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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정상회담] 北은 '도라산의 합창'에 귀를 열까

한·미 정상 대북정책 '조율' 모양새, 향후 남북·북미 관계 시금석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후 난기류에 휩싸였던 한미 관계가 정상회담을 앞두고 가까스로 봉합되는 모양새를 갖췃다.

한미양국은 '동맹의 틀 안에서 대북 포용정책을 추진한다'는 그럴듯한 합의점을 도출해 냈다. 부시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은 20일 남북화해의 상징인 경의선 최북단 도라산역을 방문, 한미동맹과 햇볕정책을 동시에 재확인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의 응급처방이 북한을 대화로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모순의 햇볕정책

한미동맹의 강화를 통해 남북관계를 풀겠다는 발상은 DJ 정부가 표방해 온 햇볕정책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지금껏 햇볕정책은 한미동맹에 강조점을 두기 보다는 주변 열강들로부터 고른 지지를 답으면서 남북간 화해협력을 도모하는 것으로 이해됐다.

일각에서는 미국을 적절히 견제하면서 밎고 자주성을 강조해야 햇변정책이 성공할 수 있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때문에 한미 정상회담 후 남북관계는 이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 미국의 대북 강경책이 득세해 남북한의 운신 폭이 좁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남북문제가 미국의 세계 전략적 구도 하에서 움직이는 북미관계에 종속돼 움짝달작 못할 가능성도 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을 억지하고 압박하는 게 최상의 목표인 한미동맹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북한과 대화해야 하는 모순에 봉착해 있다.


어긋난 역할 분담론

정부는 완강한 미국의 대북태도를 누그러뜨리는 차원에서 "남북대화가 재개되면 북한의 대랑살상무기(WMD) 문제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전달하겠다"고 확약했다. 지금껏 미국의 전략적 사안이었던 북한의 WMD 문제에 남한까지 가세해 북한을 압박하겠다는 것이다.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보면, 북한은 6·15 공동선언을 통해 우리끼리 풀어가자고 약속했던 남한에 상당한 배신감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한발 더 나가 부시 대통령은 방한을 앞두고 15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북한과 대화르 갖게 되면 휴전선에서 한국을 겨냥하고 있는 무기를 뒤로 물리도록(move back) 강조할 것"이라고 밝혀 남북간 의제로 간주됐던 재래식 군비 문제까지 개입할 의지를 보였다.

이는 미국이 한반도의 안보문제를 독점할 것으로 이해된다.

언뜻 보기에는 미국은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대북 압박을 가하는 '채찍'을 . 우리 정부는 인도적 지원과 교류협력 등을 통한 '당근'을 제시하는 것으로 역할 분담이 이뤄진 듯도 하다.

그러나 경의선 철도 연결, 금강산 관광사업 등 남북현안 대부분이 군사적 이견 때문에 정체상태인 점을 고려하며, 남한은 미국만 쳐다볼 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는 이제 물 건너 갔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불확실한 주도권

정부는 미국 독주 상황을 막기 위해 3월 중 남북대화 재개방침을 표명하는 등 나름대로 안간힘을 쓰고 있다.

남북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미국의 대북 강경책을 조금이라도 완화하겠다는 계산이다. 정보당국의 고위 관계자는 구체적인 협의 경로를 밝히지 않은 채 "이미 올초부터 '3월 남북대화 재개'를 놓고 의견을 조율해 왔으며, 북측도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애드벌륜을 띄웠다.

물론 남북간에는 분명히 대화의 수요가 있다. 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은 남한이 이미 제공 방침을 정한 40만톤을 받아야 한다.

또 외화벌이를 위해 판을 벌린 아리랑 축전을 홍보해야 하고, '민족 최대 행사'라는 김일성 90회 생일잔치도 안정적으로 치러야 한다. 남북대화를 통해 '테러지원국' '깡패국가'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킬 필요도 있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 태도가 전혀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남북대화에 응할 지는 두고 봐야한다. 북한이 남측의 '당근'만 받고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등 실질적인 관계 진전은 회피할 공산이 클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북한은 남북대화 보다는 체제 생존의 열쇠를 쥐고 있는 미국과의 '빅딜'에 더 큰 비중을 둘 가능성이 있다.


암중모색하는 북한

'악의 축' 발언 이후 다분히 수세적인 반응을 보였던 북한은 11일 부시 대통령을 '악의 화신'으로 몰아세우는 등 공세로 나섰다. 북한이 심혈을 기울여 진행한 김정이 국방위원장의 생일(2월16일) 행사의 최대 이슈는 바로 '반미'였다. 6·15공동선언의 이행을 강조하는 등 '자주적 태도'를 견지할 것을 요구했다.

김위원장은 설 연휴를 전후해 우등허 신임 평양주재 중국대사와콘스탄틴 풀리코프스키 러시아 극동지역 주재 대통령 전권대표와 만나 북-중-러 대미 견제의 축을 다졌다. 중국과 서울 외교가에서는 김위원장이 조만간 중국을 방문, 부시 대통령의 한중일 3국 방문에 맞불을 지필 것이라는 첩보도 모락모락 피어 오르고 있다.

평양 주재 여욱 대리 대사인 제임스 호어 박사는 "북한은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지켜본 후 신중하게 대남·대미 정책의 기조를 결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03년을 위한 워밍업

최근 남북 및 북미, 한미간 갈등은 전초전에 불과하고 2003년 '담판'을 위한 예행연습이라는 분석도 만만찮다. 내년은 1994년 제네바 합의에 따른 경수로 건설 마감시한이면서, 북한이 밝힌 미사일 실험 유예 시한이 함께 걸려 있다.

북한은 미국이 경수로 건설 약속을 지키지 못한데 대한 보상을 요구할 뜻을 분명히 했고, 2004년부터는 미사일 실험도 재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북미간에 한 차례 대규모 충돌이 불가피한 것이다. 김대통령은 "2003년은 한반도에 중대한 시기가 될 것"이라면서 "이에 대한 상당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한 우려감을 피력했다.

이같은 정황을 종합하면, 남북한과 미국 등 이해 당사국 모두 올해는 현상유지에 주력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미국은 북한 보다는 먼저 이라크를 길들이는데 집중할 태세이고, 북한도 미국이 강하게 나오는 이상 납작 엎드려 내부결속을 다지는데 치중할 모양이다.

남한도 미국의 기세에 눌려 남북관계 개선보다는 한미동맹 복원에 비중을 두기 시작했다. 김대통령이 "올해는 월드컵, 아시안 게임, 지방선거, 대선 등 국가적 대사가 많은 만큼, 남북관계가 진전되지는 않더라도 악화되지는 않아야 한다"고 한발짝 물러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동준 정치부 기자 djlee@hk.co.kr

입력시간 2002/02/25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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