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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워싱턴, 평양, 서울의 2월

부시 미국 대통령이 1월 29일(현지시각) 발표한 연두교서는 세계, 특히 한반도에 찬바람을 불러 오고 있다. 60세 환갑을 며칠 앞둔 2월1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전선 시찰에 나서 20여일만에 모습을 나타냈다.

“사납게 휘몰아치는 제국주의 광풍을 혁명의 열풍으로 맞받아치며 사회주의 조국의 기상을 만천하에 떨쳐가는 계급 투쟁의 전초선에는 당과 혼연일체를 이룬 우리의 인민군 군인들이 서 있다”고 격려했다.

“우리의 조국을 건드리려는 그 어떤 침략자도 용서치 않고 사생결단으로 싸워 결판을 보고야말겠다는 투쟁정신을 지닌 이 위대한 힘을 당할 자는 세상에 없다”고 말했다고 북의 방송은 보도했다.

부시 대통령은 연두교서에서 “…9월 11일 이후 적잖은 정권(regime)들이 조용해졌지만 북한은 그들의 시민이 굶고 있는데도 미사일과 대량학살무기를 강화하고 있으며 이들 정권들(이란, 이라크, 북한)은 테러리스트와 연결되어 ‘악의 한 축’을 이루고 세계평화를 위협하고 있다”고 규정했다.

부시는 북한이 ‘악의 한 축’이 된 이유를 2월 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부연했다.

“북한이 휴전선에서 재래식 군사력 일부를 후퇴시키고 분명한 평화의지를 선언하고 무기를 수출하지 말라는 우리의 제안에 귀를 기울이기를 희망한다. 만일 북한이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기꺼이 북한과 대화에 나설 것이다.”

이런 말(言)들의 전쟁 속에 서울은 당황해 있다. 1월 14일 연두기자회견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햇볕정책의 중요한 동맹이여야 할 미국이 “북한의 체면을 세워주면서 대화를 했으면 한다”는 의견을 냈었다.

또 1월 29일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단독대화에서 “김정일은 요즘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한미군 철수를 떠들고 다니고 있다. 어떻게 된거요”라고 묻자 “속으로는 그렇지 않을 겁니다”라고 답변 했다고 한다. 김 총재에 의하면 김 대통령은 “북한 문제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2월 2일에는 전국 민중연대 회원 800여명이 서울 종로구 종묘공원에서 ‘전쟁위협, 내정간섭, 경제침탈, 부시 방한저지 반미결의 대회’를 갖고 “미국정부는 대북 적대정책을 철회하고 평화협정을 조속히 체결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은 1월 30일 ‘미국은 악의 제국’이란 제목의 성명을 냈다. 전국연합은 성명에서 “부시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입만 열면 전쟁을 거론하는 등 머리 속은 온통 전쟁 생각뿐이다. 미국이 지금처럼 전세계에 대한 협박과 전쟁을 계속 운운 한다면 911 대참사와 같은 또 다른 대형참사를 부를 뿐이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평양과 서울의 소리는 워싱턴에서는 모기 소리만도 못한 듯싶다. 부시의 연두교서가 ‘버터(국내 경제회복)보다 총(안보 및 테러)’에 무게를 실은것인데도 연설직후 여론지지도가 85%를 넘었다.

CBS앵커 댄 레더는 “착실한 연설이었다”고 평했다. CNN의 논평가이며 레이건 행정부 때 교육부 장관이었던 도덕주의자 빌 버네트는 “도덕적 신념이 찬 연설”이라 했다. 존슨, 케네디가, 루즈벨트 등의 평전을쓴 NBC 논평자 도리스 근원은 “그가 쓴 단어들은 굉장하다”고 했다.

왜 이런 호평이 나올까. 미국의 언론연구단체들이 911테러 대참사이후 언론의 변화를 조사한 바로는 정치인의 팬티 속을 들여 다 보는 섹스 스캔들에서 안보, 테러, 세계문제로 관심사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한 언론연구소 조사로는 신문기사의 14%가 테러 문제를 다뤘고 TV는 54%가 이를 다뤘다.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등 주요 신문의 경우 지난해 9월 지면의 25%에 그쳤던 논평, 추론, 분석기사가 12월 들어 전선이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하자 45%로 늘었다.

특히 TV방송의 경우 CBS 아침쇼의 56%, ABC의 대표적인 논평쇼인 ‘굿모닝 아메리카’와 ‘나이트 라인’의 35%가 테러와 국제문제를 다룬 것이었다. 논조도 CBS의 64%, ABC의 45%, CNN의 77%, PBS의77%가 정부편이었거나 범 정부적이었다.

르윈스키 스캔들 보도 때의 추문 일변도, 냉소주의, 편중 보도, 편견보도와는 다른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새로운 논평의 바람이 분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의 미디어 비평기자인 하워드 컬츠는 “부시 연두교과서의 전야에 이미 ‘악의 한 축’을 구축할 새로운 언론논평 바람이 일어났으며 부시는 이 같은 변화를 잘 잡은 것이다”라며 연두교서의 성공이유를 새롭게 분석했다.

어쨌든 북한이 이번 반박성명 등에서 종전에 사용했던 극한 용어를 피했다는 분석이있다. 미국 언론의 반향 전환처럼 북ㆍ미 대화 추진에 새 바람이 되기를 바란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2/02/05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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