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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미다스의 손' 김정태 행장

금융계 '미다스의 손' 김정태 행장

재계에 '김정태 배우기' 열풍 일으킨 장사꾼 은행장

지난 2월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본점 주택개인영업부. 털이 수북한 캥거루 복장의 한 안내원이 어머니와 함께 은행을 찾은 초등학생 고객을 반갑게 맞는다.

‘캥거루 통장’은 캥거루 아기를 보호하는 육아낭처럼 자녀들의 미래와 안전을 보장하자는 취지의 상품입니다.”

캥거루 복장에 달린 육아낭을 연신 쓰다듬으며 홍보에 열을 올리는 이 안내원은 다름 아닌 김정태국민은행장. TV 화면에서나 볼 수 있었던 김 행장의 다소 ‘우스꽝스러운 ’ 모습을 힐끔 쳐다보며 키득거리는 고객들에게 그는 “규모에서 뿐 아니라 고객 사랑에서도 국내 최대은행이 되고자 하는 ‘눈높이 마케팅’을 위해 행사에 직접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걸어다니는 이슈 메이커

‘걸어 다니는 이슈 메이커.’ 사람들은 그를 그렇게 평한다. 좋든 싫든, 혹은 그의 능력을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이 표현 만큼 ‘김정태 현상’을 제대로 설명하는 말은 없을 듯 싶다.

중형 증권사인 동원증권 사장에서 대형 시중은행인 주택은행행장직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 그가 은행권에 몰고 온 파격적인 변화는 늘 세인의 주목을 끌었기 때문에.

김정태라는 이름 석자는 주택은행장이라는 직함과 함께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동원증권 사장 재직 시절부터 그는 적어도 업계 내에서는 ‘능력있는 인물’로 손꼽혔다.

대신증권에서 잔뼈가 굵은 그가 동원증권(당시 한신증권) 상무로 옮긴 것은 20년전인 1982년. 동원산업 김재철(金在哲ㆍ무역협회 회장)회장이 새로 증권회사를 인수하면서 그를 영입했던 것.

“평소 일면식도 없었던 김 회장에게서 그 때부터 혹독한 경영 수업을 받았다. 김 회장의 적극적인 배려가 없었다면 지금의 김정태는 없었을 것”이라고 그는 누누이 말한다.

1997년 초 사장직에 오른 그는 한가지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다름아닌 무차입 경영의 표방. “당시 하루 동안 빌려 쓰는 콜머니(Call Money)가 5,000억원에 달했습니다. 수입의 상당부분을 포기하는 결정이었지만 외환 위기를 끄떡없이 버틴 원동력이 된 거죠.”

대부분의 기업들이 엄청난 이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하나 둘씩 무너져 내렸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불과 2개월 후의 화려한 변신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일까. 98년6월 미국 경제전문지 ‘비즈니스 위크’는 ‘아시아 위기를 극복할 50인의 스타’에 국내 금융인 중 유일하게 그의 이름을 올려놓았다.


월급 1원짜리 은행장

“월급은 단 돈 1원만 받겠다.” 그를 잘 알지 못하던 대다수 사람들은 98년8월 자신감에 넘치는, 아니 다소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는 주택은행장 취임일성에 반신반의했다.

증권사 종사가 전부인 보잘 것 없는(?) 경력, 촌티가 철철 묻어나는 외모, 은행장에 오르기에는 너무나 이른 듯한 나이(당시 51세) 등 모든 조건은 대형 시중은행장 지위에는 걸맞지 않은 듯했다. 일부에선 그의 출신 지역(전남 광산)을 들어 무리한 인사라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시장이 그를 검증하고 평가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얕은 물’에서 놀던 사람이 ‘깊은 물’에 들어가면 아무리 ‘깡’이 세더라도 처음에는 다소 기가 죽기 마련이지만 그는 예외였다.

“은행 업무를 전혀 몰랐지만 은행도 다 똑 같은 기업 아니겠어요? 외환 위기의 원인이 결국은 우리 기업들의 과잉 투자와 은행의 리스크 관리 잘못, 그리고 여신의 집중이 아니었습니까. 원인이 훤히 보이니까 해법을 찾는 것도 충분히 해 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 거죠.”

스스로 ‘철저한 장사꾼’임을 자처하는 그는 가장 먼저 기존 임원을 전원 교체하고 3,000명에 가까운 직원을 내보내는 등 매서운 칼날을 꺼내 들었다.

“기업이 이익을 내지않으면 존재 가치가 없다”는 24년간의 증권사경험을 통해 몸에 익힌 경영 철학의 발로였다. 그가 행장이 되는데 적극적인 역할을 했던 사외이사진 역시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하지 않고서는 은행이 제대로 설 수 없다”는 이유로 모두 옷을 벗어야 했다.

일체의 ‘인사 청탁’을 배격한다는 공개 선언도 뒤따랐다. “행원에서 대리가 되는 데도 청탁하는 것이 은행 문화더라구요. 앞으로 청탁을 하면 명단을 전부 공개하겠다고전 직원에게 e메일을 보냈죠.”

취임 3개월 뒤인 98년11월. 애널리스트 등을 상대로 한 기업설명회(IR)에서 그는 “연말 결산에서 흑자가 가능하지만 수천억 원의 적자를 내더라도 부실자산을 털어내겠다”고 선언했다.

그 결과는 2,913억원의 순손실. 주택은행 30년 역사상 최초의 적자였다. 지금이야 충분한 대손충당금 적립으로 이익 규모를 줄이는 은행을 발견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지만 당시로서는 어려운 결정이었다.

앞뒤를 재가며 이것저것 균형되게 따질 수 있고 관치에 적절히 순응할 수 있는 사람만이 행장이 될 수 있었던 은행가에 이런 그가신선한 충격을 몰고 온 것은 당연했다.

취임 당시 3,000원대 였던 주가는 이른바 ‘CEO 주가’라는 조어를 탄생시키며 연일 상종가를 기록했고, 금융계는 물론 재계에서 조차 ‘김정태 배우기’ 열풍이 몰아쳤다. 한 외국계 투자펀드 관계자는 “그는 당시 상황에서 주주 가치와 투명 경영의 중요성을 아는 몇 안 되는 인물이었다”고 평가했다.


공룡은행과 공룡행장

국내 금융사에 하나의 획을 그은 국민, 주택은행의 합병 발표가 있은 지 7개월여만인 2001년 7월. 합병은행장 선임을 둘러싼 수개월간의 공방이 마침표를 찍으면서 그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의 신뢰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다.

캐스팅 보트를 쥔 것은 두 은행의 외국 대주주 골드만삭스(국민은행)와 ING(주택은행). 골드만삭스측은 “김상훈 국민은행장(현통합 국민은행 이사회 의장)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고 공공연히 밝혔지만 결국 표결 과정에서 ‘배신’을 했다.

“골드만삭스 역시 투자자인만큼 시장에 더 큰 반향을 몰고 올 인물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해석이었다.

금융계는 자산 규모 180조원의 ‘공룡 은행’ 과 이를 이끌고 갈 ‘공룡 행장’ 의 탄생에 경계감을 늦추지 않았다.

“두 은행 합병을 통한 시너지 효과는 별로 없을 것”이라는 일각의 비판은 합병은행 출범 이후 속속 감지되는 은행권의 지각 변동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이제는 짝짓기에 실패할 경우 완전히 경쟁 대오에서 낙오할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신한, 한미, 하나 등 우량 은행들이 분주히 짝짓기 대상을 물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밑 합병을 추진중인 시중은행 한 고위 인사는 이 같은 현상을 통합 국민은행 출범이 몰고 온변화로 평가했다.


극과 극으로 갈린 평가

하지만 늘 그렇듯 ‘잘 나가는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엇갈리기 마련. “탁월한 자질을 갖춘 이 시대 최고의 경영자”라는 극찬의 반대편에는“쇼맨십이 강한 그와 스타를 필요로 하는 시장이 합작해낸 최고의 상품일 뿐”이라는 냉소도 뒤따른다.

“‘반(反) 권위주의’를 내세우는 그의 경영 스타일이 실제로는 상당히 권위주의적이다.” “이미 털어낸 부실을 기반으로 사실상 ‘손을 안 대고 코를 푼 격’이다.”“늘 깜짝쇼를 통해 시장의 관심을 집중시키기 때문에 아직 그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는 부족한 것 같다.”

이 같은 부정적인 평가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일까. 그는 최근 “주식선택매입권(스톡옵션) 평가이익의 절반을 사회에 내놓겠다”고 밝혔다.

총 40만주의 스톡옵션을 갖고 있는 김 행장의 평가익은 무려 200억원 가량. 그는 “스톡옵션 평가시점의 평가액이 얼마가 되든, 세금을 떼고 난 뒤 절반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각 언론사에 보낸 e메일의 첫머리에서 그가 겪은 심적 고생이 적잖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같은 생각을 오래 전에 마음속으로 굳히고 있었다. 하지만 혹시 다음 자리를 노린 포석이 아니냐는 오해도 있을 수 있겠고, 무엇보다 스톡옵션을 받은 다른 분들께 공연한 부담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먼 훗날 은퇴한 후에 조용히 시행하려 했었다.”


통합은행 융합 등 '산넘어 산'

이런 비판 못지않게 그가 이 시대 최고의 경영자로 거듭나기 위해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은 적지 않다. 합병 은행장 선임 과정에서상당한 갈등이 있었고 합병은행 출범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옛 국민은행 직원들의 불신이 채 가시지 않은 점을 감안할 때 ‘조직 융화’는 최대의 난제가 될 수 있다.

합병 이후 중복 점포와 인원을 정리하는 작업도 그의 개혁을 위한 중대한 관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직원들을 비용 절감의 대상이 아닌 수익을 창출하는 경영 자원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그의 발언은 정치적 수사일 뿐일 수 있다. 중복된 기능의 통합 없이는 합병은행의 진정한 발전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 ‘리딩 뱅크’라는 용어조차 낯선 우리나라에 리딩뱅크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것 역시 그의 어깨에 놓여진 책무다.


'한국 금융시스템 바꿀 인물' 평가

격주간 경제전문잡지 포브스 국제판 포브스글로벌은 올해 신년호 표지인물로 그를 선정했다.

“김 행장이 해외 투자자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 그가 한국의 경제와 금융시스템을 바꿔 나갈 것이다”라는 평가와 함께.

17년간 경기 화성에서 ‘주말 농부’ 생활을 해오며 은퇴 후에는 아내 최경진(51)씨와 함께 바다 가까운 시골마을로 내려가 농사를 짓고 살겠다는 ‘소박한 꿈’을 간직한 김 행장. 과연 그가 십수년 후 ‘한국 금융사를 새로 쓴 인물, 농부되다’는 제하 기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지 자못 궁금하다.

 

<김정태 행장 약력>

1947.8.15 전남 광산 출생 65.2 광주일고 졸 70.2 서울대경영학과 졸 74.2 서울대경영대학원(국제경영학 석사) 74.3 대한투자금융입사 76.1 대신증권입사 80.2 대신증권상무 82.5 동원증권상무 86.5 동원증권전무 91.5 동원창업투자대표이사 사장 94.4 동원증권부사장 97.5 동원증권대표이사 사장 98.8 한국주택은행장 2001.11 국민은행장(현)

이영태 경제부기자 ytlee@hk.co.kr

입력시간 2002/02/28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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