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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일본(94)] 가부키(歌舞伎)

[재미있는 일본(94)] 가부키(歌舞伎)

‘오닌노란(應仁の亂:1467~1477년)’ 이래 일본은 무사들의 패권 다툼으로 오랜 전란의 시대를 맞는다. 서민들에게는 그저 지겨울 뿐이었던 전란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그 후계자인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전국 통일로 잦아 들었다.

이어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1603년 에도(江戶·도쿄)에 바쿠후(幕府)를 수립, 평화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오랜만의 평화를 맞아 상공업의 흥성과 함께 대중 예술이 꽃피기 시작한 이때 서민들은 ‘이즈모노오쿠니(出雲の阿國)’라는 30세 전후의 여성 연예인에 열광했다.

당시 서민들, 특히 여성은 성이 없었다는 점에서 현재 시마네(島根)현 동쪽을 가리키는 이즈모에서 온 '오쿠니'란이름의 여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쿠니의 춤은 내용과 형식면에서 완전히 새로웠다. 발의 이동과 돌기를 중심으로 하는 ‘마이(舞い)’와 손발과 몸 전체의 움직임을 중시하는 ‘오도리(踊り)’로 나눠지는 일본 전통 무용의 분류상 오도리에 가까웠다.

그러나 해괴망측할 정도인 새로운 몸동작을 보인 데다 관객을 끌어 내 상대역을 시키는 등 전통 오도리와도 크게 달랐다. 이 새로운 춤을 사람들은 ‘가부키오도리(傾き踊り)’라고 불렀다.

튀는 옷차림이나 걸음걸이, 행동거지로 보통 사람과는 거리가 먼 사람을 가리킨 ‘가부키모노(傾き者)’라는 유행어에서 나온 말이다.

‘가부키’는 '한쪽으로 기울다'를 뜻하는 ‘가타무쿠(傾)’의 고어 '가부쿠'의 명사형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균형 감각상 한쪽으로 살짝 기운 괴짜라는 뜻이었다. 한편으로 강한 자기 주장이나 개성에 바탕한 '첨단·전위'의 뜻도 함축했다. 현대에 들어 와 사회주의 계열의 문학·예술이 강한 주의·주장을 담았다는 이유에서 ‘게이코(傾向)’라고 불렸고, 우리도 그대로 갖다 썼던 것과도 통한다.

오쿠니가 창안한 전위 무용은 이내 다른 연희집단으로 번져 갔으며 각종의 전통 연희 형식을 결합한 종합 예술로틀이 짜여져 갔다. 이 새로운 종합예술은 노래와 춤, 기술이 하나로 뭉친 연극이란 뜻으로 ‘가부키시바이(歌舞伎芝居)’라는 이름이 붙었고 나중에는 '가부키'라는 줄임말로 불렸다.

여성 연희집단의 전유물이었던 가부키는 애초에 오쿠니의 춤이 그랬듯 대중의 관능을 강하게 자극했다.

또한 떠돌이 매춘 집단과의 구별이 모호했던 전통 연희집단의 행태상 풍기 문란이 커다란 사회적 문제가 됐다.

이를 이유로 바쿠후가 1629년 가부키 공연을 금지하자 이번에는 여성 대신 미소년이 ‘야쿠샤(役者·배우)’로 등장하는 ‘와카슈(若衆) 가부키’가 성행했다. 이 또한 남색(南色)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어 1652년에 금지령이 내렸다.

이듬해 바쿠후는 성인 남자만으로 외설성이 없는 작품을 공연한다는 조건을 달아 금지령을 철회했다. 그것이 ‘야로(野郞)가부키’의 출발점이며 남자들이 모든 배역을 맡아야 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고안된 것이 여성역인 ‘온나가타(女方)’, 또는 ‘오야마(女形)’이다. 이는 현재까지 가부키의 중요한 특징을 이루고 있다.

최근 여성의 가부키 진출 허용론이 일고 있고 실제로 지방의 소규모 공연에서는 일부 여성 배우가 선을 보이기도 했다.

이는 어디까지나 아이들에 의한 소년 가부키처럼 이벤트 성격이 강할 뿐 가부키 전용극장인 도쿄(東京) 히가시긴자(東銀座)의 가부키자(歌舞伎座)나 신바시엔부조(新橋演舞場) 등 중심 무대에서 금녀의 전통은 흔들리지 않고 있다.

가부키의 이미지는 극히 화사하고 선명하다. 무대 장치와 의상이 그렇고 배우들의 얼굴 화장도 최대한 색채를 강조한다. 그 색감이 갓칠한 단청같아 다소 빛바랜 단청을 높이 치는 우리 미감각으로 보자면 가상 현실 게임을 보듯 환각을 느낄 정도이다.

과장된 색감으로 비현실적 공간을 연출, 관객을 일상에서 끌어내 환각과 해방감을 안기는 것이 가부키의 진정한 미학일 수도 있다. 가부키의 화려함은 푸치니의'나비부인' 등 서양 오페라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엄격하게 고정된 양식성도 가부키의 중요한 특징이다. 배우의 화장과 의상, 몸짓 하나하나에까지 엄밀한 약속이 존재한다.

0대사와 동작도 과거의 공연을 박제했다가 다시 풀어 놓은 듯 일정하다. 피아노선을 이용해 하늘을 나는 등 현대적 기술을 이용한 '슈퍼가부키'가 선보이는 등 변화 시도가 잇따르기도 하지만 가장 많은 관객을 끌어 모은 가부키자의 전통 가부키는 언제나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가부키주하치반(十八番)'을 비롯한 주요 작품의 주역을 대대로 세습한 것도 전통 고정의 한 요인이다.

황영식 도쿄특파원 yshwang@hk.co.kr

입력시간 2002/01/30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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