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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영 통일부장관, 관광사업 둘러싼 '대북정책 혼선'

홍순영 통일부장관, 관광사업 둘러싼 '대북정책 혼선'

금강산 '뒤집기'에 피곤한 소신파

요즘 남북관계가 숨통을 틀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홍순영 통일부 장관은 그리 편치 않아 보인다. 얼마 전까지는 북한이 “대화 파트너를 바꾸라”고 비난하고 야당으로부터는 ‘잘 한다’는 칭찬을 받더니, 요즘에는 북한은 조용한데 야당이 “소신 없다”고 밀어붙이고 있다.

역대 통일부 장관들이 남북문제 이상으로 ‘남남문제’에 휘둘렸지만, 홍 장관 만큼 곡예를 한 경우는 드물다.

홍 장관은 소탈하고 강직한 성격으로, 대북 햇볕정책에 대한 확고한 신념의 소유자로 통한다. 이 때문에 김대중 대통령은 외교부 장관을 역임한 그를 전례 없이 통일부 장관에 다시 앉혔다.

월간지 ‘신동아’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홍 장관은 카리스마적 리더십과 전문성, 인사의 자율성 확보 등으로 노태우 정권 이후 외교부 장관들 가운데 부하 직원들로부터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홍 장관은 지난해 9월 국회의 해임건의안 의결로 낙마한 임동원 전 장관(현 청와대 통일특보)의 바통을 이어받아 통일부 장관이 된 이후 여러 차례 특유의 ‘직설적 표현’으로 구설에 오르는 등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

대북정책이 아니라, 통일부 장관의 언행이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치고 정치적 논란거리가 된 경우는 이례적이다.


“금강산은 정치사업”정책 왜 바꿨나?

정책 왜 바꿨나?

올들어 홍 장관에게 닥친 가장 큰 난관은 아무래도 현대아산의 경영상태 악화로 중단위기에 몰린 금강산 관광사업을 둘러싼 ‘정책 혼선’이다.

홍 장관은 22일 “금강산 관광은 경제사업으로 시작했으나, 이젠 정치사업, 즉 평화사업으로 변했다”면서 정부지원 방침을 밝혔다. 종래의 정책 방향을 뒤집는 파격이었다.

홍 장관은 불과 5일 전인 17일까지만 해도 “정부가 애매한 입장에 서 있다”면서 “그러나 시장경제 원리 때문에 지원은 어렵다”고 단언했다. 지난해 연말 기자간담회에서도 “민간사업과 정부사업은 확실히 구분돼야 한다”면서 “사업 계속 여부를 정부가 결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었다.

더구나 15일 K-TV와의 회견에서는 “근본적인 문제는 차기 정권으로 넘기는 것이 좋겠다”고 밝혀 정부가 손을 떼겠다는 의지 마저 시사했다.


소신과 다른 정책?

홍 장관은 명쾌하게 해명하지 않았다. 24일 기자실을 찾은 그는 “이 사업을 그만둠으로써 오는 리스크와 계속함으로써 얻는 혜택을 놓고 고민했다”면서 “결론적으로 정부가 지원해 남북관계를 안정시키는 것이 이익이 크다”고 ‘원론적 변론’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고민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금강산 사업을 시작한 이래 줄곧 제기돼온, 새로운 것 이 아니었다.

때문에 홍 장관의 해명은 DJ 정권이 이제 ‘정경분리’와 ‘시장경제’ 원칙을 포기했다고 해석할 가능성 마저 내포하고 있었다. 통일부 관계자는 “장관이 남북관계를 풀어야겠다는 압박감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면서 “그러나 시장경제 원칙에 대한 소신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을 앞두고 정책 결정이 내려졌다”면서 “홍 장관은 청와대의 지침을 충실히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주체, 현대서 정부로?

홍 장관은 금강산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그 동안 상대적으로 ‘우호적’이었던 야당으로부터 웃지 못할 일격을 당하기도 했다. 21일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로부터 ‘퇴짜’를 맞은 홍 장관은 이튿날 자민련 김종필 총재를 설득하러 갔다가 더 큰 낭패를 보았다.

배석한 정진석 자민련 대변인이 “사업의 성격이 바뀌었으면, 주체도 정부로 바뀌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묻자, 홍 장관은 “그것도 장기적인 고려를 하고 있다”고 시인했다.

이는 정부가 이 사업을 맡겠다는 의미로 확대 해석됐고, 일파만파의 파문으로 이어졌다. 통일부는 사태가 심각해지자 “홍 장관의 발언이 와전됐다”면서 장관의 말을 뒤집었다.

홍 장관은 이번 사건을 단순한 ‘해프닝’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사실상 정부의 장기 방침을 드러낸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당국자들은 “금강산 사업이 제대로 자리잡으려면 수십년이 걸릴 것”이라면서 “결국 정부가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굳이 숨기지 않았다. 한 당국자는 “홍 장관이 사업 지원의 당위성을 강조하면서 직설적 표현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잇단 소신발언, 주위서 말리기도

홍 장관의 발언이 논란이 된 것은 한 두번이 아니었다.

홍 장관은 김 대통령이 영국을 방문했던 지난해 4일 BBC 방송과의 회견에서 “평양의 일부 호전세력(hawkish)이 남북화해 과정을 반전시키려 한다”고 말했다.

이는 북한 내에 매파와 비둘기파 간의 권력다툼이 존재한다는 미확인 내용을 언급한 것으로, ‘내정간섭’이라는 북한의 비난을 자초한 측면이 강했다.

북한 전문가들은 “홍 장관은 북한과 대화해야 할 남쪽의 비둘기파”라면서 “북한을 불필요하게 자극해 긁어 부스럼은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쓴 소리를 했다.

그러나 홍 장관은 주위의 ‘주의’를 아랑곳하지 않고 소신을 더욱 분명히 드러냈다. 보름 후 CNN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매우 똑똑하고 상황을 잘 파악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호전세력에 흔들리지 말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2000년 ‘장충식 파동’을 연상케 할 정도로 통일부 장관의 대북 태도를 비난하고 있는 현실에 전혀 개의치 않은 것이다. 홍 장관은 그 사흘 후 기자간담회에서 일부 언론이 이를 문제 삼은 데 대해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출하기도 했다.


통일부ㆍ국정원의 뒤바뀐 역할?

홍 장관의 이 같은 언행은 대북 정책의 또 다른 축인 국가정보원과도 미묘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정원 고위당국자는 최근 기자들에게 “저 쪽(북한)은 홍 장관이 지난해 11월 6차 장관급 회담을 깼다고 생각한다”면서 “모든 게 합의되고 다음 장관급 회담의 날짜를 정하는 것을 놓고 홍 장관이 비튼 게 아니냐”고 말했다.

또 다른 국정원 고위관계자는 홍 장관이 장관급 회담에 참석하기 전 국회에서 대북 쌀 지원과 이산가족 문제가 연계돼 있다고 지적한 점을 상기하며 “홍 장관은 남북관계를 정상국가 간의 관계인 ‘외교’라고 착각하고 있다”면서 “북한과 외교를 해서는 이룰 수 있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이 같은 갈등은 대북정책의 불협화음으로 표출될 조짐이다. 대표적으로 올해 남북관계의 최대 화두인 ‘월드컵-아리랑’ 연계 문제가 그렇다.

국정원은 “남측 관광객의 아리랑 공연 관람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자꾸 ‘애드벌룬’을 띄우는 반면, 홍 장관은 “아직 언급할 단계가 아니다”며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통일부가 남북관계를 적극적으로 풀어나가고 국정원이 다소 보수적 경향을 보이는 게 일반적인데, 거꾸로 국정원이 앞서 나가고 통일부가 속도를 조절하는 이상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 대북관과 엇갈린 행보

개각을 염두에 두고 있는 김 대통령도 홍 장관의 거취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대북관계에서 소신을 굽히지 않은 홍 장관이 구체적 실적을 원하는 대통령의 대북관에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홍 장관을 장관에 임명한 지 5개월 만에 경질 성격으로 교체할 경우 야당은 “개각권이 북한에 있느냐”며 공격하고 나설 게 뻔하다. 더구나 홍 장관은 추진력과 결단력을 겸비한 직업 각료인데다 개인적 흠결이 없다.

홍 장관은 장관 임명장을 받자마자 5차 장관급 회담에 투입돼 열 가지가 넘는 합의사항을 도출한 ‘행복한’ 장관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911 테러 보복 공격 이후 금강산에서 열린 6차 회담에서는 합의문도 없이 돌아오는 아픔을 겪었다. 홍 장관이 남북 관계개선이 절실해진 지금, 소신을 지키면서도 안팎의 도전을 잘 극복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이동준 정치부기자 djlee@hk.co.kr

입력시간 2002/01/31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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