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들여다보기] “쥬래식 파크 네 살”

중미의 코스타리카에서 200마일 이상 떨어진 외딴 섬에서 집채만한 철창이 옮겨지고 있다. 중무장한 수십 명의 장정들이 총구를 모두 철창으로 향한 채 조심조심 옮기는 것이 꼭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 속으로 몰아 넣는다.

아니나 다를까 외마디 비명과 함께 일꾼 하나가 철창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혹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나 않을까 하면서 철창을 호송하던 장정들이 일제히 철창 속에 있는 미지의 괴물을 향해 사격을 하면서 끌려 들어가는 일꾼을 구해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그 일꾼은 비명소리와 함께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그리고 두꺼운 쇠창살 사이로 언뜻 보이는 것은 악어와 같은 피부에 뱀 같은 눈을 한 티라노사우루스..

이렇게 시작한 영화 ‘쥬라기 공원’은 상업주의와 맞물린 현대 과학과 인간의 오만이 상상을 뛰어넘는 비참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특히 중생대 공룡들을 유달리 좋아하는 미국 어린이들에게는 거의 환상적인 영화였다.

우리 집 큰아이도 예외가 아니어서 철들고 나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룡이 거의 인생의 모든 것을 차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3살 때부터 보기 시작한 유아 TV프로그램의 주인공 바니(Barney)에서부터 어린 아기 공룡들의 이야기를 그린 만화영화 ‘랜드비포 타임(LandBefore Time)’, 미국판 용가리 영화인 ‘고질라(Godzilla)’, 최근에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보내주신 한국의 아기 공룡 둘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여기에 쥬라기 공원까지 가세하는 바람에 한동안 우리 집 큰 아이와의 대화는 뿔 모양으로 공룡 이름 맞추기로 시작해서 큰 아이가 흉내내는 공룡 소리를 듣고 이름 맞추기로 끝나곤 했다.

그런 큰아이가 최근 쥬라기 공원 3편을 보고 나더니, 공책에다가 무엇을 계속 쓰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그림 그리기만 좋아해서 눈만 뜨면 종이에다가 온갖 만화를 그려대던 녀석이기에 공책에 무엇을 쓰는 것이 하도 기특해서 하루는 저녁 식탁에서 물어보려는 참이었는데, 오히려 큰 아이가 먼저 물어왔다.

“아빠, 나 요새 학교에서 이야기 쓰기 하는데 뭐 쓰는지 알아요?” 이제야 공책에 쓰는 것이 학교 숙제이고 숙제를 그렇게 열심히 하니 정말 기특하다 싶어서, “그래, 뭐를 쓰는데?” 하고 물었다.

“쥬래식 파크(Jurassic Parkㆍ쥬라기의 영어 발음은 쥬래식임) 네 살, 가지 않은 산”이라고 큰아이가 대답했다.

“뭐, 뭐라고?” 내가 되묻자, “쥬래식 파크 네 살, 못 가는 산”몇 번을 묻고 나서야, 큰 아이가 “쥬라기 공원 4편-훠비든 마운틴(forbidden mountainㆍ금지된 산)”을 이야기하려고 하였다는 것을 알았다. 틴에이저가 되면 할리우드에 가서 영화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집에서는 한국어를 쓰도록 지도하고 있다. 미국에 살고 있지만 한국인으로서 한국말을 꼭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키는 것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부모가 영어로는 자식들과 대화할 수 없는 때가 올 것이란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부모가 영어를 잘 한다고 해도 한국에서 30년을 살다 온 부모가 10여년을 미국에서 자란 아이들과 영어로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을 바라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같은 한국말을 쓰는 부모 자식간에도 40대의 부모와 10대의 자녀들 사이에는 서로 말이 안 통한다고 하는 판에 진짜 말이 서로 통하지 않는다면 정말 난감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모의 이기적인 생각 때문에 우리 집 아이들은 할수 없이 집안에서는 한국어를 써야 한다.학교에 다니는 큰아이와 작은아이가 집에서 가장 자주 듣는 야단은 바로 “또 영어 한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3살 짜리 막내딸마저도 오빠들이 영어로 이야기하면, 아빠 억양을 흉내내서, “오빠, 또 영어 한다”라고 핀잔을 주곤 한다.

이런 사정 때문에 큰아이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한국말을 하는데, 그러다 보니 “쥬래식 파크 네 살” 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 말을 듣고 하도 크게 웃어대는 엄마와 아빠를 보고 멋쩍어하던 큰 아이는 엄마가 ‘쥬래식 파크 4편, 금지된 산’ 이라고 고쳐주자, 그대로 따라 하면서 계속 무안해 하고 있었다.

말이란 참 어렵다. 쓰는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나오는 구문들도 새로이 배우고 익혀 가는 사람들에게는 생소하고 어색하기 그지없다. 한국의 사정도 비슷한 것 같다. 영어도 해야 되고 한국어도 같이 해야 하니 얼마나 어색할것인가. 남들(미국인 등)은 영어 하나만 해도 되는데 말이다.

그러다 보니 “쥬래식 파크, 네 살” 같은 행태도 보인다. 그렇다고 비웃으며 손가락질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양쪽 말을 다 잘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용기를 북돋아주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인 것을.

박해찬 미 HOWREY SIMON ARNOLD & WIHTE 변호사

입력시간 2002/02/19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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