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망대] 증시 8000 고지 가를 분수령

부시와 하이닉스가 겨울의 끝자락으로 치닫는 우리 경제의 양대 화두로 등장했다. 설 연휴 바로 다음날 사상 2번째의 상승폭을 기록하며 한단계 레벨업된 증시가 800선에 안착할 수 있을 지의 여부도 당분간 두 변수의 움직임에 따라 결정될 수 밖에 없다.

우선 19, 20일 이틀간 방한하는 조지 W 부시 미대통령이 언급할 대북 정책기조과 한미 동맹관계 인식의 강도에 따라 우리나라의 ‘컨트리 리스크(country risk, 국가 위험도)’가다시 주목받을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시장 전문가들은 “지난 주말 부시대통령이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전폭 지지한다고 말하는 등 대북 공조 의지를 분명히 한 만큼 별다른 시장 교란요인은 없을 것”이라면서 “불확실성을 제거한다는 측면에서 부시의 방한은 호재가 될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하지만 북한에 재래식 무기의 후방배치를 요구하고 상호주의 원칙을 재확인하는 등 부시정권의 ‘악의 축’ 인식이 여전한 것은 부담이다.

또 부시 대통령이 이번 방한에서 자동차 시장개방이나 차세대전투기 기종 선정 등의 통상문제를 제기하며 대북 화해 제스처에 대한 반대급부를 요청할 가능성도 적지않다. 미일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일본 경제위기 타개책, 특히 엔저 정책과 금융부실 정리를 둘러싼 쟁점 역시 눈여겨볼 대목들이다.


하이닉스 매각협상, 난기류 걷힐까

금주의 하이라이트는 막바지에 접어든 하이닉스반도체 메모리부문 매각협상이다.

설연휴 마지막날 미국서 귀국한 박종섭 사장이 “마이크론과 40억달러선에 사실상 합의, 채권단의 결정만 남았다”고 했을 때만 해도 MOU(양해각서) 체결이 초읽기에 접어든 것으로 비쳐졌으나 마이크론이 국내 채권단에게 15억달러 규모의 신규 자금지원을 요구한 것으로 드러난데다 헐값매각 시비가 일고 소액주주들의 반발도 거세다. 어느 정도 예견됐던 난기류지만 막상 닥치고보니 헤쳐나가기 쉽지 않다.

여기에다 D램 반도체의 가격상승이나 산업정책적 고려에 기댄 독자생존론도 다시금 힘을 얻고있다.

하이닉스 구조조정 특위위원장을 지낸 신국환 산자부장관까지 가세한 독자생존론의 요지는 “마이크론의 세계전략에 따라 한국의 D램 반도체 산업은 완전 붕괴되고, 껍데기만 남게되는 비메모리 부문의 생존도 불투명하다”는 것.

하지만 독자생존론은 반도체 가격 상승이라는 불확실한 희망과 수조원대의 신규자금지원을 전제로 하는 것이어서 채권은행이나 시장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하고 있다. 진통이 심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국의 금융과 증시가 모두 살려면 하이닉스 매각은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얘기다.

국내 거시지표로는 주초 발표된 1월중 고용동향과 소비자전망조사 외에 21일 한국은행이 내놓는 지난해 4.4분기 도시근로자가구 가계수지 동향 정도가 관심. 또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2일 1월 경제동향을 발표한다.

일부에서 경기과열을 우려하는 만큼 국책연구기관인 KDI가 현재 경기를 어떻게 인식하고 정부에 어떤 정책을 주문할 지 궁금하다.

미국에서는 20일(현지시간) 소비자물가지수, 21일 1월 무역수지 통계가 나온다.기업실적으로는 월마트를 눈여겨볼 만하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 4주년(25일)을 맞게되는 이번 주엔 이처럼 특별한 모멘텀은 없는 대신 각종 이벤트가 줄을 잇는다.

우선 재경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는 21일 ‘경제개혁 성과와 향후 과제’를 주제로 국제심포지엄을 갖는다.

여기에는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등 국제기구의 고위인사와 학계ㆍ금융계 주요인사가 참여, 우리경제의 현주소를 점검하게 된다. 또 금융연구원은 22일 ‘재도약하는금융산업-금융부문 구조개혁 종합평가’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연다.

주목할 내용은 전경련이 22일 정기총회에서 발표할 ‘사회각계에 드리는 제언’. 전경련은 이 제언에서 부당한 정치자금 요청 거절, 정치논리로부터의 경제논리 독립 등을 재차 강조할 예정이다. 조만간 닥칠 선거국면에서 재계가 정치바람을 타지않고 자신들의 다짐을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다면 정치나 경제에 있어 커다란 발전이다.


예금보험채권 보증 동의안 처리 등 진통 예상

임시국회의 뜨거운 감자로는 4조5,000억원 규모의 차환용 예금보험채권 보증동의안 처리문제가 있다.

한나라당은 3월로 예정된 공적자금 국정조사에 대한 민주당의 합의가 전제돼야 동의안을 처리할 수 있다는 입장인데다 이미 발행된예보채중 손실이 확실시되는 56조원의 국채 전환도 요구하고 있어 큰 진통이 예상된다.

또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한도를 현행 4%에서 10%로 완화하는정부의 은행법개정안도 경제학계와 시민단체의 거센 반대 때문에 야당의 도움을 기대하기 힘든 상태다.

설 연휴가 중순에 있다 보니 2월 한달이 말 그대로 바람처럼 지나가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의 대선후보 결정게임이 본격화하는 3월부터는 온 나라가 바빠진다. 경제정책 당국자들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할 때다.

이유식 경제부차장

입력시간 2002/02/19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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