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연해의 中國통신](21) 극단이 지배하는 중국의 미래

홍콩에 1997년은 결정적인 시기였다. 그 해 2월 개혁의 총설계사이자 홍콩에 ‘1국2체제’ 실시를 결정한 덩샤오핑(鄧小平)이 사망했고, 7월1일에는 홍콩 주권이 150년만에 중국으로 귀속됐다.

당시 홍콩은 폭풍전야의 조각배처럼 아슬아슬하게 비쳐졌다. 적어도 서방, 또는 비중국권의 시각에 젖은 이방인에겐 그랬다.

이방인이 홍콩에서 위기를 느낀 이유는 간단했다. 덩의 사망과 주권반환을 분석하는 서방의 시각이 위기론에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미중앙정보국(CIA)과 기타 연구기관들은 덩의 사망을 전후해 극단적으로는 중국의 분열을 예상하는 시나리오까지 내놓았다. 주권반환 이후 홍콩의 장래에 대해서도 비관적인 목소리가 컸다.

물론 홍콩의 장래를 낙관하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위기론이 갖는 솔깃함과 서방언론의 이벤트성 보도로 인해 낙관론은 묻히다시피 했다. 2002년에 밟은 홍콩은 5년 전의 온갖 위기성 시나리오를 에피소드로 느껴지게 했다.

홍콩의 경험은 21세기 중국관에도 유효한 것 같다.

극단적인 낙관론과 비관론이 지배하는 현실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낙관론은 1978년 개혁ㆍ개방 이후의 급속한 경제발전이 21세기 초반에도 무리없이 지속된다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 낙관론을 떠받치는 예상 통계치로는 1998년 세계은행이 내놓은 구매력(PPP) 기준 국내총생산(GDP) 평가가 대표적이다.

1978년 미국의 23%였던 GDP 총량은 1995년 52%, 2000년 60.6%로 상승하고, 마침내 2015년 미국을 초월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낙관론은 서방, 특히 미국의 매파와 결혼하면서 ‘중국 위협론’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반면 비관론은 중국의 발전에 내재된 모순과 문제점에 초점을 맞춰 성급한 ‘중국 멸망론’으로 귀결되는 경향이 있다. 해외기업의 대규모 투자에 힘입어 연평균 10% 내외(지난해 7.8%)의 GDP 성장을 계속해 왔지만, 언제든 성장의 정체가 닥칠 수 있다는 것이 비관론의 골자다.

성장의 정체는 곧 잠재된 문제의 폭발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비관론은 경제적 문제와 정치ㆍ사회적 모순을 동시에 중시한다. 적자 투성이의 고투자ㆍ저효율 국유기업과 금융부문이 경제문제의 핵심이다. 총투자자본의 70%를 잠식하면서 생산량은 전체의 30%에 불과한 국유기업과 불량채권이 전체대출의 30%에 이르는 은행권은 경제의 목을 죄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경제발전에 따라 팽창되는 중산층이 과연 공산당의 1당독재를 언제까지 용납할 지가 관건이다. 성장을 위한 안정축이었던 공산당의 정치적 정당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다.

중국에 대한 전망이 극단적인 것은 중국이 복합ㆍ다양성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사회과학원 국가정세연구센터 후안깡(胡鞍鋼) 소장에 따르면 중국은 ‘2개 제도와 4개 세계, 4개 사회’를 동시에 갖고있다.

‘2개 제도’는 농촌(인구의 3분의2)과 도시간 신분구분 제도를 말한다. 출생지역에 따라 공공서비스 향유와 성공 기회에 제약을 받게 되는 현실을 이른다. ‘4개 세계’는 중국 내에 선진국 수준의 제1세계(인구의 2.2%), 중진국 상층수준의 제2세계(22%), 중진국 하층수준의 제3세계(26%), 후진국 수준의 제4세계(50%)가 공존하는 것을 칭한다.

‘4개 사회’는 농업사회(인구의 50%)와 공업사회(23%), 서비스 사회(22%), 지식사회(5%)가 병존한다는 것.

이 같은 복합성은 지금까지 중국이 보여준 개혁의 성공과 내재적 문제점을 동시에 반추하게 한다. 아울러 극단적인 낙관론과 비관론이 ‘누구의 희망’을 반영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해준다. 중국은 거대하게 움직이고 있다.

용이 될지, 이무기가 될지 속단하기 보다는 중국인과 중국정부의 움직임을 차분히 지켜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개혁ㆍ개방에 대한 중국정부의 태도는 ‘돌다리도 두드려가며 건넌다(摸著石頭過河)’는 것이다.

배연해

입력시간 2002/02/19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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