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츠증권 최석포 애널리스트, 반도체 움직이는 증시 풍운아

반도체 애널리스트의 말 한마디에 주식시장은 출렁인다. 반도체 공화국으로 불리는 한국의 서울증시에선 그 말을 믿고 수백억원이 움직인다. 메리츠증권 최석포(38)연구원은 그래서 애널리스트를 공인이라고 본다. 무엇보다 돈이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애널리스트들의 비중이 처음부터 높지는 않았다. 지난해초까지만 해도 증시에선 외국계 애널리스트의 의견이 시장을 지배했다.

반도체 경기 회복을 놓고 뉴욕증시가 논란을 빚으며 등락을 거듭하면서 서울증시의 투자자들은 국내 애널리스트 보다는 해외의 조셉, 오샤 등의 의견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이는 반도체 기술은 선진국인데, 증시내 분석은 후진국이란 비아냥을 낳기도 했다 반도체, 특히 D램 부문 세계 시장 점유율 1위인 한국에서 애널리스트의 분석이나 전망이 업계 수준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도체 시장서 공개적 의견 개진

그러나 반도체 불황의 절정기이던 작년 국내에서 쏟아진 각종 반도체 논쟁은 상황을 반전시키기 시작했다.

그 논쟁의 가운데에는 항상 메리츠 증권 최석포 애널리스트가 있었다. 그는 시장의 뜨거운 이슈에대한 자신의 의견을 도전적으로 공개하는 방법을 택하곤 했다. 1999년 9월 대만에 강진이 발생하자 그 영향을 분석해, e메일로 공개한 것은 당시만해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금은 거의 모든 반도체 애널리스트들이 매일같이 e메일로 자신의 분석을 공개한다.

D램경기가 바닥을 모르고 하강하던 작년 최대 이슈는 반도체 회복의 시기였다. 이에 대해서도 최 애널리스트는 자신의 의견을 솔직히 시장에 선보였다.

당시는 업계조차 램버스 D램의 시장 형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던 때라 삼성전자가 여기에서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할 것이란 의견이 대세였다. 당연히 다른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반론이 제기됐다.

그러나 때맞춰 삼성전자에 외국인에 매수세가 몰리면서 증시는 1월 랠리를 보였다. 주가상으로 보면최 애널리스트의 승리였고, 삼성전자의 주가상승에는 램버스 D램의 수익력 증가가 주요 이유였다. 그러나 최 애널리스트의 공로는 그의 의견을 믿고 투자한 사람들에게 돈을 벌어줬다는 것 뿐이 아니었다. 램버스 D램 논란을 계기로 서울증시에도 본격적인 논쟁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작년 6월 초에는 바닥을 모르고 하락하던 D램가격이더 이상 추락하기는 힘들 것이란 점에 기대 반도체 바닥론이 해외에서 날아들었다. 그러나 시장에서 가장 비관적인 전망을 고수하던 최 애널리스트는 이에 처음으로 반론을 제기했다.

당시 시장에선 예상할 수 없던 삼성전자 D램 부문의 적자 가능성을 지적하며 낙관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그는 지적했다. 결국 반도체 주가는 반짝 상승에 머문 뒤 재차 하락해 비관론의 승리였다.

해외에서 불거진 논쟁은 한달 뒤 서울증시로 옮겨왔다. 반도체 경기의 회복시기에 대한 최 연구원의 전망에 반론이 제기된 것이다. 최 연구원은 이 때 올 하반기에나 반도체의 본격적인 회복이 있을 것으로 보고 주식매입 시기를 늦출 것을 권고했다.

반도체 부문을 가장 오래 분석하며 최고의 애널리스트로 평가되던 대우증권 전병서 애널리스트가 반론을 들고나왔다.

전 애널리스트는 올 상반기를 회복시기로 잡고 있었다. 작년 연말부터 D램가격이 하락을 멈추고 상승한 것에 비춰보면 전 애널리스트의 예측이 정확했고, 최 애널리스트는 지나친 비관론자로 평가될 수 있다.

하지만 당시 최 애널리스트가 반도체 주식매입을 9월 이후로 미루라는 의견은 결과적으로맞는 전망이었다.


다시 맞붙은 최석포ㆍ전병서

올 1월 두 애널리스트는 다시 맞붙게 된다. 1월 초최 애널리스트는 일본 NHT 가동중단에 따른 TFT-LCD(초박막 액정표시장치) 가격인상이 국내 업체들에 수혜를 가져올 것이라고 시장에 매수신호를 보냈다.

NHT가 용해로 사고로 사실상 공장가동이 중단돼 이 회사에서 기판을 공급받던 일본 대만기업들이 타격을 입을 것이란 예상도 덧붙여졌다. 반론에 나선 전병서 애널리스트는 유리기판 시장이 10% 이상 공급과잉 상태인데다 NHT도 1~2개월 뒤 가동을 재개할 것이라 그 영향은 미미하다고 했다.

그러나 관련 기업들의 주가는 당시 폭등세를 보였고, 아직도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논쟁을 몰고 다니는 최 애널리스트의 출현은 증시에는 신선한 바람과도 같았다. 논쟁의 옳음과 그름을 떠나 토론 부재의 증시관행이 무너진 것도 그의 역할이 컸다. 부정적 의견은 숨기고 낙관론만 공개하던 애널리스트들도 이제 자신의 의견을 시장에서 진실로 인정받으려 하고 있다.

특히 최 애널리스트는 3년이 안되는 짧은 반도체 애널리스트 경력에도 불구하고 한발 앞서 반도체 흐름을 짚는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인정받고 있다. 그래서 증시 개장 중에 그가 공개하는 해외나 업계의 빠른 정보는 거의 그대로 주가에 반영되고 있다.

그가 다른 애널리스트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업계 출신이란 점이다. 대부분 애널리스트들은 증권사에서 바닥을 거쳐 성장해 왔지만, 최 애널리스트는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반도체 분석을 해오다 증권가에 늦게 발을 들여놓았다.

1991년부터 그는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삼성그룹의 사업타당성 조사 역할을 맡아 했고, 96년에는 반도체 판매 사업부에서 경쟁사들의 동향파악과 제품비교를 해왔다. 그때 맺어진 해외의 반도체 애널리스트들과의 친교는 물론 기업 인맥들은 그가 남보다 앞서 차별적 정보에 접근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지금도 반도체 애널리스트들은 최대 경제 현안이기도 한하이닉스 반도체 매각 건을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팔아야 할지, 독자생존시켜야 할지를 놓고 모든 애널리스트들의 의견이 이처럼 첨예하게 갈린때도 없었다.

헐값매각 시비로 인해 독자생존 쪽에 무게싣는 애널리스트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최 애널리스트의 주장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매각쪽이다. 헐값에 팔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그렇다고 독자생존하기에는 담보돼야할 조건들이 많다는 게 그의 논리다.


“하이닉스 팔아야” 확고한 신념

독자생존을 위한 조건은 먼저 D램가격이 2~3년간 하이닉스가 영업이익을 연 1조정도 낼 수 있도록 원가대비 0.8달러 위에서 형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생존에 필요한 지급이자와 원금상환, 설비투자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조건은 D램가격이 예상외로 하락할 때 이를 각 경제주체들이 합의된 의견으로 지원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독자생존으로 방향을 틀면 다시 업계 강자(삼성전자 마이크론테크놀로지 하이닉스 인피니온)간 경쟁이 치열해져, 이를 넘어서기 위해선 적정규모의 시설투자가 필요하기때문이다.

채권단이 이 같은 고통을 분담해야 하는데 매각을 추진하는 것은 이를 부담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게 최 애널리스트의 의견이다.

물론 하이닉스를 인수하려는 마이크론이 제시한 40억달러와 부대조건을 보면 헐값처럼 보이지만, 가격은 상황논리에서 봐야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특히 최근 D램가격이 반짝 상승하면서 독자생존이 나오고 있는 것에 대해 아직 상황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며 경계하고 있다. 현재 독자생존의 강력하게 주장하는 쪽은 항상 최 애널리스트와 논쟁의 반대편에 위치한 전병서 애널리스트와 현대증권의 우동제 애널리스트다.

전병서 애널리스트는 가격이나 산업적 측면을 고려하면 무리해서 팔 이유가 없는데 채권단이 굳이 매각을 고집하는 배경에는 정치적 판단이 있지 않느냐고 묻고 있다.

채권단의 경우 약 30%에 달하는 이자를 받아가 하이닉스 투자로 큰 손해를 입지도 않았는데, 하이닉스 채권을 부실채권으로 보고 조기 인수하려는 것은 ‘바보짓’이라고 했다.

또 이런 무책임한 판단에는 정권교체시 자칫 청문회 1호가 하이닉스가 될 수 있다는 정치권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우동제 애널리스트도 비즈니스는 적당한 리스크로 감수해야 하는데, 채권단이 과거에만 매달려 불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치 1980~90년대 우리경제의 성장저력이 어설픈 자본주의에 의해 희석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다만 2~3년 뒤에나 결론이 나올 이번 논쟁은 큰 의미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 하이닉스 매각건은 이미 활 시위를 떠나 있기 때문이다.

이태규 경제부 기자

입력시간 2002/02/28 13:54


이태규 경제부 tg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