. 얼굴이야 타고난 것이니까 어쩔 수 없다. 요즘 여배우들은 얼굴도 맘대로 뜯어고친다. 단지 더 예쁘고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몸으로 보여주는 연기’라는 말은 그런 ‘예쁜 얼굴로 바꾸기’가 아니다. 1차적인 이미지로 자신이 맡은 역할을 보여주는것이다.

배가 불룩하게 나온 20대 청춘, 허리가 굵어진 복서, 얼굴에 기름기가 줄줄 흐르는 가난한 노동자, 여자처럼 유약해 보이는 악당은 우선 그 외모 때문에 영화의 사실성을 반감시킨다. 단순히 직업에 따른 보편적 이미지만 아니다. 영화 속 캐릭터에 맞는 몸이 있다.

영화 ‘친구’에서 고교생처럼 보이기 위해 양 볼이 볼록해지는 주사까지 맞았던 유오성. 그가 이번에는 마르고 강단 있는 몸을 위해 6개월 동안 하루 5시간씩 체력단련과 근육 만들기를 했다.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다. 곽경택 감독의 새 영화 ‘챔피언’을 위해서다.

우선 몸부터 복서가 되야 김득구의 삶과 사랑과 비극과 꿈을 감동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매일링에서 대결하는 장면을 찍으면서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로 녹초가 되곤 한다고 한다. 그럴수록 그가 눈빛을 날카롭게 세우며 감독에게 하는 말. “내생각해서 그냥 넘어가면 절대로 안돼!”

혀를 내두를 정도로 배역을 위해 몸 혹사하기에 철저한 배우로는 설경구도 유오성 못지않다.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에서 그는 88㎏의 거구(?)가 됐다. 게으르고 무식하고 뻔뻔한 형사를 위해 불과 한달 만에 무려 20㎏을 늘렸다.

평소 2배 이상을 먹고 가능하면 몸을 움직이지 않는 ‘무식한’ 방법을 썼다. 그리고는 촬영이 끝나자 곧바로 정반대 방법인 물만 먹고 쓰러질 때까지 운동하기로 20㎏을 빼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에서 악독하고 깡마른 전과자가 됐기 때문이다.

‘공공의 적’을 보고 또 하나 놀란 것이 있다. 바로 이성재의 모습. 살인범으로 나오는 그의 강렬한 이미지는 설경구와 비교해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얼굴표정과 목소리만 터프했던 ‘주유소습격사건’ ‘신라의 달밤’과는 완전히 달랐다. 강우석 감독의 말을 빌면 “설경구에게 밀리면 죽는다는 각오로 탄탄하게 몸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덕분에 ‘공공의 적’은 설경구의 원맨쇼가 되지 않고 멋진 캐릭터 영화가 됐다.

송강호도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에서 아들을 유괴한 범인에게 복수하는 처절하고 냉혹한 인물이 되기 위해 10㎏을 감량했다.

김석훈과 박상민은 ‘튜브’(감독 백운학)에서 테러범과 그를 쫓는 형사를 위해 악전고투 끝에 몸무게를 줄여 날렵해졌다. 남자배우 뿐만이 아니다. 류승완 감독의 ‘피도 눈물도 없이’를 위해 전도연은 액션스쿨에서 근육을 탄탄하게 만들었다.

배우의 몸은 단순히 그럴듯하게 느껴지도록 하는 시각적 효과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 몸 만드는 과정을 통해 배우는 인물과 작품의 성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때문에 여배우들이 예쁘게 얼굴을 고치는 것과는 다르다. 좋은 배우는 잘 흉내내기로만 될 수는 없다. 가장 일차적인 연기인 몸부터 영화 속 인물로 들어가야 한다. 유오성 설경구 이성재 전도연 등이 스타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대현 문화과학부 차장

입력시간 2002/01/23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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