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정보기관, 기상천외한 첩보능력으로 세계를 지배

미국 정보기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중국 국가주석 전용기에 도청장치 설치사건 때문이다.

장쩌민(江澤民) 현 주석과 경쟁관계인 중국내 유력 정파의 추종 세력이 저지른 소행일 것이라는 추정이 갈수록 설득력을 얻고 있지만 대범한 수준을 넘어 유치하다 싶을 정도의 범행 수법이나 중국 주권과 관련된 문제에 관한한 찬바람이 일 정도의 단호한 자세를 보여왔던 중국 정부가 이번 사건에서 취한 엉거주춤한 태도, 대형 정치 이벤트를 앞둔 중국 권력층 내부 기류 등을 감안할 때 권력투쟁의 소산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정보기관에 대한 의혹의 눈길은 여전하다. 주지하다시피 미국 정보기관들은 그 동안 기상천외한 수단까지 동원해 세계 각국의 정상급 인사를 감시해 온데다 그 실력까지 출중하기 때문이다.

몸으로 뛰어서 정보를 얻는 정통 첩보전에서 세계 최정상급이라면 이번 사건처럼 도청 감청 등을 통해 각종신호를 입수해 정보로 가공하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 경지에 이르고 있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꼽히는 정보기관은 1952년 미국 대통령령으로 설립돼 세계를 무대로 전자첩보활동을 벌이는 국방부 소속 국가안보국(NSAㆍNationalSecurity Agency) .

120개가 넘은 위성을 기반으로 한 전세계 규모의 통신감청 시스템인 ‘에셜론(ECHELON)’ 등 통신위성이나 첩보기와 각종 전자 장치를 통한 미국의 전자첩보활동 대부분을 집행하고 있다.

몇 년전 개봉된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머큐리 라이징(Mercury Rising)이나 진 해크만 주연의 애너미오브 스테이트(State of Enemy) 같은 영화에서 어마어마한 첨단 장비를 동원해 주인공과 한판 승부를 벌이다 고배를 마시는 악당 기관원들의 소속 정보기관이 바로 NSA다.


미 연방정부서 13개 정보기관 운영

정보기관의 정보 수집 방법은 크게 2가지로 나누어 진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휴미트(HUMITㆍ Human Intelligence, 즉 사람을 통해 정보를 얻는 인적 정보 방식과 첨단장비를 동원해 각종 신호를 입수해 가공하는 시긴트(SIGINTㆍSignal Intelligence), 즉 신호 정보로 대별된다.

휴미트의 전형은 영화 속에서 영국 대외첩보국(MI6) 공작원으로 활약하는 007을 떠올리면 된다. 신분을 위장해 적성국 등 사지(死地)에까지 뛰어들어 인적 네트워크(007은 여성을주로 공략한다)를 통해 정보를 얻고 작전을 편다.

이에 비해 시긴트 입수를 주임무로 하는 첩보활동은 아예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숨어서 첨단장비와씨름을 하며 공작을 편다. 음지에서 활동하는 첩보원이다.

대부분의 작전은 대개 두 정보가 한 데 어울려 진행이 되지만 미국은 권력 분점과 견제를 민주주의 기본으로 생각해서인지 운영 주체를 쪼개두었다.

기계 뒤에 숨어 활동하는 집단이 무슨 정보기관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천만에’다. 세계 초강대국으로서의 위상을 지켜주는 진짜 버팀목으로 NSA를 비롯한 ‘두더지 정보기관’을 꼽는 전문가들이 많다.

이미 그위력은 일본과 대판 싸움을 벌였던 태평양전쟁에서 입증됐다. NSA가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부분이다. ‘촌티’가 나는 NSA 홈페이지(특이하게도 어린이를 위한 퍼즐 게임난도 비중있게 운영하고 있다)로 들어가 보면 NSA가 암호전문기관이라고 소개하면서 NSA 선배(NSA는 전후인 1952년출범)들이 시긴트를 활용해 일본군의 암호를 깨고(해독), 일본 해군이 미드웨이를 공격한다는 사실을 간파해 종전 시점을 최소 1년은 앞당겼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일본군은 만주사변 등에서 보여주었듯이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휴미트 차원의 첩보전에는 상당한 경지에 올랐지만 시긴트 방면에는 취약했다.

특히 독일군의 암호체계를 원용하고 있었는데 미군은 독일군의 암호 기계를 잠수함을 이용한 기상천외한 위장 작전을 감행해 독일군 지휘부가 모르게 은밀하게 입수(실화를 바탕으로한 미국 영화 U-571에서 탈취 과정을 엿볼 수 있음)한 뒤 수학자들을 동원해 암호의 원리를 파악한 상태였다.

이에 비해 일본은 미군의 암호를 해독하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너무나도 생소한 미국 본토의 나바호 인디언 언어로 조합한 것이어서 암호깨기에 실패했다. 태평양 전쟁의 승부는 양국의 암호대전에서 이미 승부가 났던 셈이다.

미국 연방정부가 공식적으로 직영하고 있는 정보기관은 13개. 자칭 ‘Intelligence Community’라고 부른다.

우리 말로 풀이하면 정보동우회나 정보기관대책회의 정도쯤 된다. 국방부 소속의 8개 정보기관과 내무부, 에너지부, 재무부(대통령 경호와 위폐 수사를 하는 시크릿 서비스), 연방수사국(FBI), 그리고 독립 기관인 CIA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보동우회의 좌장(Director do Central IntelligenceㆍDCI)은 CIA국장이다. CIA국장이 정보동우회 좌장(DCI)을 겸임하는 것이 아니라 DCI가 CAI국장을 겸임을 하는 것이다.

영화 등에서 CIA국장이 비상시 미국 대통령의 자문 역할을 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이 때 CIA국장은 CIA국장이 아니라 정보동우회 좌장(DCI) 자격으로 대통령을 보좌하는 것이다. CIA가 홈페이지에서 “1947년 설립된 CIA는 DCI가 책임을 지며, DCI는 CIA와 정보동우회를 이끈다”고 설명하고 있다.


"공중의 모든 소리 빨아들이는 진공청소기"

그런데 장주석 전용기 도청장치 설치 사건과 관련해 눈여겨봐야 할 기관은 국방부 산하 8개 정보기관 중 시긴트가 주업인 3개 기관. NSA와 국가정찰국(NationalReconnaissance OfficeㆍNRO), 국가화상지도작성국(National Imagery and Mapping AgencyㆍNIMA)등이다.

지금이야 외부로 약간 알려졌지만 냉전시대까지만 해도 이들 시긴트 기관(96년 설립된 NIMA는 제외)은 미국 정부조차 존재 사실을 부인하려 했던 극비 기관들이다.

NSA에 ‘그런 기관은 없어(No Such Agency)’ ‘한마디로 뻥끗하면 안 되(Never Say Anything)’ 란 별명이 붙은 것도이 때문이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전자사생활정보센터(EPIC) 등 미국 시민단체들이 NSA를 사생활 침해사범으로 맹렬히 성토하고,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시긴트 기관들이 안보관련 공작 이외에도 우방국을 대상으로 한 산업스파이 활동까지 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하면서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61년 설립된 NRO는 92년부터 일부 비밀문서를 공개하면 그런 조직이 있다는 사실이 비밀에서 해제됐을 정도로 베일에 가려진 조직.

미국 정보수집함 프에블로호가 북한군에 나포돼 NSA 장비와 운영시스템 등이 적성국에 노출되면서 NRO의 역할과 비중이 확대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NRO의 홈페이지 역시미국 정보기관 중 가장 많은 예산을 사용하고 있는 기관(NSA가 2번째로 알려지고 있다)이란 사실이 믿기 힘들 정도로 허름하다.

NRO는 홈페이지에서 자신의 임무를 “정찰 인공위성(reconnaissance satellite)을 디자인하고, 제작하해 운영하고 있다”며 “전세계의 잠재 위험을 미리 경고하고, 군사작전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는 한편 환경을 감시하기 위해 CIA나 국방부 등 고객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CAI와 국방부 직원들이 간부직을 맡고 있으며 95년에는 코로나 계획에 따라 1960~1972년 동안 정찰위성이 촬영한 8만점의 영상물을 국립기록보관소로 이관했고, 96년에는 정찰위성 발사 계획을 미리 발표하는 등 변신을 꾀하고 있다.

NSA는 미국 시긴트 정보기관의 대표다. “공중의 모든 소리를 빨아 들이는 진공 청소기”, “미국 CIA를 능가하는 정보력을 가진 정보기관”이란 미국 언론의 표현처럼 막강한 도ㆍ감청 기관이란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도 NSA의 손바닥에 있다. 77년 청와대 도청사건이나 최근의 일본 해상보안청이 적발돼 중국의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침몰한 북한(추정) 공작선 사건 등에도 NSA가 개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전세계에 감청요원이 파견되어 있고,‘전세계를 통틀어 수학자를 가장 많이 고용한 곳’이라는 NSA의 설명처럼 엄청난 수의 수학자, 컴퓨터 공학자, 언어전문가 들이 모여 코드메이커(codemaker)와 코드브레이커(codebraeker)로 활동하고 있다.

입력시간 2002/01/31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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