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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D-100] "붉은 악마 있음에…" 축구가 산다

한차원 높은 응원문화 만들며 16강 열망

‘붉은 악마는 영원하다!’.

한국 축구의 또 다른 자존심 붉은 악마(Red Devil)가 보다 큰 용틀임으로 그라운드를 달군다. 2002 월드컵이 열리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그들은 하나 돼 한국의 열망을 담아낼 태세다. ‘한국 대표팀의 열두번째 선수’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쳤다.

가깝게는 지난 1월 31일 서울 광화문 네거리 동화면세점 앞 광장. 오전 11시부터 두 시간 동안 악마 120여명은 맞은편 동아일보사 건물 벽면 대형 전광판의 동영상에 울고 웃었다. 한국 대 코스타리카 전이 생중계 되고 있었던 것. 이날 3대 1로 한국이 지지만 않았더라면 광화문통은 난데없는 합창판이 벌어졌을 것이다.

당시 이들은 일주일전 24일 대 쿠바전에서의 아까운 동점(0대0)을 설욕해주겠거니 하는 기대로 잔뜩 부풀어져 있었다. 이런 식의 모임을 이들은 ‘단관’이라 부른다. ‘단체 관람’을 줄여 부르는 말.


6만여 회원, 상업화엔 “No”

이들은 현재 6만여를 헤아린다. 온라인상으로 입회한 사람만 따졌을 때의 회원수다. 확실한 수치가 아니라, 공지 사항 등의 조회수를 따져 낸 추정치다. 이들은 인터넷 공간의 어법과 만남의 규칙을 절대시하는 새로운 인간형, 인터넷 시민, 네티즌으로서의 예법을 절대시하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공식적’이란 것이 없다. 개개인의 다름을 철저히 인정하기 때문이다. ‘단관’의 경우도 홈 페이지에 공고하면 각자 알아서 온다.

이들이 인터넷의 수면위로 솟아 오르는 때는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수시로 모이는 소모임, 단체 관람 등의 행사에 50~100명 규모로 모이는 공식 모임 등 두 종류의 모임이 전부다. 대표팀 선수에게도 연락을 않는다. 아끼는 선수에게 심적 부담을 줘서는 안된다는 나름의 배려다.

네티즌 마인드가 그대로 읽힌다. 경기장 난동 등 걸핏하면 폭력 사태로 치닫고 마는 외국의 훌리건과 이들이 구별되는 지점이다.

이들에겐 또 하나의 이상한 원칙이 있다. 자신들을 절대 상업화하지 말아달라는 것. 회원 디자이너 장부다씨가 디자인 한 붉은 악마(Red Devil) 캐릭터인 치우천왕(蚩尤天王)의 얼굴은 축구팬이 아니더라도 안다.

기원전 2707년부터 109년간 중원의 배달국가를 다스렸다고 하는 천왕상이다. 치우의 영험으로 깃발을 휘두르면 반드시 전쟁에서 이긴다는 전설은 붉은 악마팀에게 그대로 현실화됐다.

1999년 브라질전부터 선보인 치우천왕의 이미지는 전통 방패연의 상징성과 절묘하게 결합돼, 극적인 시너지 효과를 낳았다. 이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미친듯 휘두르는 깃발에는 그런 뜻이 깃들어 있다.

그러나 호사다마. 이 캐릭터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해대니 기업체들이 그냥 둘 리 없었다. 지우천왕 얼굴을 자기 회사 선전에 쓰고 싶다는 문의가 요즘도 2~3일에 한 건은 들어 온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의 대답은 “no”로 한결 같다. 자신들을 상업화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네티즌의 순수성, 지켜달라

‘Be the Reds!‘.

2001년 5월 붉은 악마들이 시작한 유력인사의 명예 회원 위촉 사업의 표어이다. 같은달 28일 첫번째 명예 회원으로 김대중 대통령이 등록한 이래, 정몽준 FIFA 부회장 겸 대한축구협회장, 차범근 조수미 안성기 등 각계 스타들이 잇달아 이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일반인이 붉은 악마가 되는 길은 두 가지. 온 라인과 오프 라인 가입이 그것. 주민등록사본을 팩스나 e메일로 띄우면 간단한 확인 절차를 거쳐 회원으로 가입하는 방식이 온 라인 가입, 1999년 2대 회장 선거 이후 해 온 현장 가입이 오프 라인 방식이다.

95년 12월 이들이 태동했을 당시는 ‘그레이트 한국 서포터스 클럽(Great Hankook Supporters’ Club)’이라는 다소 촌스런 이름을 내세웠다. 현재의 이름은 2년뒤인 97년 토론끝의 결과. 이해 8월 한국 대 브라질 전에서 대표팀의 유니폼 색깔인 붉은 색 유니폼을 입고 응원해 예상밖의 홍응을 얻어 사기가 충천한 것.

곧 이어 벌어졌던 한중 정기전에서는 ‘붉은 악마’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전세계에 포효했다. 악마들은 해외서도 성가를 드높였다.

그해 9월 도쿄에서 열렸던 ‘98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2차전(대일본전)의 그라운드를 한국 노래와 구호로 뒤덮었던 그들. 눈부신 활약 덕에 10~11월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전(대 UAE전)부터는 서포팅 단체 자격도 획득, 보다 활발한 응원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을 쌓았다.

이어 98년 6월에는 응원가 모음 CD ‘붉은 악마’를 제작, 발매했다. 99년 6월에는 2대 회장인 김태호씨를 선출, 신문로 축구회관 4층에 자체 사무실도 갖게 된다. 회원제가 시행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즈음.

이후 이들의 원정 응원 행렬은 더욱 가속화됐다. 애들레이드(2000년 9월 시드니 올림픽), 도쿄(2000년 12월 한일정기전), 홍콩(2001년 1월 칼스버그컵) 등.

한일이 공동 개최하는 이번 월드컵에서는 자연스레 한일 양국의 응원전 대결도 불가피하게 됐다. 일본측의 응원단 ‘울트라 닛폰’의 조직적 응원과 한 그라운드에서 격돌하는 ‘응원 지존전’이 월드컵의 또 다른 화제로 떠오를 것은 당연하다.


추종세력 등 동맹군 늘어

최근 들어서는 이들의 이름 없는 동맹군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이들이 열광적으로 응원을 펼치는 한켠에는 분명 비가입자인데, 붉은 셔츠를 입고 와서는 옆에 와서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 사람들. 정확히 파악도 되지 않는 이들 ‘이상한 붉은 악마’는 최근 들어 그 숫자가 점점 늘고 있다.

현재 회장단 교체로 일체의 공식 활동을 중지하고 있는 악마들은 3월 1일 이후에는 신임 회장단 기자 회견을 신호로 국민을 즐겁게 할 예정이다. 하루 이들의 홈페이지에 접속하는 사람들은 1,000명 이상으로 집계되고 있다.

특히 경기 정보를 모아 따로 떼 놓은 배너에는 하루 5,000회 이상으로 클릭수가 나온다.

이번 월드컵에서 이들의 바람은? 우선은 1승을 거두는 것, 그래서 16강에 오르는 것. 간단 명쾌하다.

이들은 충분히 승산 있다고 본다. 히딩크 체제 하에서 대표팀은 분명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까지는”이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이들의 기대치는 상당해 보였다.

개인주의적 인터넷 마인드와 격렬한 그라운드의 만남, 알 수 없는 추종 세력, 붉은 악마는 그래서 새로운 팬덤(fandom) 현상이다.

장병욱 주간한국부 차장 aje@hk.co.kr

입력시간 2002/02/25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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