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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연해의 中國통신](19) ‘양날의 칼’ 민족주의 정서

중국의 인기 영화배우 겸 가수 자오웨이(趙薇)는 지난해 12월28일 밤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시에서 공연 중 봉변을 당했다.

후난경제 TV방송국 창사 6주년 기념행사에 초청받아 생방송으로 열창하던 중 한 남자로부터 공격당한 것. 그녀에 대한 공격은 열성 팬의 충동적 행위가 아닌 계획적 폭행임이 분명했다.

무대 위로 슬그머니 올라 온 이 남자는 제지할 틈도 없이 자오웨이에게 직행, 그녀를 넘어뜨린 뒤 주먹질과 함께 준비해 온 인분을 끼얹었다. 공연장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것은 당연지사. 무대 위에서 함께 공연하던 어린이들이 비명과 함께 흩어지고, 생방송도 10여분간 중단됐다. 범인은 현장에서 체포됐다.

사건 후 자오웨이측은 물론이고 공안당국도 쉬쉬했지만 생방송 중이던 터라 없던 일로 묻힐 수는 없었다.

곧이어 인터넷과 일부 언론에 현장사진이 실리는 등 화제가 됐다. 허베이(河北)성 출신의 20대로 알려진 범인은 조사과정에서 “감옥 갈 각오를 하고 치약과 치솔까지 준비해 왔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범행동기. 공안당국은 일체 언급을 않고 있지만 세간에서는 ‘민족주의 감정’에 기인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말 한 패션잡지에 일장기로 도안한 원피스를 입은 자오웨이의 사진이 실려 논란을 불러 일으킨 것이 화근이라는 추측이다. 자오웨이는 당시 사진에서 선명한 일장기를 중심으로 건강, 행복, 위생 등의 문구가 적힌 원피스를 선보였다.

이후 일부 인터넷 사이트에는 “하필 일장기냐”는 비난성 투고들로 아우성을 이룬 바 있다.

지난해 중국에서는 난징(南京) 대학살에 대한 일본 내 책임회피 발언과 일본 교과서문제 등이 이어지면서 대일감정이 악화된 상태였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자오웨이의 일장기 패션에 불만을 가진 범인이 ‘응징’ 차원에서 결행했다는 해석이 설득력있다.

자오웨이 피습 사건에 대한 네티즌들의 여론은 ‘본때를 보였다’는 긍정론과 ‘지나쳤다’는 식의 부정론으로 갈려 있다. 긍정론은 ‘만일 이스라엘에서 나치 휘장 패션을 광고했다면 어떻게 됐을까’라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반면 이유야 어떻든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폭력은 옳지 않다며 ‘항의 의사를 표시하는 방법이 잘못됐다’는 지적도 있다.

중국에서 민족주의는 뿌리깊은 화두지만, 최근의 흐름은 과거와는 좀 다르다. 1999년 미군이 베오그라드 주재 중국대사관 건물을 오폭한 직후 중국 내에서는 대규모 반미시위가 벌어진 바 있다. 작년에는 교과서 문제에 분개한 중국 해커들이 일본 내 대학, 우익단체, 정부 사이트에 침입해 ‘타도 일본제국주의’ 등의 구호로 도배질하기도 했다.

중국에서 민족주의가 발흥하는 것은 중국정부의 의도적 조작 때문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개혁ㆍ개방으로 인해 사회주의 이념이 희석되면서 이를 대체할 새로운 국가통합 이념으로 민족주의를 강조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민족주의는 자칫배타성을 띨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성이 적지 않다. 청일전쟁 100주년을 맞았던 1995년, 일부 지방정부가 식민주의적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서양식상호를 가진 회사에 무더기 영업정지 명령을 내린 것이 그 예다.

민족주의 정서는 자연발생적 사회현상이라는 견해도 적지 않다. 개혁ㆍ개방에 따른 상대적 소외계층의 불만이 민족주의 정서로 변질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국유기업 개혁을 강요당하는 것은 결국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압력 때문이라는 피해의식이 배타적 민족주의로 변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개혁ㆍ개방 노선과는 걸맞지 않다.

민족주의는 중국지도부가 원하는 국가통합 수단으로만 기능한다는 보장은 없다. 이런점에서 민족주의는 양날의 칼이다. 중국에서 민족주의 정서는 잘못 통제하면 체제 정통성까지 위협할 수 있는 미묘한 의식형태다.

배연해 mrbaeyh@yahoo.co.kr

입력시간 2002/01/30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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