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크루

최근 작품들은 비디오와 DVD가 동시 출시되고 있다. 실버 코미디 <크루 The Crew>(콜럼비아, 15세)도 동시 출시작인데, 액션이나 사운드에 치중한 영화가 아니라서 어느 매체를 선택해도 득이나 실이 과하지 않다.

실버 무비야말로 우리가 할리우드 영화에서 부러워해야 할 것 중 하나인데, 시장이 있고 출연할 배우가 있다는 점 때문이다. 또한 실버 무비의 80%는 코미디, 나머지는 혜안을 드러내는 잔잔한 감동작들이어서 노년의 삶을 지레 걱정하고, 구질구질하게 여기는 우리네 좁은 속을 간단히 깨뜨린다는 점도 부럽다.

마이클 디너의 2001년 작인 <크루>는 젊은 시절 날리던 4인조 갱의 좌충우돌 노년을 그리고 있다. 네 주인공의 면면을 소개하는 도입부에서부터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만든다. 그만큼 인물의 성격, 개성, 동기 부여가 확실하고, 그 소개 또한 기발하다.

태어나면서부터 친구 사이인 네 소년은 돈과 권력과 존경을 누릴 수 있는 갱을 꿈꿔왔다. 그 소원대로 뉴저지의 밤 거리를 누볐던 네 청년. 야구 배트를 계집아이처럼 휘두른다고 한 코치를 방망이로 두들겨 패서 배트라는 별명을 얻은 다짜고짜형 조이.

마이크는 갱에게도 노조가 필요하다고 떠드는 돌머리고. 여자들에게 인기있는 화끈한 방화범 토니는 단어로만 말을 해 마우스라는 별명으로 불리운다. 나레이터인 바비는 어머니가 유태인이라 쥬이시란 별명이 붙을 뻔했지만, 그 말을 들먹이려는 놈들을 두들겨 패 이렇다할 별명없이 나이가 든다.

멋진 시절을 영원히 함께 하리라고 거들먹거렸던 이들의 오늘 모습은? 마이애미 해변의 은퇴자 임대 아파트 라지마할 베란다에 나란히 앉아, 가슴 빵빵한 아가씨들을 넋 잃고 바라볼 뿐이다. 전망 좋은 싸구려 아파트를 탐내는 젊은이들이 많아, 마지막 남은 네 노인은 "죽어 나가는 노인 없느냐"는 질문을 받기 일쑤다.

배트(버트 레이놀즈)는 의사로부터 심장 박동기가 가장 빨리 소모되는 환자라는 불평을 들을만큼 여전히 욱하는 성미여서, 마이애미의 모든 버거킹에서 해고되었을 정도다.

돌머리(댄 헤다야)는 자신의 손에 죽은 자들에게 회개한답시고, 시체를 웃는 얼굴로 화장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마우스(세이무어 카젤)는 미인이 넘쳐나는 거리에 살고있지만, 당뇨 환자 앞에서 사탕 흔들기 꼴이어서 아예 말을 잊고 산다.

노인 관광 버스 운전사가 된 바비(리차드 드레이퓌스)는 5살 때 헤어진 딸이 마이애미에 산다는 풍문을 듣고, 옛 친구들까지 끌고 정착한 터.

횡령과 강탈과 살인을 못하니 죽은 것과 마찬가지. 그러나 한 시절을 풍미했던 갱들인만치 시체로 치워질 날만 기다리기는 아깝지. 마침내 이들에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건이 찾아 오면서, 옛 기운을 되찾게 되는데.

네 노인 스타가 시치미 뚝 따고 슬로우 모션으로 등장하는 장면만 봐도 웃음이 터진다. 상황 묘사가 기발한 데다 어쩜 그리 능청스럽게 연기하는지. 버트 레이놀즈에게도 섹시 스타로 이름을 날리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할 정도.

변기 물에 머리를 처박고 기절할 때마다, 멋진 아이디어를 내놓는 노인이 된 그의 변신이 여간 귀엽지않다. 댄 헤다야는 정성껏 화장시킨 시체에 총을 겨누어야할 처지가 되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 흠집을 내는 꼴"이라고 조크하질 않나, 촌철살인의 대사들이 이어진다. 이 능청 노인들을 받쳐주는 여배우로 제니퍼 틸리, 케서린 모스, 레이니 카잔이 출연한다.

옥선희 비디오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2/02/25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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