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혼] 호주제에 상처받는 재혼가정

‘자(子)는 부(父)의 성과 본을 따르고 부가에 입적한다’.

판도라의 상자, 민법 제 781조제 1항이다. ‘호주제’라는 말로 압축되는 이 간략한 명제의 이면에는 어떤 것들이 깔려 있을까. 남녀 성차별, 태아 성감별, 낙태 등 일련의 부정적 목록들이 우선 딸려 나온다. 이 페미니즘의 시대, 호주제는 사실 사면초가다.

모든 여성에게는 물론, 가부장적 전통과 책임에 버거워 하는 남성에게 그것은 질곡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현재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존재하는 법이다. 재혼은 물론, 트랜스젠더 부부가족 등 날로 활발해져 가는 가족 해체ㆍ형성의 시대적 추세를 가로막는 빗장이다.

재혼을 희망하는 여성의 대다수는 왜새 상대자가 전배우자와 성이 같기를 내심 갈망하는 것일까. 한국땅이 아니고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풍속도다.

호주제의 근원을 따져보면 자명한 사실이다.식민 치하이던 1923년 총독부의 조선민사령 실시로 일본의 전통적 법령이 그대로 이식됐던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의 친족상속법, 즉 호주상속제가 민법상의 관습법으로 굳었다.

그러나 일제에게는 이에(家) 구조로 집약되는 무신정권 특유의 상속 관례가 식민치하의 조선에 그대로 이식, 천황-신민의 주종 관계를 체질화해보자는 속셈이었다.

이 법은 사실상 일본땅에서는 미군정 치하이던 1947년 폐지되고 말았다. 민주헌법에 배치된다며 구법이 지금껏 한국에서 버젓이 시행된다는 사실이 다름 아닌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지적이다.

사단법인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2000년 9월 호주제 폐지 운동본부를 발족, 호주제의 시대착오성을 고발해 오고 있다.

박소현 상담위원은 “지금 세계 어느곳에서도 찾아 볼 수없는 호주제는 모든 여성에게는 질곡으로, 가부장적 전통과 책임에 버거워 하는 아들에게는 엄청난 정신적 부담”이라며 호주제의 현실적 의미에 대해 말했다.

박위원은 또 “선량들에는 유림으로 대표되는 보수세력의 표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이라며 호주제에 실린 과외의 무게에 대해 말했다.

결국 사회적 기득권을 이루고 있는 보수주의자들의 표를 얻으려 하다보니, 시대착오적 억압 구조에 정객들이 호소하지 않을 수 없다고 여성 단체들은 비판하고 있다.

장병욱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2/02/27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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