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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삐 풀린 집값, 잡을 길 없나?

부동산 투기단속 '엄포'도 별무신통, 집값 불안심리

“거동 불편한 노모를 모시며, 올 봄에는 내 집을 마련하려고 허리띠를 졸라맸는데, 이제는 괴로운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재경부 인터넷 사이트에 항의와 푸념의 글을 올린 목동 세입자 박모씨)

“요즘 직장인들을 만나면 온통 집 이야기 뿐입니다. 누구 집은 얼마 올랐다더라, 옆 부서 모 과장은 분양에 당첨돼 수천만원의 프리미엄(웃돈)을 챙겼다더라는 식입니다. 30평형대 강남아파트가 조만간 10억원을 넘어설 거라는 추측에도 귀가 솔깃합니다.” (더 늦기 전에 집을 사야겠다는 생각에 최근 은행에서 담보대출을 받았다는 대기업 손모 과장)

부동산시장이 난기류에 휘말려들고 있다. 세무조사를 내세운 정부의 강력한 주택시장 안정 의지에도 불구하고 집값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집값 불안심리는 위험수위에 달하고 있다.

80년대 말 집값 폭등의 악몽이 재연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청약시장은 사상 최고 경쟁률 기록을 연신 갈아치우고 있고 경매시장에서는 아파트 낙찰가율이 100%를 넘어서는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장이 섰을 때 한몫 잡으려는 은행의 담보대출 경쟁은 정상궤도를 이미 벗어난 상태. 부동산버블 붕괴에 따른 가계파산과 금융부실의 후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가수요 심리, 수도권 외곽까지 번져

국세청과 건설교통부의 요란한 투기단속을 비웃기라도 하듯 집값은 상승고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문제는 강남이라고 해서 강남 집값을 눌렀더니 강북과 신도시 등 다른 집값이 튀어나오고, 힘이 달리면서 이제는 강남도 다시 고개를 드는 형세다.

부동산컨설팅업체인 ‘부동산114’에 따르면 강남권에 몰리던가수요심리가 서울 목동, 경기 분당, 과천 등 신도시와 수도권 외곽으로 옮겨가면서 목동의 경우 1월 한달간 상승률이 7.21%로 서울 전체 상승률(3.95%)의 두배 가깝게 뛰어올랐다.

이외에도 재건축 기대감이 집값 상승을 부추기고 있는 과천이 7.82%의 상승률을 보인 것을 비롯, 하남 6.47%, 광명 6.44%, 분당 5.40% 등 집값 상승세는 신도시와 수도권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

이달 들어 강남 집값도 꿈틀대고 있다. 부동산 114에 따르면 2월 둘째주 서울지역의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은 0.79%. 이 중 1차 세무집중단속으로 가격 상승이 멈칫했던 강남(0.88%), 송파(1.23%) 등 강남권의 상승폭이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청약대란 앞둔 부동산시장은 전쟁중

신규 분양시장은 폭풍전야를 연상케한다. 4월 동시분양부터 180만명에 이르는 청약통장 1순위자들이 청약시장에 대거 진입하면 청약경쟁률이 1,000대 1이 넘는 아파트들도 줄을 이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분양시장은 4월 청약대란 전에 집을 사두려는 기존 청약통장 가입자들로 그야말로 북새통이다. 작년 초만해도 2~4대의 1에 불과하던 청약경쟁률은 8차 동시분양부터 고개를 들기 시작해 올초 이루어진 12차 동시분양에는 43.4대의 1의 사상 최고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 같은 분양열기는 정부의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이후 처음 실시된 2차 동시분양에도 그대로 이어 져 소규모 단지에 입지여건도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44대1의 청약경쟁률로 최고 기록을 한달만에 경신했다.

이외에도 1월말 용인 동천에서 분양한 동문건설 조합주택의 경우 6시간만에 1,400가구가 모두 팔려나가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용인 죽전에서 현대산업개발이 분양한 32평형 아파트에는 프리미엄이 2,500만~5,000만원까지 붙었다.

경매시장도 난리다. 부동산 경매전문업체인 디지털태인에 따르면 1월 서울ㆍ수도권의 법원 경매시장 동향을 조사한 결과 서울 지역의 아파트 낙찰가율이 100.8%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낙찰가율은 감정가 대비 낙찰가의 비율로 전체 낙찰가율이 100%를 넘어섰다는 것은 낙찰된 물건의 입찰가격이 감정가보다 높다는 뜻으로 집값이 지금보다 더 뛸 것이라는 확신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선취매 투자방식이다.

리얼티소프트 송영민 사장은 “특히 강남아파트의 경우 세무조사 바람만 지나가면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투자자들이 적지않아 경매시장의 과열열기는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수급불균형ㆍ투기 등이 집값 부채질

집값이 왜 오를까. 기본적으로 수급불균형 때문이다. 집을 사겠다는 수요는 많은데 공급물량이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외환위기를 전후한 1997~98년 2년간 신규 주택 착공이 급격하게 줄어든 것이 주된 원인이다.

닥터아파트에 따르면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에서 올해 입주하는 아파트 물량은 모두 12만3,802가구로 올해(13만5,336가구)보다 8.5%(1만1,534가구)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1990년 이후 가장 적은 규모다.

특히 연간 10만 가구 이상 공급되던 서울지역의 경우 입주 물량이 올해 3만6,565가구로 지난해보다 28%나 급감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강남이 집값 상승의 진앙지 역할을 하고 있다. 작년말 강남 지역 집값이 재건축과 교육여건 등 지역프리미엄을 업고 한달 사이 10~20% 이상 급등하면서 집값 신드롬에 불을 질렀다.

여기에 떴다방(이동 중개업소) 등 투기세력이 ‘악의 축’을 이루고 있다. 떴다방들은 미등기 전매, 청약통장 편법거래와 시세 조작 등 각종 불법행위를 통해 부동산시장을 어지럽히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을 일대로 활동하는 떴다방들이 300~400명에 이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추산. 작년말 강남 일대를 휘젓던 이들은 올초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피해 신도시로 무대를 옮겨 활동하면서 집값을 부추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의 무차별적인 주택관련 규제 완화와 금융권의 가계대출 경쟁도 ‘유죄’다. 부동산시장에 대한 투기수요는 일부 투기세력의 범주를 벗어나 전국민을 잠재적인 투기꾼으로 내몰 만큼 폭넓게 확산돼 있다.

분양권 전매 전면 허용, 청약제한 철폐, 분양가 자율화 등 정부가 경기부양을 내걸고 각종 규제들을 마구잡이로 푼 것이 화근이었다.

이와 함께 금융권이 아파트담보대출 등을 통해 가계대출을 급격하게 늘린 것이 투기심리에 기름(구매력)을 부은 꼴이 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예금은행의 신규 대출 규모는 모두 49조원. 이중 91.4%(44조8,000억원)가 가계대출에 집중돼 있다.

이에 따라 1996년 29.2%에 불과하던 가계대출 비중은 1999년 33.2%에서 2000년 38.3%, 2001년 3ㆍ4분기 43.4%로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입주물량 늘면 거품 상당수 꺼질 것

전문가들은 집값 급등 현상이 오래 가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내년부터 입주물량이 크게 늘어나 수급 불균형이 상당히 해소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로 99년 6만가구, 2000년 9만7,000가구, 작년 11만5,600가구 등으로 착공물량이 급속히 증가하는 추세다.

LG경제연구원 김성식 연구원은 “2~3년 전에 착공한 주택이 올 연말 이후 입주를 시작하면 일부 지역은 과잉공급 사태를 빚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 일대의 택지도 충분하게 확보된 상태다.

건교부에 따르면 현재 수도권에 확보된 택지는 2,345만평으로 약 45만8,000가구의 주택건설이 가능하다. 여기에 2~3년 안에 그린벨트 해제지역에 10만가구의 국민임대 및 일반 분양주택이 들어서는 데다 과천ㆍ하남ㆍ의왕 지역의 수도권 그린벨트 1,982만평도 택지로 활용할 계획이다.

‘돈줄을 죄서라도 집값을 잡겠다.’ 최근 전철환 한국은행 총재의 이 같은 취지의 발언에는 부동산가격의 지나친 상승세가 가져 올 부작용에 대한 깊은 우려가 반영돼 있다. 부동산가격의 상승이 인플레이션 기대심리와 연결될 경우 물가상승과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다.

국토연구원 박헌주 토지ㆍ주택연구실장은 “국내 주택시장의 흐름이 금융개혁 이후 부동산버블의 붕괴과정을 겪었던 80년대 영국 상황과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다”고 말했다.

86년부터 89년까지 4년간 영국의 집값은 연 평균 18% 이상 오르는 폭등세를 연출하다 88년을 고비로 인플레이션에 따른 금리상승 압박이 가시화하면서 부동산버블 붕괴의 홍역을 톡톡히 치러야 했다.

주택가격 급락으로 주택담보가치도 동시에 하락, 91년에는 전체 주택수의 33%에 해당하는 755만가구가 은행권에 무더기로 압류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박 실장은 “주택구입자 상당수가 저금리 대출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금리가 오른다면 이자를 감당하지 못한 급매물을 쏟아낼 수밖에 없고 가격도 급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병주 경제부기자 bjkim@hk.co.kr

입력시간 2002/02/25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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