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방한과 한반도 정책] 선물은 커녕…체면치레만

DJ·부시 대북정책 '이견' 해소 아닌 봉합수준

2월 20일 한미 정상회담은 양국 갈등의 종지부를 찍지 못한 채 새로운 갈등의 불씨를 지핀 회담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1월 29 일 미국의 연두교서 발표 후 들끓었던 한미간의 쟁점은 회담후에도 여전히 내연중이다. 정상들의 화려한 레토릭 뒤에는 아직도 대북정책에 관한 양측의 이견이 자라고 있다. 회담 후 보수성향의 미 LA 타임스는 정상회담이 “해답보다는 의문점을 더 남겼다”고 평가했다.

이 신문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대북대화 촉구가 진심인지 아니면 초청국(한국)에 대한 정중한 예우 인지 아직 불분명하다고 전했다.


반미정서 최고조에 달한 시점의 방한

회담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판단은 일단 접어두고, 이번 회담은 대단히 ‘역설적’이었다. 한미동맹이라는 측면에서 그렇다. 정부 당국은 회담을 준비하면서 회담의 1차 목표로 한미동맹 관계 강화를 설정했다.

하지만 실제 회담은 1980년이후 반미(反美) 정서가 최고조에 달하는 가운데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시 대통령이 서울에 도착하기 직전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은 서울 강남의 주한 미상공회의소 사무실을 잠시 점거했고, 회담 당일 시민 사회단체의 반미시위는 뜨거웠다. 연두 교서 발표이후 조성됐던 반미정서가 폭발하는 듯 했다.

부시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후 열린 만찬에서 제프리 존스 주한 미상공회의소 회장에게 “나 때문에 당신이 고생한 것 같아 미안하다”며 “그래도 나보다 당신이 당한 것이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이 이렇게 유머로 넘겼지만, 어색한 앙금은 쉽게 가셔지지 않을 듯하다.

정부 당국은 회담의 가장 큰 성과로 한반도에서 긴장이 완화되고, 전쟁 가능성이 배제된 것을 꼽았다.

부시 대통령은 대화를 통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문제 등의 해결을 강조, 전쟁 발발 가능성을 배제하려는 우리 정부와 보조를 맞추었다.

“우리는 북한을 침공할 의사가 없으며, 방어 자세일 뿐”이라는 그의 서울 발언은 1ㆍ29 연두교서 당시에 보였던 태도와 사뭇 달랐다. 그는 방한 직전 도쿄에서 (악의 축 국가들에 대해) “모든 선택을 열어 두고 있다”고 말해, 대화 뿐 만 아니라 힘과 무력도 대북 문제 해결수단이 될 수 있음을 시사했었다.

하지만 그는 서울과 도라산역에서의 연설을 통해 큰 틀의 북한 문제 해결방식에 관한 한국과의 견해 차를 상당히 해소했다.


한미간 대북 견해차 여전히 잠복

이렇듯 한반도에 잠시 드려진 긴장의 먹구름을 걷어냈지만그는 아직도 한미간에 상당한 이견이 있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외교를 하다 보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지 않으면서 넘어가는 경우를 종종 본다”며“지난 50년 동안 문제점을 양국이 해결했고, 앞으로 50년간에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이견이 해소되지 않고 ‘봉합’됐다는 인상을 주기 충분했다.

특히 역대 미 대통령들 중 가장 도덕적이고 종교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부시는 또 북한 정권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거침 없이 밝혀 ‘악의 축’ 발언이후 드러났던 한미간의 견해차가 언제라도 재현될 가능성을 잠재우지 못했다. 그래서 양 정상이 총론에서는 일치를, 각론에서는 차이를 보였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견 중 우선 거론되는 대목은 북한의 미사일 수출등 WMD 문제다. 부시 대통령은 서울에서 이 문제를 대화로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WMD가 테러리스트에게 들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떤 조치도 불사할 것”이라는 종전 발언 수위와 크게 다르다.

하지만 정작 회담에서는 북한의 조기 핵사찰, 미사일 수출 중단 방안 등이 구체적이고도 강도 높게 논의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 와중에 WMD 문제의 즉각적인 해결에 최우선 순위를 두는 미국과 점진적인 해결을 모색하려는 우리측간의 온도 차이가 드러났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문제는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기간이 끝나고, 제네바 합의서상 경수로가 완공돼야 하는 2003년에 엄청난 폭발성을 띨 것이 뻔하다. 그래서 소식통들은 미국의 대북 대화제의에는 ‘시한’이 있다고 단언한다.


북한 재래식 무기 문제는 ‘뜨거운 감자’

다음으로는 북미대화 및 햇볕정책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회의적인 태도가 누그러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예상대로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의사와 대북대화 제의의 유효함을 밝히면서 대화에 응하지 않는 북한에 실망감을 표시했다.

그는 대북특사 파견 용의와 미북 대화시 북한에 줄 당근을 묻는 질문을 받고 답변을 생략, 일정한 선을 그었다. 북한이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변수라는 은근한 압박이다. 사실 대북 포괄적 협상의 로드맵을 아직 확정하지 않은 미국측의 형편상 대북 특사파견은 쉽지도 않다.

이런 태도는 대화재개를 위한 미측의 선제조치를 기대해온 정부 입장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미국측은 또 북한의 주민과 정권간 차별성을 강조하는 이원적 태도를 통해 양자를 확연히 구별하지 않는 한국의 대북정책간의차이를 부각했다.

그래서 양국간 향후 협의가 더욱 중요해졌다. 일부 관측통들은 햇볕정책에 북한이 호응하지 않는데 대한 부시 대통령의 실망감을 햇볕정책에 대한 회의로 연결하는 분위기이다.

또 부시 대통령이 밝힌 북한 재래식 무기 문제는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남아있다. 김 대통령은 회담에서 재래식 무기의 위협을 직접 받고 있으며,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회담 전이 문제에 관해 우리측이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는 자세에서 ‘적극적 역할’로 궤도 를 수정하고, 미국측도 이 문제를 한국측과 협의할 것이라고 밝힌 만큼 큰 논란없이 봉합됐다. 하지만 어정쩡한 상황은 북측이 북미대화의 의제인 이 문제에 관해 어떤 카드를 준비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총론에서 양국이 한 목소리를 냈지만 이렇듯 각론에서의 갈등 포인트가 부각되는 것은 부시 대통령의 대북관에서 연유했다.

부시 대통령은 아시아 순방전 한국언론과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더 투명해지고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멈출때까지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둘 수 밖에 없다”고 밝힌 이래 대북 불신을 표출했다.

특히 서울에서 그는 북한 정권과 주민들간의 차별성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주민을 굶기는 북한 정권과 지도자를 비난하는 대목은 미 정보기관들이 북한 정권 와해공작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자아냈다.

대북 불신감은 한국 방문을 전후로 해 이뤄진 일본, 중국방문에서 그대로 반복됐다. 순방결과를 지켜본 미국 언론들은 부시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을 마치고 방문 결과를 정리한 뒤에야 그의 대북정책 변화를 점칠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대북정책 주도권 쥘 정책 펼쳐야

2월 한미 정상회담을 한 걸음 뒤로 가서 볼 때이번 회담은 한미관계와 분단문제에서 커다란 이정표가 될 것이다.

우선 이번 회담은 ‘미국을 특히 미국의 대북정책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화두를 과제로 남겼다. 현재 대북정책에 관한 한 한국은 미국에 비해 매우 유연하다. 이는 1990년 중반까지 없었던 상황이다. 이전에는 한국은 미국보다 강경한 자세를 취했다.

현 상황은 김대중 정부 이후 에도 지속될 확률이 높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미국의 대북정책을 우리측으로 끌어오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미 본토가 유린된 9ㆍ11 사태이후 미국의 사정은 우리 정부의 노력을 철저히 무력화시키고 있다. 이렇듯 무력한 상황과 좌절감은 반미정서를 증폭시키고 있다.

아울러 이번 회담은 민족문제의 자주성에 대한 깊은 회의를 낳았다. 그 예로 미측이 대북대화 의제로 간주하는 북한 재래식 문제를 들 수 있다. 군사적 긴장 완화를 추진하려는 우리측으로 볼 때 이문제는 남북의 고유사안이다.

하지만 정상회담을 전후로 한미양국이 이 사안을 공동 대처키로 했다. 또 WMD, 기아, 인권 등 북한 문제를 미국이 ‘세계화’시킨 점도 음미해봐야 할 것 같다. 북한 문제가 국제화될수록 우리 역량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범위는 축소될 것이다. 어느 때보다 면밀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전략 수립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

정치부 이영섭 기자

입력시간 2002/02/28 11:21


정치부 이영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