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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왜 '재일동포 자금'을 쳤나

간사이흥은 이희건 회장 구속, '표적수사' '조합재생 수순' 엇갈린 시각

1월25일 간사이(關西)흥은 이희건(李熙健) 전회장의 구속 소식이 재일동포 사회를 흔들었다. 오사카(大阪) 경찰본부는 이전회장과 장남인 이승재(李勝載) 전부회장 등 간사이흥은 전경영진 5명, 자회사 고마개발의 전경영진 2명 등 7명을 구속하는 한편 간사이흥은 오사카본점과 주요 지점, 이 전회장 자택 등 17곳을 압수·수색했다.

이 전회장의 구속은 예정된 수순이긴 했다. 그동안 한국계, 조총련계 신용조합은 물론 도산한 일본의 각급 금융기관은 예외없이 수사 도마위에 올라 전경영진이 배임, 횡령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간사이흥은에 이어 한국계 신용조합 2위인 도쿄(東京)상은의 김성중(金聖中) 전이사장은 지난해말 횡령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이미 1월16일 간사이흥은 내사 소식이 흘러 나와 이 전회장의 구속이 임박했음을 알렸다.

그러나 이 전회장이 수십년간 재일동포 사회의 돈줄을 장악, ‘재일동포 대통령’으로 불릴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고 역대 한국 정권은 물론 일본 정계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는 점에서 구속 수사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일본 수사 당국이 금융 사건의 경우 증거 인멸을 우려, 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삼고 있다지만 설마 83세의 노인을 구속하겠느냐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융자금 회수 불능 등 배임혐의 적용

이 전회장의 구속은 99년7~9월 간사이흥은이 고마개발에 융자한 19억5,000만엔이 직접적인 계기이다. 적절한 담보를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융자를 지시, 전액이 회수 불능 상태에 빠짐으로써 간사이흥은에 손실을 입혔다는 업무상 배임 혐의이다.

그의 혐의는 여기서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경찰은 간사이흥은이 도산 직전인 2000년 9월까지 모두 50회에 걸쳐 고마개발에 융자한 56억엔의 거의 전액이 회수 불능상태라는 점에서 혐의 사실을 확대할 방침이다.

이 전회장은 판단의 잘못은 인정하면서도 의도성을 부인하고 있으나 경찰은 입증에 어려움이 없다고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거품 경제 붕괴 이후 담보 자산의 급격한 가치 하락으로 일본 금융기관이 모두 거액의 부실 채권을 안았다는 점에서 고마개발에 대한 융자로 간사이흥은이 입은 손실 자체가 형사문제로 발전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간사이흥인이 융자에 들어갈 당시 고마개발의 유일한 담보인 나라(奈良)현 고마컨트리클럽은 신한은행에 84억엔 한도의 1순위 근저당권을 설정, 약 65억엔을 융자해준 상태였다.

지난해 4월의 도산 당시 고마컨트리클럽의 자산 평가액이 35억엔에 불과했다. 그동안의 땅값 하락을 감안하더라도 간사이흥은의 융자가 시작된 97년에 이미 추가 담보 가치는 없었다는 점에서 경찰은 무담보 융자, 즉 부정 융자가 행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신한은행도 일부 원리금을 돌려 받았지만 대부분을 그대로 부실 채권으로 떠 안았고 채권 할인 매각에 성공하더라도 절반 정도는 손실이 불가피하다.

더욱이 이전회장이 고마개발은 물론 신한은행의 회장을 맡고 있었다는 점에서 정실 융자 의혹은 클 수 밖에 없다.

고마개발은 고마컨트리클럽이 94년에 완공한 새 코스의 공사비 부담과 회원들의 해약 사태에 따른 위탁금 반환 등으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 났다.

따라서 자회사인 고마개발의 도산이 몰고 올 파장을 우려한 이 전회장이 우선은 고마개발의 도산을 막기 위해, 그 다음에는 신한은행에 대한 원리금 상환을 보장하기 위해 간사이흥은의 자금을 이용했다는 것이 경찰의 시각이다.


재산도피 시도, 거액 한국 송금 정보도

경찰은 또 간사이흥은이 지점장 등의 간부들에게 자금을 제공, 고마컨트리클럽의 회원권을 사도록 하는 방법으로 13억3,800만엔을 우회 융자한 혐의에 대해서도 수사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간사이흥은이 직원후생회에 융자해 준 자금으로 지점장 등 65명이 골프장 회원권을 구입했으며 이자 부담분을 급여에 얹어 돌려받는 형식을 취했다.

경찰은 회원권 집단 구입이 골프장의 위탁금 반환 청구가 쇄도한 97년에 시작된 데다 회원권 증서를 간사이흥은이 보관했고, “아무런 부담을 주지 않는다”며 협력을 요청한 중역 명의의 e메일이 보내졌다는 점에서 명백한 우회 융자로 보고 있다.

이 전회장이 자산도피를 시도한 흔적도 일부 드러났다. 일본 금융재생위원회가 간사이흥은의 도산을 발표하기 이틀전인 2000년 12월 24일 당시 대장성 긴키(近畿)재무국은 도산 처리 방침을 간사이흥은측에 알렸다.

그 직후 이 전회장의 비서가 간사이흥은 오사카 본점과 쓰루하시(鶴橋) 야오(八尾) 등의 지점, 시중은행의 오사카 지점에서 ‘이희건’, 또는 일본 통명인 ‘히라타요시오’(平田義夫) 명의의 정기예금 등을 해약, 전액을 신한은행 오사카지점에 입금한 것으로 보도됐다.

예금 해약이 도산예고 직후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경영 책임 추궁에 대비한 행위였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이미 30억엔 정도가 한국으로 송금됐다는 미확인 정보까지 나돌고 있어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

이로 보아 강력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 전회장이 배임 혐의를 벗기는 대단히 어려울 전망이다.

더욱이 그동안 한국계, 조총련계를 막론하고 도산한 재일동포 신용조합에 대한 수사가 우선 배임 사건으로 시작됐다가 증거 확보후 이내 횡령 사건으로 번졌다는 점에서 간사이흥은에 대해서도 비슷한 경과가 예상된다.

한편 이 전회장의 경력으로 보아 수사의 파장은 재일동포 사회에만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 경북 경산 출신인 그는 17세에 일본으로 건너 와 오사카의 암시장에서 자전거 수리로 돈을 벌기 시작, 38세때인 55년 간사이흥은의 전신인 오사카흥은을 설립했다.

기존의 고리대금업과 달리 건전한 금융기관을 표방한 오사카흥은은 재일동포가 밀집한 지역 특성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재일동포의 대부로 82년 신한은행 설립

이를 발판으로 그는 재일동포의 출자를 끌어 내 82년 한국에 신한은행을 세웠다. 신한은행이 한국 금융계 부실화의 최대 요인인 정책 금융과는 거리를 두고 건실한 은행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거의 전적으로 그가 한국 정계의 압력을 막을 수 있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는 재일동포의 대부로서 한국 정계와 깊은 관련을 맺어 왔다.

일본을 방문하는 우리 정치인들은 대부분 오사카를 방문, 이 전회장과 만났고 고마컨트리클럽에서 골프를 치고 돌아 갔다. 김대중 대통령 집권후에도 이런 기본 공식은 변함이 없었다.

따라서 그에 대한 수사가 횡령사건으로 번지고 자금 행방이 추적될 경우 한국정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 일으킬수 있다.

그러나 앞서 행해진 조총련계 신용조합 수사 경과로 보아 간사이흥은 수사가 이른바‘이희건 리스트’에까지 미칠 가능성은 별로 없다.

도쿄 경시청은 지난해 12월 28일 조총련계 신용조합 도쿄조긴(東京朝銀)의 부정 융자 사건과 관련, 조총련 중앙본부를 압수·수색하고 강영관(康永官) 조총련 중앙상임위원을 횡령 혐의로 구속했다.

그는 오랫동안 조총련의 금고지기인 재정부장을 맡았고 조총련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허종만(許宗萬) 책임부의장의 최측근으로 통하는 인물이다.

그의 구속은 조긴도쿄 경영진과 짜고 가·차명 계좌에 거액을 융자, 이를 조총련 조직으로 빼돌린 혐의에 따른 것이지만 자금의 최종 행방과 관련, 허 책임부의장에 대한 수사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그 경우 조총련의 대북 송금 실태 등이 백일하에 드러날 것이란 전망도 낳았다.

그러나 조총련에 대한 강제 수사 직후 일본 정계가 움직였다. 겉으로는 북일 관계 개선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적절한 수사를 요청하는 데 머물렀으나 실제로는 조총련 중앙조직으로 수사를 확대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그 이후 현재까지 조총련중앙조직이 직접 관여, 조총련계 신용조합의 자금을 북한으로 빼돌린 사례가 잇따라 보도되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수사는 더 이상 확대되지 않고 있다.


공적자금 투입에 앞선 경영책임 문책

일본당국의 수사가 어디까지나 모양새에 치우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한국계 신용조합과 조총련계 신용조합이 잇따라 일본수사 당국의 칼을 맞은 데 대해 일부에서는 재일동포 사회를 의도적으로 겨냥한 표적 수사라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는 그동안 도산한 모든 금융기관이 하나도 예외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도산한 재일동포 신용조합의 재생을 위한 거액의 공적 자금 투입을 앞두고 여론의 비난을 최대한 줄여 보려는 일본 금융 당국의 의지가 보다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일본은 4월 1일부터 1,000만엔까지만 예금의 원리금 상환을 보장하고 나머지는 금융기관 사정에 따라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페이 오프(Pay-off)’에 들어 간다.

도산한 금융기관의 인수기관 선정과 부실채권을 정리, 건전한 경영의 토대를 갖춰주는 공적 자금 투입은 그 이전에 모두 이뤄져야 한다.

국민 부담인 공적자금 투입은 안 그래도 수많은 논란을 불렀고 특히 조총련계 신용조합에 대해서는 ‘일본국민의 세금이 북한으로 흘러 들어가 미사일을 만든다’는 지적까지 무성했다.

따라서 도산한 금융기관의 과거의경영 책임을 명확히 하는 것은 공적 자금 투입의 기본 전제가 돼 왔다.

이런 점에서 도쿄상은과 함께 도산한 간사이흥은 수사는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이는 간사이흥은이 도산 당시 자산 규모가 1조2,000억엔으로 한국계 신용조합은 물론 일본 전체 신용조합 가운데 최대 규모였던 데다 한국 정부까지 나선 인수 작업의 핵심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민단 중앙본부와 한국 정부가 추진한 ‘드래건 은행’ 설립 구상은 1월 간사이흥은을 비롯한 4개 한국계 신용조합 인수기관 선정에서 ‘드래건 은행’이 완전히 실패함으로써 무산됐다.

간사이흥은은 MK택시로 유명한 재일동포 유봉식(兪奉植)씨의 긴키(近畿)산업, 도쿄상은은 호쿠도(北東)상은등이 인수기관으로 선정됐다.

한국 정부의 개입여지가 차단돼 일본 정부의 어깨가 가벼워짐에 따라 간사이흥은 수사는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됐다.

도쿄=황영식 특파원 yshwang@hk.co.kr

입력시간 2002/02/05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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