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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탐구] 아름다운 죽음을 안내하는 호스피스 간호사, 최화숙 박사

"눈뜨는 아침을 감사하며 살지요"

“내일 아침에도 해가 뜰까요? 틀림없이 해가 뜰거라고 생각하세요? ”

갑자기 질문이 돌아온다. 부드럽지만 단단한 시선으로 이쪽의 대답을 기다리는 사람.

“ 내일이 돼 봐야 알 것 같은데요.” “그래요. 내일 다시 해가 뜰지 모르겠지만 그렇더라도 어쩌면 나는 또는 당신은 내일 아침에 그 해를 못 볼 수도 있어요.”

죽음이 이렇게 가까운 것이었을까. 15년간 수 백명의 망자를 죽음의 마지막길까지 배웅하고 온 최화숙(47)씨. 시한부 선고를 받은 말기환자들을 돌보아온 호스피스 간호사다.

더 화려하게 소개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이화여대와 중앙대 등에서 수학한 간호학 박사로 무의촌 진료와 동대문 병원 정신과 병동 책임간호사, 세브란스 호스피스 간호사, 한국 호스피스협회 부회장을 거쳐 현재 경인여대 정신간호학겸임교수이자 이화여대 부설 가정 호스피스 센터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기나긴 약력이 다 무슨 소용일까. 죽음을 생각하는 자리, 떠나는 이들의 마지막을 밝히는 간호사란 것만으로도 그의 이름은 이미 꽉 차보인다.

“친구들에게 농담처럼 그런 얘기를 자주 합니다. 건강할 때, 남편 얼굴을 볼 때 잘 해주라고. 내일이면 못 만날 수도 있다고. 자식도 마찬가지구요. 저 자신도 늘 그런 마음으로 살려고 합니다.”


행복하고 편안한 죽음으로의 안내

호스피스는 비영리, 무료로 환자들을 간호한다. 대상은 더이상 항암치료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 완전히 완치 불가능 판정을 말기환자들이다. 길어야 6개월에서 1년을 넘기지 못하는 이들이다.

호스피스는 전문 의료진과 자원봉사자, 성직자 등 비전문인으로 공동 구성돼 이들의 임종시까지 가능한 한 통증을 덜어주고 남은 시간이나마 행복하고 편안한 생의 마무리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최씨는 지난1992년 이대 가정 호스피스 센터가 창립될때부터 시작해 지금껏 책임자로 활동하며 숱한 죽음의 현장에 함께 서 있었다.

“죽음에 직면한 환자들의 고통과 혼란이란 말 할 수 없습니다. 시한부 판정을 받고나면 처음엔 사실을 부인하려고 합니다. 그럴리가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왜 하필 나인가’ 화내기 시작합니다.

자신을 살려주기만 하면 정말 착하게 살겠다는, 절대자와의 협상도 벌입니다. 그랬다가도 자신이 곧 죽으리라는 생각에 깊은 우울에 빠졌다가 마침내 죽음을 자신의 현실로 수용하거나 또는 포기하는 마지막 단계에 이릅니다. 이때 내세를 믿는가에 따라 죽음을 맞는 자세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내세를 믿는 사람들은 비교적 쉽게 죽음을 수용하며 편안하게 임종을 맞지만 이것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어쩔수 없이 집착을 포기하면서도 마음은 슬프고 어둡습니다. 공통적인 것은 이런 일련의 과정속에서도 환자들은 혹시 기적이 일어나 자신이 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알게 모르게 품고 있다는 겁니다.

너무 아파서 한번만 먹으면 바로 죽을 수 있는 약이 어디 없냐고 찾아갈때마다 물어보던 환자도 아픈 통증만 사라지고 나면 ‘아무래도 의사가 오판한것 같다’며 희망에 매달립니다. 70세가 넘은 할머니도 남편이 집을 팔아서라도 사주겠다고 했다며 새 치료약이 개발되지는 않을까 애타게 기다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삶에 대한 인간의 애착이란 그만큼 끈질기고 포기하기 쉽지않은 것입니다.”

남편과의 세계일주를 위해 악착같이 돈을 모았던 56세의 자궁암 말기환자 A씨가 있다. 첫 대학등록금만 도와달라던 손아래 시누이의 절박한 애원마저 매몰차게 거절하며 모았던 여행비는 그러나 채 손도 대보기 전에 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세상을 떠날준비를 하며 그녀를 가장 고통스럽게 한 것도 너무도 지독하게 돈에 집착했던 삶과 그로 인해 친척들에게 못할 짓을 많이 했다는 후회였다.

더우기 A씨의 와병중에도 미혼모 처지가 돼 방황하는 그의 딸을 어머니 대신 거둬준 것은 바로 자신이 상처를 입혔던 그 시누이였다. 뼈저린 회한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생명에 대한 미련을 힘겹게 떨치고 삶을 정리하며 떠나간 A씨.

아내를 잃는 것을 그렇게도 고통스러워하던 남편은 그러나 A씨 사망후 채 1년이 못 돼 처녀장가를 들었고, 새 부인의 권유에 따라 어느날 납골당에 안치돼 있던 전처의 유해마저 비워버렸다.

병원에서도 특실에 머물며 VIP대접을 받던 C씨는 모기업 회장 부인이었다. 외형적으론 남부럽지않은 삶이었지만 투병 3년을 거쳐 유방암 말기라는 막다른 골목에 이를때까지, 누구보다 외로운 환자였다.

병세가 악화되는 동안 남편은 손님처럼 이따금 아내 방을 들러볼뿐 함께 잠을 자지 않았다. 장성한 자녀들은 자녀들대로 바쁜 직장생활과 학업을 이유로 어머니를 홀로 내버려두었다.

‘이대로 죽긴싫다’는 본인의 절규와 집착도 대단했다. 시한부 판정후에도 남은 삶을 정리하기보다는 예정된 운명을 되돌리려 안간힘을 쏟았다. 용하다는 도사와 목사님등을 수소문해 불러들이거나 갖가지 민간요법 등을 동원하는 등 끝까지 미련을 포기하지 않았다.

남편에게 이미 다른 여자가 생긴 것 같다며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체념처럼 받아들였다. 끝까지 죽음에 저항했던, 살아서 부유했던 여인, 임종 순간에도 두 눈을 부릅뜬 채 ‘안 돼!’ 소리를 질렀지만 더 이상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다양한 삶이 나타나는 마지막 길

역시 유방암 말기환자인 D씨는 죽음을 앞두고 남편의 재혼 상대까지 정해두었다. 상대는 친한 친구의 언니, D씨의 간곡한 부탁끝에 남편과 친구 언니는 결국 결혼을 약속했다.

그러나 그후부터 호흡곤란 증세가 눈에 띄게 심해진 D씨는 최씨앞에서 울며 고백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 마음은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재혼 약속을 받아낸 뒤부터 가슴이 죄는 것 같고, 이젠 그 친구도 그 언니도 만나기가 싫다. 나는 살고 싶다.’ D씨가 떠난 뒤 남편은 두달이 넘도록 아내가 생전에 쓰던 이부자리도 그대로 둔 채, 고인에 대한 그리움으로 괴로와했다.

결혼 후 5년도 안 돼 딴 살림을 차린 뒤 20여년간 본처와 자식들을 팽개치고 살았던 남편 E씨는 말기 담도암 환자였다.

‘작은 부인’과의 사이에 자녀들까지 낳고 살아왔지만 그들로부터 병 수발을 거부당한 채 뒤늦게 본가로 돌아갔다. 본처는 아들의 완강한 거부와 반감에도 불구하고 20여년만에 돌아온 병 든 남편을 받아주었다.

E씨가 세상을 떠나며 남긴 마지막 말은 부인에게 ‘미안하다’는 한마디였다. 임종 전 남편이 보고 싶어할까봐 아내는 ‘작은 부인’더러 한번 찾아주기를 부탁했지만 그녀는 끝내 ‘오기 싫다’며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50세 F씨는 잘 생긴 외모에 여성편력이 화려한 한량이었다. 평소 감기도 한번 앓은 적이 없을만큼건강체였던 그는 어느날 소화불량 증세에 오기가 나 1주일 동안 밥도 거른 채 술만 마시며 치기를 부리다가 갑자기 의식을 잃은 뒤 실려간 병원에서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생전에 수많은 여자들을 사귀며 수시로 살림을 차린 것은 물론 때론 집에까지 여자를 데리고 와 함께 살기도 했을만큼 ‘자유로왔던’남편. 심지어 시한부 판정을 받은 뒤에도 당시 데리고 살던 여자가 집에 들어와 본처와 함께 F씨를 간호했다.

그 경황에도 F씨는 애인을 칭찬하며 본처에겐 면박을 주고 화를 냈다. 죽음이 가까와오면서 F씨는 허공을 노려보다가 흙빛으로 질린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저리 가! 저리 가!’ ‘누구여? 누구여?’를 수시로 외쳐대 주위 가족까지 소름이 돋고 머리카락이 쭈볏 서게 만들었다.

F씨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 여러명이 자꾸만 자신에게 나타난다고 했다. 통상 2-3일에 불과한 임종과정이 F씨에겐 무려 3주간이나 계속됐다. 뒤늦게 종교에 귀의한 그는 아내에게 평생 처음으로 ‘내가 잘못했다’는 사과를 한 후 얼마 뒤 상처입힌 아내곁을 떠났다.

3개 회사를 거느린 62세 사업가 G씨는 친구 사이인 의사로부터 ‘간암 말기로 여명이 약 3개월’이라는 솔직한 답변을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곧바로 온 몸이 뻣뻣이 굳어버렸다.

의료진까지 놀라 정신과 치료를 시도했지만 소용이 없어 마침내 최씨가 의뢰를 받고 달려갔는데 공포에 질린 채 바짝 굳은 몸으로 누워 떨고 있는 G씨를 보고 무엇이 그렇게 무섭냐고 묻자 겁에 질린 목소리로 ‘지옥에 갈까봐서’라고 간신히 대답했다.

의사의 말을 듣는 순간 자신의 지나온 삶이 빠른 영화처럼 머릿속을 스쳐가면서 자신은 꼼짝없이 지옥에 떨어질거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지옥에 가지않는 방법을 알려주면서 신체의 경직상태는 풀렸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그로 하여금 떨게 하였는지는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H씨는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아름다운 신부처럼 왔던 길을 돌아갔다. 40세의 모 전문대학 교수로 유방암 말기환자였던 H씨. 어릴때 큰 병을 앓은 뒤 20세를 넘기기가 어려울 것이라던 의사의 말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결혼, 자녀 출산 등 기적같은 인생을 살다가 갔다.

죽음이 다가오면서 9세, 5세의 어린 두 아들에게 홀로 남겨진 아빠의 슬픔을 이해해줄 것과 아들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전하는 6장의 긴 편지를 남겨 가족과 주윗 사람들을 더욱 애닯게 만들었다.

“죽음 앞에 서면 그 사람의 삶이 어떤 것이었는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특히 재산이 많은 사람들은 본인들의 집착이나 미련도 미련이지만 평소에 가려져있던 갈등이 수면 밖으로 드러나면서 또다른 고통을 낳기도 합니다.

내연의 여자나 그 아들, 딸등 몰랐던 가족이 갑자기 나타난다든지, 또 상속문제와 관련해 유족들 간에 고소가 벌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분이 죽기전 자신의 재산 중 얼마쯤은 가족 아닌 누군가에게 주고 싶어했는데 연락을 맡은 가족이 ‘상대방이 만나기 싫어한다’고 해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알고보니 자신들의 상속분이 줄어들까봐 일부러 연결해주지 않은 겁니다. 어떤 수양딸은 7억원이나 되는 재산을 물려주고 가신 어머니인데도 하다못해 마지막 길에 깨끗한 옷 한 벌 제대로 입혀드리지 않고 너덜거리는 옷을 대충 입히고 마는 것을 보고 안타까왔던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마자 자신은 곧 자동차도 새 차로 바꾸는 등 변화가 많았지만요. 어머니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키우셨지만, 딸의 입장에선 상처가 될만큼 사실상 어머니가 생전에 지독하게 사셨던 부분이 있더군요.”


죽음에 대비하는 자세 필요

“반대로 아름답고 행복한 죽음이란 것도 가능할까요? ”

“아름답게 죽는 방법은 생전에 아름답게 사는 것뿐입니다. 살아있을때 잘 사는 것이 잘 죽기 위한 방법이고 준비입니다. 그 어떤 죽음이든 뿌린대로 거둡니다. 내 몸이 건강할때 미리 죽음을 생각해보고 준비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

내일 아침 해가 뜨겠냐는 질문을 받은 건 그 다음의 일이었다.

그의 말대로 누구에게 언제어떤 이름으로 죽음이 닥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내일 아침 내게 아침이 사라져 있다면 나는 무엇이 가장 마음에 걸릴까. ‘저녁에 잠자리에 드는건 죽는 연습, 아침에 눈 뜨는건 부활의 연습’이라던 최씨의 말은 우리가 동의를 하든 안하든, 아마도 진실일지 모른다.

정영주 자유기고가 mar10@chollian.net

입력시간 2002/02/28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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