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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탐구] 마임배우 유진규

침묵으로 전하는 큰 느낌·큰 자유

● 관객들을 위하여

마임배우 유진규(50)는 한국마임계를 이끌어가는 대표급 1세대 배우다. 30년전 연극배우로 출발해 몇해 뒤 무언극으로 독립했다.

한창 활발한 활동을 펴던 중 갑자기 무대를 떠나 시골에서 소를 키우며 살았다. 소값 파동으로 망한 뒤 카페주인이 된 그를 다시 무대로 끌어낸 것은 친구. 국내 마임계를 위해 동분서주하던 어느날 두통에 못이겨 찾아간 병원에서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일체의 외부접촉과 일을 중단한 그는 홀로 지리산 자락 한 절에 들어가 침묵수행을 시작했다. 침묵이 끝날 무렵, 거짓말처럼 뇌종양은 사라져 있었다. 그는 요즘 '빈 손'으로 무대에 오른다. 왜 빈손일까.


● 1막 1장 - 외톨이 소년

아이는 참 말이 없었다. 늘 외톨이처럼 놀았다. 서울 동숭동에서 살던 어린 시절, 골목에서 동네 꼬마들이 노는 양을 보고 있던 한 이웃 아주머니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쟤는 꼭 어른같지 않아? 애들이랑 어울리지 않고 어른처럼 밖에 나와서 가만히 앉아서 보기만 하는 것 좀 봐' 아이는 바깥 세상의 소음엔 관심이 없었다. 아이의 시선은 언제나 자신의 내면을 향해 꽂혀있었다. 평생 그 안이 궁금했다.


● 1막 2장 - 연극배우로 서다

동물을 너무나 좋아해 수의사가 되고 싶었다. 70년 건국대 수의학과에 입학했지만 군대생활을 방불케하는 학과 내부의 엄격한 규율에 질려 공부가 싫어졌다.

우연히 게시판의 모집 공고를 보고 찾아간 연극반은 그로 하여금 수의사 꿈을 완전히 잊게 만들었다. 수업 대신 연극에 정신없이 빠져든 사이 학교에서 제적당했다.

72년, 전위적 실험작품들로 유명했던 극단 '에저또'에 입단, 집을 뛰쳐나와 극단에서 먹고 자며 살았다. 연극인이 하류계급처럼 취급되던 시절, 그 하류계급에 제 발로 걸어들어간 장남앞에 결국 부모님도 손을 든 채 차라리 믿음을 택했다.

행운이라면 특히 신체표현을 중시한 극단의 특성으로 연극외에 마임과도 친해진 것이었다. 마임이라면 뒤뚱거리는 채플린 흉내나 내는 쇼 정도로만 알았던 시절, 세계적 배우 롤프 샤레의 워크샵에 참여했던 연출가를 통해 배운 마임은 진지한 무대예술로서의 꿈을 품게 만들었다.


● 2막 1장 - 마임배우 유진규

마침내 연극을 접고 마임의 길을 선택했다. 연극계에서도 쓸만한 재목으로 한창 주목을 받고 있었지만 마임은 연극에서도 얻을 수 없는 자유를 그에게 허락했다.

굳이 다른 사람의 시나리오에 따라 자신을 꿰어맞출 필요도 없었고, 철저히 혼자가 된 채 온전히 자신의 뜻대로 표현할 수 있도록 풀어주었다. 그건 모험이면서 개척이었다. 무엇보다 끊임없이 자신의 안이 궁금했고, 그것을 바깥에 꺼내보고 싶었던 배우, 침묵을 사랑했던 배우에겐 가장 잘 맞는 옷이었다.

처음엔 대중적인 판토마임으로 출발했지만, 중반으로 치달은 유신정부 아래 그는 서서히 자신의 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거창한 정치사는 접어두고라도, 심지어 개개인의 머리길이, 통행 시간까지 간섭하는 무지막지한 권력이 이 젊은 배우로 하여금 무대에서 화를 내게 만들었다.

76년 '발가벗은 광대'는 그의 소리없는 저항이 담긴 작품이었다. 못에 매여진 실을 한쪽 다리에 매단 채 반경 몇 센티미터속에서 몸부림치듯 튀어오르는 개구리, 그 앞에 역시 두 손을 뒤로 결박당한 그가 입에 큰 가위를 물고 등장했다.

그리고는 사방으로 날뛰는 개구리를 정확히 정조준해 입에 물고 있던 가위를 떨어뜨렸다. 섬뜩한 잔혹게임. 관객들이 비명을 질러댔지만 운좋게도 개구리의 본능적인 순발력은 예상 이상이었다. 이 서늘한 실험적 마임은 체제의 억압으로 상처받는 이들끼리도 서로 뭉치지 못한 채 오히려 서로에게 또다른 공격과 상처를 가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었다.

이 작품은 그의 변신을 예고하는 서막에 불과했다. 단순한 재미를 위한 몸짓은 이미 그의 마음을 떠나 있었다. 그의 공연은 퍼포먼스 못지않게 파격적이고 실험적이며, 연극 못지 않게 진지하고 난해하며, 현대무용 못지않게 아름답고 역동적이었다. 마임이 꿈틀거렸다.


● 2막 2장 - 억지로 보여주긴 싫어!

그토록 '악의 핵'처럼 경멸했던 유신정권의 주체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버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당한 것이다. 억압에서 벗어났다는 기쁨도 잠시, 한편으론 너무나도 온 정신의 에너지를 쏟아붓던 분노의 대상이 갑자기 사라지자 묘한 공황상태까지 찾아왔다.

오랫동안 이어왔던 명상을 하던 중 뒤이어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고, '아름다운 사람'등을 통해 얼마간 '보이는 세계 이면의 또다른 세계'를 이야기하던 그는 결국 다음의 물음에서 걸음을 멈춰버렸다.

'남에게 보여주기위해 작품을 만들고 무대에 서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가? 이것 역시 작위적인 것 아닌가?' 결론은 그만둬야 한다는 것이었다.


● 3막 - 마임은 잊었습니다.

다 집어치우고 낯선 객지 춘천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81년의 일. 그는 더이상 배우가 아니었다. 그저 그렇고 그런 무지랭이 촌사람이었다.

결혼도 했고, 아침부터 일어나 온 몸에 쇠똥 냄새를 묻히며 청소를 하고 소 여물을 주는 일, 멀리 떨어진 곳 장날의 우시장도 돌아다니는 등 소박하지만 행복한 범부로 살았다. 5마리로 시작한 소가 30마리까지 불어나 제법 식구가 두둑해졌을 무렵, 역시 군인들의 엄호를 받고 새로 등장한 대통령의 형님이 농촌을 도와준답시고 외국산 소들을 대량 수입하면서 느닷없는 소값 파동이 터졌다. 하루아침에 망해버렸다. 헐값에 소를 넘기고 춘천시내 한 대학앞에 카페를 열었다.

그러던 중 옛날 그의 공연기획자로 있던 친구가 불쑥 찾아와 '책임감'이란 말을 꺼냈다. 그를 위시한 1세대 마임배우들이 대부분 퇴장하면서 그토록 개척정신에 불타올랐던 국내 마임계가 완전히 소멸직전이라는 얘기였다.

그러니 '당신이라도 다시 돌아와 마임계를 지켜야하지 않겠냐'는 호소였다. 친구를 돌려보낸 후 한참 고민한 끝에 다시 마임을 찾기로 했다.


● 4막 - 회귀

그건 '나'보다 '우리'를 위한 시작이었다. 친구 사귀기에도 서툰 그가 '조직체'에 뛰어들었다. 그후 10여년이 흐르는 동안 정말 열심히 일했다. 89년 한국 마임 페스티벌을 태동시켰고, 이듬해엔 한국마임협의회까지 구성해 본격적인 국내 마임계 부흥에 불을 지폈다.

올해로 14회째를 맞는 춘천 국제마임페스티벌도 거의 매년 운영위원장을 도맡아 동분서주, 이만큼이나마 마임이란 단어가 사람들과 친숙해진데엔 그의 이름이 빠질 수 없다. 개인 배우로서도 한국적 마임에 대한 고민을 새로 끌어안으며 재도약, 향과 한지, 정안수 등 독특한 방식으로 구현해 국내뿐 아니라 유럽인들까지 매료시키기도 했다.


● 5막 1장 - 대체 내가 왜 뇌종양을?

불면증이 심해졌다. 97년 어느날부터인가 머리 한쪽이 깨질 듯 아파왔다. 처음엔 이따금 찾아오던 편두통이 점점 더 자주, 점점 더 강도높은 통증으로 기습해왔다. 나중엔 머리만 아니라 온 몸이 고압전류에 감전된 것처럼 전율하듯 아팠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 증세가 심각해진 후 대학병원을 찾아가자 MRI 촬영을 마친 의사는 그의 뇌에 종양이 생겼음을 알렸다. 그것도 위치상 가장 손대기 어려운 뇌간에 자리, 조직검사조차 함부로 할 수 없으니 당분간 지켜볼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암일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었다.

충격속에서도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대체 왜 내게 이런 난데없는 병이 생겼을까.'가만히 자기 자신에게 묻고 또 물어보았다. 어느 순간 그간 조직체 활동속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쌓여온 스트레스가 불길한 신호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인간관계에서 빚어진 상처와 분노의 감정들이었다. '그것 때문에 내 몸이 스스로 제동을 거는 거구나, 몸이 더이상 버틸 수 없으니 이젠 그만 그 일에서 손을 떼라고 이러는구나' 생각할수록 또렷한 메시지처럼 다가왔다. 겁날 것도 두려울 것도 없었다.

사람으로 인해 생긴 병, 일체 사람들과 연락이 닿지 않는 외딴 곳에서 스스로 풀어보기로 했다. 어디로 가는지는 아내에게만 알려두었다.


● 5막 2장 - 모두 내 잘못이었구나.

지인의 소개로 찾아간 지리산 실상사. 철저히 침묵과 묵상으로 일관했다. 약이라곤 하나 먹은 게 없다. 매일 새벽과 저녁예불에 참여하는 것 외엔 수시로 주변 암자나 산길을 거닐며 자신의 마음에만 집중했다.

밥을 먹는 동안에도 늘 같은 물음이었다. '왜 스트레스가 생겼을까. 대체 무엇이 이렇게까지 내 안에 얽혀 있는 걸까'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답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림처럼 떠오른 몇몇 장면들을 통해서였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을만큼 여전히 격한 감정으로 남아있는 사람들과의 나쁜 기억들.

그러나 피하지 않고 필름을 돌리듯 맨처음 발단까지 거슬러 올라가 가만히 자신과 상대방을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그 모든 갈등의 근원이 또렷이 보였다. 자신의 감정에 가려져 잘 볼 수 없었던 상대의 입장이 비로소 이해됐고, 스스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의 잘못, 설령 상대에게 잘못이 있었더라도 자신이 잘 받아들였더라면 전혀 이렇게까지 꼬일 문제가 아니었음을 알았다.

모든 문제는 상대와는 무관한, 바로 자기 자신의 것이었다. 그 순간 꼬인 실타래가 풀리듯 마음속 응어리가 저절로 녹아버렸다. 그렇게 하나둘 지난 기억들을 풀어내는 동안 이상하리만치 충만하고 고요한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침묵수행 30일이 넘어서면서 몸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그토록 집요하게 붙어다니던 통증이 어느틈엔가 조금씩 누그러지고 있었다. 약 40일쯤 흘렀을땐 통증이 완전히 사라져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뒤 다시 병원을 찾았을때 악화가능성에 잔뜩 긴장해있던 의사는 MRI 촬영후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어디로 갔지?' 뇌종양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비슷한 환자를 수없이 만나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고 했다. 마음의 힘은 그런 것이었다.


● 6막 - 오늘도 가만히 나를 바라봅니다.

그는 요즘도 매달 마지막 토요일이면 춘천 옥천동 '마임의 집'에서 '빈 손'으로 무대에 선다. 뇌종양을 이긴 직후 만든 이 작품은 3년째 공연중이다.

말하자면 빈 손은 욕심에 대한 이야기다. 뭔가를 얻고 싶다면 손에 쥔 것부터 비우세요, 마음속을 비워두세요, 말보다 침묵을 사랑하는 마임배우 유진규가 몸짓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다.

무대에 선 그 자신도 그간 또 비워낸 것이 많다. 3년전부터 공연 분장 없이 무대에 오르고 있다. 완전한 맨 얼굴에다 무대위 금기처럼 여겼던 안경까지 숨김없이 걸치고, 옷도 허술하면 허술한 그대로 무대에 선다.

그는 연기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그에게 인생은 연극도, 도전도 아니고 가만히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자신을 깊이 껴안아가는 과정일뿐이다.

정영주 자유기고가 mar10@chollian.net

최규성 사진부 기자 kschoi@hk.co.kr

입력시간 2002/02/25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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