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 유방암을 다시 생각한다

진보된 기술로 미세 암세포 DCIS 조기발견

유방암을 조기에 발견하는 새 기술은 흥미로우면서도 혼란스럽다.

43세인 낸시 율린씨는 유방촬영검사(mammogram)에서 유방암의 징조로 의심되는 뭔가가 발견되었다는 말을 의사로부터 들었으나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7년전에도 종양이 발견되었지만 별 탈이 없었기 때문이다.

낸시는 조직검사 결과 유방촬영검사에서 발견된 그 무엇인가가 DCIS(ductal carcinoma in situㆍ원위치유선암)라고 불리는 이상 조직으로, 조기 유방암 세포이거나 궤양의 일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월트 디즈니사 TV 애니메이션의 색채 스타일리스트인 낸시는 “유방암인지 아닌지 너무 헷갈렸다” 면서 “이번에는 확실히 알아야 할 필요를 느꼈다”고 말했다.

낸시는 곧 그 이상조직이 악성 종양이며, 너무 미세한 종양 세포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강력한 유방촬영검사가 개발되기 이전에는 발견될 수 없었고 동시에 암 학계의 뜨거운 현안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암세포의 크기가 구슬이나 자두열매 정도라면 의사의 선택은 분명해진다. 수술을 통해 암세포를 제거하거나, 방사선 치료를 하면 된다. 그러나 암세포가 연필 끝처럼 작은 크기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수술이나 방사선 치료가 효과가 있을까? 아니면그냥 놔둬야 할까?


유방암 20년전에 비해 두배이상 증가

미국암학회(American Cancer Society)에 따르면 올 한해 20만 명의 여성(그리고 1,500명의 남성)이 자신들이 유방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20년전의 10만 명보다 두 배가 늘어난 숫자다.

지난 10년간 유방암으로 인한 사망률은 감소했다. 반가운 소식이지만 정작 암 전문가들은 새로운 우려를 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DCIS이다. 30년전만 해도 이런 미세한 암세포는 암환자의 6%에서만 발견되었으며, 온몸으로 퍼지지도 않았다.

이 비율은 오늘날 20%로 늘었다. 유방암 발견 기술이 진보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치기술은 수술과 방사선 치료에 머무르고 있다. 시애틀의 프레드 허친슨암연구소의 줄리 그레이로 박사는 “최근의 암 발견기술은 뾰족한 치료기술도 없이 오히려 환자를 더욱 궁지로 내몰지도 모른다. 상당수 환자들이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모른 채 건강하고 오래 살았을 것이다” 고 말했다.

유방촬영검사를 정기적으로 받는 것이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논란은 이 검사가 인명을 구하는데 과연 얼마나 효과적인가 하는 논란에 기초한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암 퇴치기술이 암 발견기술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데 있다.

결국 의사와 환자 모두를 준비되지 않은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희소식도 있다. 암세포 분자생물학 연구 등 기초연구에 대한 재정적 지원이 활발하고 연구가 꾸준히 진행되어 신약이 개발되는 등 나아질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임상 실험에 들어간 획기적인 암 퇴치 기술의 하일라이트로는 기존의 유방 세포조직을 해치지 않고 암세포를 없애는 외과시술과 치명적인 방사선을 암세포에 집중시켜 치료기간을 단축하는 기법, 암 세포가 한 두개 정도 림프절에서 활성화 되기 전에 발견해 방사선 치료에 따른 부담을 줄이는 기술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런 방법들은 아직 더 많은 임상 실험을 필요로 하고, 그 중 일부는 실패할 것이다. 궁극적인 퇴치법은 앞으로 10년에서 15년 사이에나 가능해질 암세포 유전자 감식법이 될 것이다. 의사들은 암 세포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암세포를 빨리 자라게 하는 생물학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알고 있다.

암세포에 대한 유전자 검사를 실시할 경우 어떤 암세포가 빨리 자라고, 어떤 암세포가 자라지 않을지 정확히 구분할 수 있을 것이고, 그에 따른 정확한 약 처방도 가능할 것이다.

대부분의 유방암은 가슴에 퍼져있는 좁은 관인 유선(乳腺)에서 시작된다. 몇 개의 세포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비정상적으로 성장하는 유전자적 실수를 하게 되고, 결국 그 세포들은 DCIS 세포를 형성하게 된다.

DCIS 세포는 유선 바깥으로 퍼져나가지 않는다는 특성이 있어 다행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악성이다.

남가주대학 의대 유방암 연구센터 소장인 데니스 슬레이몬 박사는 “일부에서는 DCIS 가 암세포 이전 단계(precancerous)의 세포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틀린 생각이다. 유선 바깥으로 퍼지지 않았을 뿐 다른 조직을 침범하기 이전 단계(preinvasive)의 암세포”라고 말하고 있다.


암세포자체의 성장능력이 관건

암세포는 유선을 파괴시킨 후에도 여전히 매우 작다. 유방촬영검사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암세포가 0.5cm에서 1cm인데 비해 환자나 의사가 손으로 만져서 느낄 수 있는 크기는 2.5cm 이다. 비록 유방촬영검사가 모든 암세포를 발견하기에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검사가 처치 가능한 작은 크기의 암세포를 조기에 발견할 수 있기에 수많은 여성들이 해마다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온 것이다.

암세포가 림프절에 일단 뿌리를 내리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림프절은 모든 불순물과 유해물을 흘려보내는 일종의 하수구 역할을 한다.

여기서 자라는 암세포는 뼈나 뇌, 폐 등 신체의 다른 부분으로 빠르게 전이될 확률이 높다. 의사들은 림프절까지 확산된 암세포는 유방에서 상당기간 성장한 것이라고 믿어왔으나, 최근에는 생각이 바뀌어 유방암이 발생된 시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세포 자체의 성장 능력에 달린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DCIS의 치료가 논란을 불러 일으키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고성능 유방촬영검사에서 발견된 미세한 암세포들이 만약 거의 자라지 않거나, 자라는 속도가 더디거나, 아예 스스로 소멸하는 종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경우 얼마나 빨리 암세포를 퇴치하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이고, 대부분의 환자들은 무리 없이 생존할 것이다.

만약에 그렇다면 암세포가 발견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냥 놔두는 편이 최상이 아닐까? 일부 유방암 전문가들은 여성들 중에는 미세한 암세포로 인해 죽기보다는 암세포와 함께 평생 살다 함께 죽는다고 말한다.

1988년에 시작된 공격형 암세포에 대한 한가지 흥미로운 연구가 단서를 제공한다. 2cm 이하의 작은 크기의 악성 암세포를 림프절에 지니고 있는 1,200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한 이 임상실험에서 의사는 이들 여성들의 유방에서 암세포를 제거한후 5년 동안 방사선 치료 등 별다른 적극적인 치료를 하지 않고 연구 관찰했다.

그 결과 11%의 환자에게서 암이 재발했으나, 궁극적인 생존율(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은 수술후 방사선 치료를 받은 다른 그룹의 환자들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치료여부 판별기술 아직 없다"

물론 한가지 임상실험만을 근거로 무턱대고 ‘잘라내고 기다리는’식의 처방을 권장하는 사람은 없다.

암세포가 얼마나 공격적인지 기다려서 알아보는 방식은 40대 보다는 기대 여명(餘命)이 짧고, 고강도 치료를 견디기 힘든 80대가 선호할 것이다.

DCIS 치료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만약 DCIS가 유선에만 머문다면 무시해도 무방하다. 아무도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한가지 연구에 따르면 DCIS의 40%는 공격적인 암으로 발전될 확률이 있다.

이는 곧 60%의 DCIS는 여성의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기적인 유방촬영 검사가 활성화 되기 이전, 대부분의 DCIS는 수술 도중 우연히 발견됐다. 기술의 발달로 DCIS의 발견 건수는 지난 30년간 미국에서만 7배 늘었다.

보스턴의 다나바퍼 암연구소의 에리 와이너 박사는 “DCIS를 가진 여성 중 누가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판별할 기술이 현재로서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정리 김경철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2/02/19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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