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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들여다보기] 법치와 민주

[미국 들여다보기] 법치와 민주

온갖 게이트로 고국의 정국이 어수선하다. "정의는 세워져야 한다"라는 라틴말로 된 법어를 배우면서 법대 4년을 졸업하고 사회악을 일소하겠다는 신념으로 공직에 몸을 담아 30년 이상을 보낸 다음에 마침내 검찰 총수에 앉은 사람이 동생 때문에 옷을 벗었다.

비리에 관련된 사람들의구명을 위해 형님의 권세를 빌려 행세한 것이 밝혀져 옷을 벗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항간에는 현 정권의 지역 연고 덕분에 그 자리에까지 올라가다보니 험한 꼴을 보게 된 것이라고 뒷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지만, 그래도 우리 나라에서 제일 똑똑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에서 총수의 자리에까지 오른 사람이라면 그 나름대로의 인격과 실력은 인정해 주어야 할 것이다.

소위 지역연고 때문에 자질과 능력이 없는 사람이 그런 자리에 오를 정도로 우리 나라의 검찰 조직이 느슨하지는 않다고 믿는다.

그러다 보니 물러나는 사람 입장에서는 억울한 심정도 많을 것이다. 남들은 일찍 변호사 개업해서 편하게 살고 있을 때 박봉과 격무에 시달리며 조직을 위해 봉사하면서 천신만고 끝에 총수의 자리에 올랐는데, 자식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상에 동생이 잘못한 것을 가지고 책임지고 물러나라고 하니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도 많았을 것이다.

정권 말기에 늘 일어나는 정치권의 공세에 휘말린 희생양이라면서 원망도 많이 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부 조직을 들여다보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가장 잘 보장하는 것 같으면서도 실제 공무원들이 정치권에 꼼짝 못하도록 운영되고 있다.

원래 대통령제에서는 행정부 각료 및 고위직 공무원들은 대통령이 임명하게 되어있다. 그 자리는 워낙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실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아예 그 자리에 올라갈 생각도 하지 않는다.

때문에 미국의 일반 공무원들은 대통령이 누가 되든 상관없이 자신이 맡은 바 직무만 충실히 이행한다. 또 정치적으로 임명되는 고위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차기 권력의 핵심에 가까이 다가가는것이 확실하고 빠른 방법이다.

이렇게 정권과 함께 들어온 고위 공직자들은 자신과 같은 이해관계를 가진 대통령을 위해서 당연히 온갖 노력을 다하면서 정책을 집행한다.

즉 장관들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그 집권 세력의 이익을 위해 모든 정책을 세우고 행정을 집행해 나가는데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그 정책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특정 이해 관계자만의 이익을 위한 것이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도 할 수 없다. 대통령을 잘못 뽑은 탓이다. 다만 다음에 뽑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사정이 다르다. 정치적인 고위직 공무원들 대부분이 실무진에서부터 승진한 사람들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자연히 전 공무원들이 정치화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정치적인 고위직 공무원은 몇 사람으로 족한데 전체 공무원이 정치화되는 것이다.

고위 공무원의 정치적 정책 결정에 대하여 미국에서는 또다른 국민의 대의 기관인 국회가 그런 행정부의 전횡을 그대로 보고만 있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미국의 대통령과 장관들은 국정을 운영하는데 상당한 재량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조건은 법을 어기지 않는 한도 내에서라는 것이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라는 것이 바로 책임을 묻는 궁극적인잣대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현 부시 정부의 체니 부통령이나 재무, 상무 장관이 지금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엔론사의 회장과 몇 번씩 만나고 그 회사를 위해 발전소 문제와 관련 인도 수상에게 특별한 부탁을 하였다고 해도 문제 삼지 않는다. 불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법이라는 것이 우리 나라에서 생각하는 법감정과는 조금 다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정의가 곧 법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법대로 사는 사람이라고 하면 우리 나라에서는 도덕적으로 고결하고 사회적으로 모범적인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 나라의 법이 그 정도로 높은 기대 수준을 가지고 제정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법치국가의 대명사라고 불리는 미국에서 법대로라는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거리가 상당히 있다. 적법한 것일지는 몰라도 사회적으로옳지 않은 것들이 비일비재 한 곳이 바로 미국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국가가 관여하지않는다. 가치 판단은 법이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개인의 양심이 결정할 부분이고, 법률가가 아닌 일반인 배심원이 판단할 영역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민주 사회에서의 법치의 개념이다.

법이라는 미명하에 자신의 가치를 고집하는 것이야말로 독재와 전체주의의 전주곡일 뿐이다. 그릇된 법치주의에 현혹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선거를 맞는 올해의 조그마한 바람이다.

박해찬 미 HOWREY SIMON ARNOLD & WIHTE 변호사 parkh@howrey.com

입력시간 2002/01/30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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