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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특집- 책] 세상을 읽고, 나를 돌아본다

[설날특집- 책] 세상을 읽고, 나를 돌아본다

사회과학 도서·신간 소설 10

황금 연휴다. 각종 매체와 오락 거리에 밀려 방치해 뒀던 정신과 영혼을 돌아볼 기회가 생긴 건 아닐까. 진정한 내면의 대화에 다가서는 길은 뜻밖에 가까이 있다.

좋은 책은 자신을 되찾게 한다. 급변하는 세상을 읽게 해줄 사회과학 도서 5권, 동시대인의 의식을 파고 든 신간 소설 5권을 소개한다.


◆ 사회과학

·숙명의 트라이앵글(Fateful Triangle)/이후刊

미국의 ‘수치스럽고 몹시 위험한’ 중동 정책을 강렬하게 비판한다. 출판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그 통찰력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빛난다.

여기서 말하는 트라이앵글은 두 가지. 먼저 미국-이스라엘-팔레스타인 이라는 세꼭지점이 있다. 거기에 지식인-정치가-언론인이 이루는, 다른 차원의 삼각형이 겹쳐진다. 중동 문제의 본질을 명쾌하게 설파한다.

언어학자이자 미국의 비판적 지성인 노엄 촘스키의 진면목이 드러나 있다. 1960~70년대 미국의 베트남 침공을 격렬히 비판한 것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동티모르와 코소보 사태까지 강대국의 개입 정책을 줄기차게 비판해온 저자의 생생한 육성이다.

1983년 초판이 빛 본 이래, 저자가 꾸준히 증보, 1999년 10쇄를 기록한 현대의 고전이다. 국내 발간은 2001년 7월(전 2권).


·문명의 충돌과 21세기 일본의선택 /김영사刊

제목만 보면 일본의 이야기 같다. 이 책은 그러나 동아시아, 특히 일본과 중국을 중심으로 21세기의 세계 구도를 서술하고 있다. 한국 외교 정책에 들이 닥칠 변화를 예견하고 나아갈 바를 제시받을 수 있다.

냉전 시대와는 확연히 달라진 세계 역학 구도를 주목한다. 현재의 세계를 서구 문명, 동방정교회 문명, 중화 문명과 일본 문명, 이슬람 문명, 힌두 문명, 라틴아메리카문명, 아프리카 문명 등으로 나눠 파악한다.

미국이라는 글로벌 초강대국은 그 위에 독자적으로 존재한다. 강대국의 이해 관계속에서 여러 문명이 공존하는 동아시아 지역은 새로운 세계 질서의 각축장이 되리라는 예견이다.

한일 관계가 갈수록 첨예해 지고 중국이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지금, 한국의 외교 정책이 지향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동경 강연, 잡지 기고 등을 모았다.


·프리바토피아를 넘어서 /백의刊

911테러 사태의 뒤를 이은 전쟁과 탄저균 공포 등 전지구적 악몽은 전부터 예견돼 왔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빚어낼 유전적 차별의 가능성, 커뮤니케이션의 지나친 발달로 인한 감시 사회의 도래 등 현재의 부정적 면이 어디서 기인했는지를 생각해 본다.

미국과 선진 강대국이 저지른 악에 대한 탄핵서이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란 시장에 의한 착취와 동의어라는 주장이다. 그에 맞서기 위한 수단으로서 시민권에 대해 진지하게 재고해야 할 때라는 것. 새 세계에 대한 비전을 압축한 ‘시민 우선의 십계명’이 흥미롭다.

유럽 최고의 지성지로 손꼽히는 ‘르 몽드디플로마티크’가 펴낸‘21세기를 생각한다’를 번역한 것.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에 대해 유럽의 일류급 지성은 어떤 논리로 반발하는 지, 명쾌하게 알 수 있다.

개인(prrivate)과 유토피아(utopia)가 합쳐져 만들어진 제목은 21세기 벽두의 세계에 드리워진 미국의 신자유주의를 상징한다.


·보보스 /동방미디어刊

부르주아적 야먕과 성공에 대한 집착, 보헤미안의 방랑ㆍ저항ㆍ창조성이 한몸에 뒤섞여 있다. 전시대에는 없던 새 유형의 인간, 그들이 새 시대를 지배하고 있다. 한발은 부르주아(Bourgeois), 다른 한 발은 보헤미안(Bohemian)의 세계에 딛고 있는 신흥 지배 집단이 바로 그들이다.

초강대국 미국의 신지배계층으로 부상하고 있는 집단에 대한 분석서다. 1960년대가 히피의 시대, 80년대가 여피의 시대였다면, 90년대와 21세기는 보보의 시대로 불릴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60년대의 ‘반항’과 80년대의 ‘성취’가 합쳐진 새로운 엘리트 집단이다.

‘뉴스 위크’의 편집위원인 저자 데이비드 브룩스의 날카로운 분석과 위트가 독자를 즐겁게 한다. 부르주아와 보헤미안이란 단어의 스펠링을 따 만든 제목은 저자의 조어이다. 원제는 ‘천국의 보보스’. 한국의 신흥 엘리트들은 어떤 모습일까?


·아주 작은 차이 /이프

여성의 사랑과 성과일에 관해 명쾌한 해답을 제시한다. 육체의 언어로 말하는 여성해방론이다. 도발적이다 싶을 정도로 표현은 솔직하다. 많은 여성들이 겪고 있는 불감증부터 시작한다.

책은 권고한다. 클리토리스가 느끼는 쾌감을 솔직하게 인정하라고. 그러지 못 했으므로, 수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치부를 부끄러운 곳으로만 인식, 불감증에 시달리면서 현모양처 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된다는 것이다.

1975년 유럽을 뒤흔들었던 책. 낙태, 성의식, 고용 평등, 주부 우울증, 순결 강박증, 여성의 성적 주체성과 해방, 이혼의 증가 등 사회 전반에 여성 해방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는 21세기 초입의 한국이 귀담아 들어야 할 부분이 많다. 페미니즘의 육성이다.


◆ 소설

·열정의 습관 /이룸刊

서른 일곱살 된 세여성을 통해 여성의 성욕을 적나라하게 관찰하고 기록한다. 소설이라기 보다는 르포나 인터뷰 기록의 형식을 띤다. 마치 보고서를 읽는 듯 시종일관 지극히 담담한 어조다. 섹스에 대한 발칙한 통찰이 곳곳에 숨어 있다.

‘진지한 권태란 틀림없이 긍정적이고 대담한 변태를 생산해 낼 것이다’. ‘남자와 여자의 궁극은 섹스야’. ‘원하는 것을 주는 그것이 사랑이야. 그 남자가 그렇게도 원하는데, 왜 못 해 주니?’ ‘전 무턱대고 사랑하겠다는 남자를 믿지 않아요.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죠. 빈틈없이 잘 아는, 내가 모르는 부분까지 이미 나를 알고 희롱하는 어른스러운 남자를 원해요.’

발표와 함께 모든 신문들이 약속이나 한 듯 문화면 머릿기사로 올렸다. 왜 섹스인가? 등장 인물의 입을 빌어, 소설은 이렇게 주장한다. ‘“섹스는 이 후기 자본주의 시대에도 복제품으로 손쉽게 대체할 수 없는, 철저한 수공예품이야”. 전경린 지음.


·광야 /문이당刊

1980년 5월의 광주를 당시 현장 취재한 미국 기자의 기억에서 끄집어 낸다. 발발 시점인 5월 18일부터 진압일인 27일까지가 일지식으로 그려져 있다.

중견 소설가 정찬은 그 아흐레에 각종 자료와 문학적 상상력을 투여, 장편 소설로 거듭나게 했다. 가상 인물과 실제 인물을 적절히 동원, 소설적 공간에 배치한 작가의 입담이 돋보인다.

고립무원의 처지로 전락해 가는 광주의 모습, 계엄군과 시민의 충돌, 시시각각 다급해져 오는 사건들 등 이 소설은 흥미진진한 다큐멘터리를 넘본다.

또 당시 한국과 미국 정권의 움직임까지 사실적으로 재현한다. 전두환 등 군부는 물론 글라이스턴 주한 미국 대사, 위컴 주한 미군 사령관, 브루스터 CIA 한국지부장 등 미국 수뇌부가 겪었을 심리적 갈등이 생생하게 복원, 광주 민주화 항쟁이란 현대사의 숙제에 대한 문학적 완결판으로 평가된다.


·꿈꾸는 마리오네트 /창작과 비평사刊

한국에서 과외 교사를 하는 아내, 아내가 부쳐주는 돈으로 유학하는 남편의 이야기다. 떨어져 사는 둘은 지독한 위기 상태다. 아내는 한국에서 외로울 때 만나곤 하던 어떤 남자의 아이를 가진 것 같아, 죄책감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남편에게 고백하고 용서 받으러 가는 길이다.

그러나 남편의 서랍장에서 쓰다 남은 콘돔 상자와 낯선 털오라기를 발견, 질투에 불탄다. 그녀는 딴 남자의 아이를 낳아 남편에게 복수하려 마음먹지만, 파리를 뜨기 전 생리가 나온다. 아내는 한국행 비행기 안에서 불륜의 증거물인 털을 변기에 버린다.

그러자 주술에서 풀려난 마리오네트(줄인형)처럼 깊은 숨이 터져 나온다.

이밖에도, 현대 한국부부의 성윤리와 위선을 압축적으로 내보인 ‘정육점 여자’ 등 우리를 돌아다 보게 하는 날카로운 작품들이 함께 한다.


·그대의 차가운 손 /문학과지성刊

살아 있는 사람의 몸에서 석고본을 뜨는 라이프 캐스팅 작가의 이야기다. 여인의 손을, 골반을, 몸 전체를 석고로 떠 내는 작업이다. 두 여인이 그 대상으로 등장한다.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지방 덩어리, 수겹의 뱃살과 출렁이는 허벅지, 그 표면을 따라 무수한 흰 지렁이처럼 갈라져 있는 살갗’을 가진 비만 여대생, ‘몸짓과 어조는 여배우처럼 화려했지만 사랑을 할 때마저도 흡사 강간당한 여자처럼 메말라 있던’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몸을 석고로 떠내는 이야기다.

거푸집을 얻기 위한 작업이었으나, 그것은 그녀들의 숨겨져 있는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가 적나라한 몸에 집착한 것은 인간적 온기를 느낄 수 없었던 부모 탓에 너무나 일찍 인간의 이중성을 알아 버렸기 때문. 때로는 제왕절개 자국과 정면으로 부딪쳐야하는 그의 라이프 캐스팅 작업은 존재의 본질에 다가서는 과정이었다.

독특한 소재가 주는 긴장감은 엽기적 수준이다. ‘삶은 곧 상처’란 화두에 골몰해 온 젊은 작가 한강이 쓴 두번째 장편.


·톱니바퀴 /북&북스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존 그리샴의 신작 장편이다. 정치의 추악한 이면을 법정 스릴러 형식으로 풀어간다.

대통령 선거와 경쟁, 선거 자금, 돈세탁과 해외 비밀 계좌 등 미국의 정치판이라고만 할 수 없을 소재들이 스릴러처럼 엮여 일반 독자 들을 붙잡는다. 판사들은 범죄에 연루돼 있고, 대통령 후보까지 조작한다. 법은 가진 자의 편이다.

세계에서 무소불위의 기관인 CIA는 국방 예산을 줄이려는 정치인들이 못마땅하다. 자신이 건재하기 위해서는 긴장 상태가 세계적으로 만연해야 한다.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줄 가경파를 대통령 후보로 만들어 가는 CIA 국장은 미국의 실체를 암시한다. 정치에 대해 일반인들이 갖는 냉소적 관점을 소설로 풀어 헤친 셈.

글ㆍ사진 권오현 문화과학부 기자 koh@hk.co.kr

입력시간 2002/02/06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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