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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정상회담] 대북 채찍에 당근 끼워넣기

미국 강경기조에 정부 노심초사, 의견조율 등 대응책 마련

김대중 대통령에게 20일 한미정상회담은 매우 힘겨운 무대가 될 것이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대북 회의감(skepticism) 표출 발언으로 곤욕을 치른 지난해 3월 워싱턴 한미정상회담의 재현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1월 29일 연두교서를 통해 북한을 ‘악 의 축’(axis of evil)으로 규정한 부시 대통령은 서울에 와서도 같은 기조를 유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부시 대통령을 김 대통령 쪽으로 끌어오는 ‘설득’은 시도될 형편이 못된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weapons of mass destruction) 문제에 관해 짙은 우려를 지닌 미측의 입장을 충분히 존중하고, 미국의 햇볕정책 지지와 대북대화 의지를 재확인하는 선에서 만족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카터 이후 가장 힘든 정상회담 예상

이번 회담은 역대 한미정상회담중 주도권이 가장 미국쪽에 있는 회담으로 기록될 듯 하다. 우리 정부가 정상회담 전에 용어 등에 신경을 써달라고 미측에 당부할 정도다. 혹자는 주한미군 철수문제를 놓고 양국 정상이 첨예하게 대립했던 1979년 카터 대통령의 방한때와 비교하면서 회담진행의 어려움을 설명한다.

이는 미국이 1ㆍ29 연두교서를 통해 대북정책에 관한 입장을 매우 충격적으로 밝혔기 때문이다. 교서에서 부시 대통령은 주민을 굶기면서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면서 북한의 위험을 방치하지 않겠다고 천명했고, 교서 발표이후 부시 행정부 고위 관리들도 같은 수위의 발언을 쏟아냈다.

부시 대통령의 대북관이 고스란히 담겨진 연두교서는 하루 이틀 만에 나온 문건이 결코 아니다. 911 테러 사건직후 언제 끝날지 모르는 대테러 전쟁을 선언한 부시 대통령은 교서에서 대 테러전쟁의 세부 전략을 밝혔다.

그는 대 테러 전쟁의 두 축을 명시했다. 첫 목표는 테러리스트와 테러집단을 청소하는 것이고, 둘째는 생화학 무기와 핵무기를 손에 넣으려는 테러조직과 정권들이 미국과 세계를 위협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목표에 따라 대량살상무기를 개발ㆍ수출하는 북한은 반드시 제어해야 할 대상이 됐다. 제어하는 수단으로는 대화, 힘 모두 거론된다.


부시 도덕적 성향이 대북 강경기조의 축

여기에 부시 대통령의 개인적 성향도 무시못할 핵심 변수다.

청년 시절 한때 방황했던 사람이 철들고 매우 도덕적인 인물로 변모하듯 부시 대통령은 현재 ‘진지한’ 청교도가 됐다. 밤늦게 까지 파티를 즐겼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달리 부시 대통령은 밤 10시가 되면 백악관의 불을 끄고 잠을 청한다. 5,000명 이상 숨진 911테러 사건의 상처를 안고 대통령직을 수행할 그에게 이 상처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절대 명제다.

그는 15일 한국언론과의 회견에서 악의 축 발언을 ‘도덕적 발언’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그에게 도덕적 발언은 정치적 발언 보다 더 무거운지 모른다. 악의 축 발언이 나온후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등이 한국을 의식, 북한의 차별성을 지적하는 ‘물타기’ 발언을 내놓았지만 부시 대통령은 한치도 후퇴하지 않았다.

외교 소식통들은 지난해 6월 북한에 조건없는 대화를 제의했던 그가 일언반구도 없는 북한에 매우 불편한 심정이라고 전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청교도적이면서도 정책의 의도, 지향점 보다는 정책이 낳은 결과를 중시하는 결과론자이기도 하다.

그는 종종 햇볕정책의 핵심을 군사적 정치적 신뢰조치 등을 통한 한반도 평화구축이 아닌 이산가족 상봉 등 국지적인 남북화해교류사업으로 국한하곤 한다. 외교 소식통들은 이를 “정책이 낳은 결과가 아니고서는 평가하지 않겠다는 부시 대통령의 성향”이라고 분석한다.


“대북 대화분위기 영구적이지 않다”

이러한 배경을 염두에 둘 때 그는 북한 위협론의 폭발성을 역대 미 대통령중 가장 심각하게 인식하는 인물일 것이다. 그의 이런 인식은 15일 회견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그는 “북한이 대량 살상무기 확산 의지를 갖고 있고 또 확산을 계속하는 것을 내가 우려하는 데 대해 한미양측이 솔직한 대화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나는 북한이 더 투명해지고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멈출 때까지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둘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현 단계에서는 대북대화가 유효하지만 영구적으로 유효하지는 않다는 경고다. 또한 북한에 대한 불신도 그대로 드러냈다.

그는 “한반도의 한쪽에선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고, 투옥되고 있으며, 자유롭게 속내를 털어놓지 못한다”며 “나는 ‘왜 그런가’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사람들에게 상기시켜주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미정상회담은 글로벌 차원의 미국 전략과 동북아에서의 미국의 역할 사이에서 부시 대통령이 균형감각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그가 대 테러 세계전략으로 인해 모든 지역적 현안이 파묻혀 버린 워싱턴의 분위기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그는 지역 안정을 위해 한반도 문제를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종전의 미 행정부의 입장을 서울에서 되뇌이면서 한국민의 정서를 이해할 기회를 갖는다. 김대중 대통령에게는 소중한 기회인 셈이다.

부시 대통령도 이를 의식, 15일 회견에서 “북한이 재래식무기를 후방으로 철수하고,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포기하고 검증절차를 밟는다면 미국은 당장 경제교류를 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어느 때보다 강한 대화 제스처를 보였다.

이 어조가 서울에서도 반복될 공산이 크다. 15일 회견에서 악의 축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 세심함이 서울에서도 재현된다는 얘기다. 그는 또 북한에 무조건적인 대화를 촉구하고 김 대통령의 햇볕정책과 통일관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보낼 것이다.

일부 관측통들은 그가 서울에서 획기적인 대북제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하지만, 그 가능성은 매우 낮다. 정부 당국자들도 “미국이 대북대화재개를 위한 별도의 당근은 준비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대화를 위한 대화를 상정하지 않는 부시 대통령은 대화개시 자체 보다는 대화를 통한 성과를 중시하고 있다. 초강경 대북경고를 내놓은 부시 대통령이 20여일만에 경고를 뒤엎는 유화조치를 내놓기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 모른다.

미국은 북한에 강력 경고하는 조치를 계속 내놓으면서 북한이 대화에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이 없을 듯 하다. 당분간 지속될 미국의 압박에 북한이 남북대화에 나설지 여부는 한미정상회담이후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대북 공조서 한미동맹 강화로 중심이동

이런 맥락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우리 정부의 기대치는 낮을 수 밖에 없다. 악의 축 발언이후 정부 당국자들은 이번 회담의 가장 큰 의제로 한미동맹강화를 거론했다. 내심 대북정책 공조에 무게를 두었던데서 후퇴한 것이다.

현재는 북한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해결촉구와 미북대화 재개 촉구가 회담의 주 의제로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반적으로 연두교서 발표이후 한미 양국은 대북정책을 긴밀히 조율, 서로 다가서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아무래도 한국측이 미국으로 좀 더 많이 이동한 듯 하다.

한편 이번 정상회담에서 쉽게 드러나지는 않겠지만 가장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우리의 차세대전투기(FX)사업의 향배이다. 보잉사의 생존과 직결된 이 사업에 관해 부시 대통령은 어떤 식으로든 관심을 표명할 것이 분명하다.

기업이익을 중시하는 미 공화당 정부의 성향, 결과를 중시하는 부시 대통령 개인 성향을 감안하면 틀림없을 것이다. 4월까지 사업자 선정을 끝낼 예정인 우리 정부가 라팔 등 여러 경쟁 기종 중 보잉의 F15기를 선택할지 여부가 주목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영섭 정치부기자 younglee@hk.co.kr

입력시간 2002/02/25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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