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제 때리기… 1대6 싸움

민주당 경선후보들 필패·대세론 시비로 감정대립

‘이인제 대세론’이냐 ‘이인제 불가론’이냐.

민주당 대선후보등록 마감(23일)을 앞두고 선두 주자인 이인제 고문을 둘러싼 7용(龍)간의 대세ㆍ불가론 시비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양립할 수 없는 두 명제의 논리싸움은 후보등록을 하기도 전에 벌써 상호비방과 흑색선전물 시비 등 감정싸움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놀란 당 선관위는 서둘러 인신공격 중단 요구와 함께 출처불명의 비방유인물에 대한 조사에 나섰지만 아직 별 성과는 없어 보인다. 막 불붙은 대세ㆍ불가론 싸움이 후보등록이후 유세전이 본격화하면 한층 치열해 질 게 불 보듯 뻔하다.

사실 이 고문을 둘러싼 대세ㆍ불가론 공방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7용들이 필요에 따라 포장하고 깎아 내리고 하는 소전투가 오래 전부터 되풀이됐다.

대세론만 해도 이 고문측은 각종 여론조사결과를 앞세워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에 맞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당내후보”라는 주장아래 끊임없이 제기해왔다. 이 같은 대세론은 엄청난 흡인력을 발휘, 당내뿌리가 없는 이 고문이 짧은 기간에 적잖은 의원들과 대의원을 끌어들이는 소득을 안겼다.

반대진영에선 대세론에 맞서 “이미 지지도가 꼭대기인 이 고문으로는 절대 이회창 총재에 이길 수 없다”는 이인제 불가론으로 세를 모았다. 3당 합당 참여, 신한국당 경선불복에다 민주당의 정체성과도 거리가 있는 이 후보가 당내 대선후보가 돼선 안된다는 주장이다.

이 고문과 경쟁관계인 6용은 ‘1997년 대선당시 김대중 후보에 훨씬 앞서있던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가 아들의 병역면제의혹으로 좌초했듯이 이 고문 역시 근본적 한계 때문에 안 된다’는 논리에 이심전심으로 힘을 보탰다.


노무현 고문 이인제 불가론 공식 제기

이처럼 해묵은 대세ㆍ불가론 시비가 후보등록을 앞두고 새 쟁점으로 급부상한 데는 노무현 고문이 공개석상에서 대놓고 이인제 불가론을 주장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노 고문은 14일 제주도의 3개 지구당 개편대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이 고문의 자질문제를 처음으로 문제 삼았다. 노 고문은 당시 “민주당 후보는 적어도 경선불복으로 국민으로부터 손가락질은 받지 않아야 한다”며 이 고문의 신한국당 시절 경선불복을 거론하며 첫 포문을 열었다.

그는 “중산층과 서민, 동서화합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민주당 후보가 돼야 한다”며 “나는 1990년 3당 통합 때 통일민주당 의원 53명이 여당으로 갔지만 가지않고 민주주의 원칙을 지켰다”고 주장했다. 에두르긴 했지만 3당 통합에 참여한 이 고문을 겨냥했다..

노 고문은 작심한 듯 그 뒤에도 사흘 내내 지구당 개편 대회 등에서 이인제 불가론을 리바이벌 했다. 16일 진주와 산청 등 경남지역 지구당 개편대회에선 “경선 불복한 사람이 후보가 돼서는 이 총재를 이길 수 없다”며 예의 불가론을 ‘이인제 필패론’으로 발전시켰다.

노 고문의 이인제 불가론은 대응해봐야 유리할 게 없다고 본 이 고문측이 의도적으로 대응을 피하면서 일과성 시비거리로 묻히는 듯했다. 그러나 당 선관위가 하루 뒤인 15일 “노 고문의 제주발언을 조사, 후보자 비방에 해당될 경우 당헌당규에 따라 엄정 조치하겠다”고 밝히면서 불씨가 살아났다.

노 고문측의 유종필 언론특보는 당 선관위의 입장발표가 있자마자 기자간담회를 자청, “과거체육관식 선거를 하는 것도 아닌데 후보의 자질과 정체성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니냐”며 거세게 반발했다.

유 특보는 “한나라당 경선에서 낙선한 후 불복했고, 한나라당이 폐기한 후보를 데려다 (민주당 대선후보로) 쓴다면 민주당은 껍데기만 남는 것”이라며 “당 정체성에 걸맞은 후보를 뽑아야 한다는 얘기는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노 고문 역시 “정부 고위직에 인사청문회가 있듯이 대선후보도 선거과정에서 후보상호간 비판을 통해 검증 받는 게 마땅하다”며 “경선이전에 후보들의 자질과 정체성을 검증하기 위한 토론회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 고문만큼 노골적이진 않지만 이인제 불가론에는 다른 주자들도 힘을 보태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앞서는 이 고문에 대한 공동의 견제심리가 엿보인다.

정동영 고문은 15일 별도로 낸 보도자료에서 “이인제 필패론의 문제의식에 공감한다”면서 “많은 분이 이대로는 어렵다고 한다”고 이인제 때리기에 가세했다. 김중권 고문 역시 “단순 인지도에 불과한 여론조사결과를 갖고 소위 ‘대세론’을 들먹이며 경선분위기를 예단하려는 행위는 경선의 목적을 훼손하는 행위”라며 이인제 대세론을 반박했다.


이 고문측 “무대응이 상책” 침묵

이 고문측은 타 주자들까지 가세한 십자포화에도 여전히 무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인제 불가론은 노 고문 등 후발주자의 정치적 계산에서 비롯된 만큼 ‘무대응이 상책’이라는 판단이다.

실제 이 고문은 “자질시비 등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대응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일부 참모의 건의에도 불구하고 “개의치 말고 우리 일만 해나가면 된다”고 말했다. 이는 공식석상에서 하는 이 고문의 연설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이 고문은 불가론은 아예 무시한 채 “우리 당도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많이 받는 사람이 후보가 돼야 이회창 총재를 누르고 당에 승리를 안겨줄 수 있다”며 대세론에만 열심이다.

이와 관련 이 고문측 김윤수 언론특보는 “이인제 대세론이 확산될수록 역설적으로 이 고문에 대한 비난은 물론 불가론이니 필패론이니 하는 억지 주장들이 난무할 것”이라며 “우리는 네거티브전략보다는 ‘이인제 후보= 대선승리’라는 포지티브전략에 치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안의 성격상 이 고문의 경선불복 등 쟁점화해도 실익이 없다고 본 것이다.

물론 이 고문측은 공식대응만 삼갈 뿐 막후에선 경선불복 등을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있다. 경선불복의 경우 이 고문측은 “신한국당 경선에서 진 뒤 이회창 후보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히고 경기도지사 업무에 충실했으나 아들의 병역면제라는 있을 수 없는 사태가 터졌다. 멀쩡한 두 아들은 군에 안 보낸 사람이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되도록 할 수는 없었다”는 일관된 해명을 하고 있다.


흑색 선전물 시비 확산, 공방가열

흑색유인물 배포에 대해선 더 단호하다. 이 고문측은 최근 설 연휴 기간 중 자신을 비방하는 유인물이 당 대의원들에게 우편으로 발송됐다며 당 선관위에 고발했다.

민주사랑모임이란 명의의 우편물에는 지난해 장기표씨가 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이 고문을 비판한 내용과 이 달 초 한 일간지에 대학교수가 이 고문을 비판한 글 등 ‘이인제 불가론’을 퍼뜨리고 있다. 이 고문측은 “흑색선전물 배포만큼은 초기에 차단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대선 주자간 설전에서 흑색 선전물 시비로까지 확산된 대세ㆍ불가론 공방의 2차전추이가 자못 궁금하다.

이동국 정치부기자

입력시간 2002/02/19 20:06


이동국 정치부 east@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