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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북한 몰아세우기 속셈 뭔가

미, 북한 몰아세우기 속셈 뭔가

부시 '악의 축' 발언에 북'선전포고' 맞서, 한반도 냉각기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점점 험악해지고 있다. 진원지는 세계 패권국 미국이고, 타깃은 북한이다. 조지W 부시 미국 대통령이 1월 30일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악의축(an axis of evil)’이라고 ‘악담’을 하자, 북한은 지지 않고 ‘선전포고’라며 맞받아쳤다.

양측이 동원한 용어나 드러난 감정만을 놓고 보면, 대북 핵사찰을 둘러싸고 전쟁 직전까지 갔던1994년을 떠올릴 정도로 첨예하다. 북미관계가 꼬이자 함수관계에 있는 남북관계와 한미관계도 덩달아 요동칠 조짐이다.


“대화제의 묵살”깡패국가 길들이기

부시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강하게 북한을 몰아붙인 것은 물론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때문이다.

북한은 테러조직과 직접 연계되지는 않았으나, 핵ㆍ미사일 개발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 위협적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콘돌리사 라이스 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이 부시 발언 직후 북한을 ‘미사일 장사꾼’이라고비난한데서 명확히 확인됐다.

미국은 특히 북한이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하려는 의사를 보이지 않는 것을 패권국에 대한‘도전’으로 간주하는 듯하다. 911 테러 사건 이후 미국은 테러 노이로제에 걸렸고, 세계전략의 최우선순위를 테러 차단에 둬왔다.

미국은 또 지난해 6월 부시가 전제조건 없는 대화를 제의했는데도 북한이 이에 응하지 않는 데 대해 상당히 기분이상한 것으로 보인다.

라이스는 “미국은 북한에 더 나은 길로 갈 수 있게 해줄 청사진을 제시했으나 평양으로부터 아무런 진지한 응답이 없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제시한 대북 핵사찰 데드라인이 다가오면서, 북한에 면죄부를 줄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계산도 고려됐다.


북한, 강성발언 속에 협상 메시지도

북한 외무성은 미국이 으름장을 놓은 지 이틀 만에 반박성명을 내놓을 정도로 기민했고, 역시 특유의 직설적 표현으로 미국을 비난했다.

그러나 북한의 태도는 의외로 ‘방어적’이었다. 북한은 지난해초 부시 행정부가 대북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하자 “흑연감속로를 다시 돌리겠다”고 엄포를 놓았으나, 이번에는 뚜렷한 대응카드를 꺼내지 않았다.

오히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등의 표현으로 부시의 ‘망발’을 성토하는 데 집중했다. 북한은 부시 행정부가 경제불황, 엔론 사태 등으로 수세에 몰리자 안팎의 비난을 테러의 탓으로 돌리려 한다면서, 성명의 상당 부분을 ‘악의 축’에 대한 해명에 할애했다.

즉 북한은 미국의 ‘불순한 정치적 목적’의 피해자로,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것이다.

사실 부시 대통령이 언급한 ‘악의 축’은 2차 세계대전 직전 국제무대를 흔들었던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 3개국 ‘추축동맹(axis powers)’을 연상시켜, 현실적 적합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정부 당국자는 “김일성ㆍ김정일 생일 등 국가적 행사를 앞둔 북한은 겉으로는 강성발언을 했지만,협상을 하자는 메시지도 줬다”고 말했다.


MD구축 명분쌓기 등 정치적 노림수

양국이 서로 으르렁대고 있지만, 군사적 대치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우선 미국에겐 북한을 칠 명분이 없다. 북한은 알 카에다 처럼 직접적으로 미국을 공격하지 않았고, 핵ㆍ미사일은 어디까지나 장기적인 위협이다.

북한에 대한 공격은 곧 제2의 한국 전쟁이고,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의 개입으로 이어진 세계 전쟁이다.

미국 조야에서도 부시의 대북 발언에 대해 견제하기 시작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은 “우리가 행정부를 떠날 때 북한의 미사일을 검증할 수 있는 협정 체결의 가능성을 탁자 위에 남겨 놓았는데, (부시 대통령이) 멀리하고 있다”면서 “커다란 실수”라고 못박았다.

미 국무부도 부시의 발언이 확대ㆍ재생산되자 “북한과 논의할 중대 현안들이 있다”면서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부시의 대북 경고는 단순한 레토릭이 아니라, 외교적 목표와 정치적 속내를 포함하고 있는 단계적 조치로보는 게 현실적이다.

미국은 미사일방어(MD) 체제 구축의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깡패국가(rogue state)’ 북한을 더욱 몰아 붙일 필요가 있다.

더욱이 공화당 정권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터진 엔론 사건의 여파를 돌파할 기재가 필요했을 수도 있다. 음모론적 발상일 수도 있겠으나, 부시의 발언이 돌발적인 것이 아닌 만큼 가능성은 열려있다.


남북관계 소강상태로

악화한 북미관계는 남북관계를 다시 소강상태로 빠뜨릴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해 3월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대북정책을 재검토하겠다고 하자 같은 달 예정됐던 5차 장관급 회담을 무산시킨 데 이어 9월까지 당국간 접촉을 피해왔다.

북한이 남북관계를 북미관계의 한 구성요소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강경자세는 북한에게 남한과의 관계도 소극적으로 임하도록 긴장시키는 것이다.

지난 달 29일 대한적십자사가 제의한 4차 이산가족방문단 교환 및 금강산 육로회담 등 중소 규모 당국회담의 재개도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북한이 북미관계를 뚫기 위해 오히려 남한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성을 띨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

북한은 94년 핵 위기때 거꾸로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과감성을 과시한 바 있다. 남한과의 관계 개선을 보여줌으로써 미국에 ‘정상국가’라는 메시지를 주겠다는 것이다. 이는 남한 당국이 기대하는 바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국의 완강한 태도에 기죽은 북한이 남쪽을 쳐다볼 겨를이 있을 지는 미지수이다.


한미간 시각차 극명, 부시 방한이 변수

남북관계 이상으로 불안한 조짐을 보이는 게 50년 동맹인 한미 관계이다. 정부는 부시 발언 직후 “이는 미국이 줄곧 해오던 말”이라면서 “미국은 우리의 대북포용정책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외교부 당국자들은 한술 더 떠 부시의 강경발언이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나온 데 주목하면서,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끌어들이려는 미국측의 의도가 반영됐다”고 예단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대북정책에 대한 한미 간의 시각차가 얼마나 큰 지를 확인해줬다. 우리는 북한을 달래려는데, 미국은 힘으로 누르겠다는 것이다.

토마스 허바드 주한 미국대사는 김대중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체면을 살려줘야 한다”고 주장한데 대해 “그럴 필요 없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부시의 입이다. 부시가 19일 서울에서 또 다시 자극적인 발언을 할 경우 햇볕정책은 치명타를 입게 된다.

일각에서는 우리 정부가 이를 막기 위해 차세대전투기(FX) 사업을 미국에 맡기라는 부시의 요구를 수용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있다.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임기 말 북미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정부의 희망이 실현될지 주목된다.

이동준 정치부 기자 djlee@hk.co.kr

입력시간 2002/02/06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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