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의 경제서평] 프리바토피아

■프리바토피아를 넘어서
(이냐시오 라모데 외 지음/최연구 옮김/백의 펴냄)

아르헨티나는 한때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의 경제 부국이었다. 그런 나라가 또 다시 모라토리엄(대외부채 지불유예)를 선언했다. 가계나 기업으로 보면 파산한 것이다.

이를 두고 워싱턴포스트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이 기금의 최대 주주인 미국의 잘못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아르헨티나 사태는 신자유주의의 파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 신문의 경제담당 기자로 아시아 금융위기를 취재했던 폴 블루스타는 얼마 전 출간한 ‘징벌’이라는 저서에서 미국은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를 계기로 IMF에 한국의 구조개혁 정책을 택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등 ‘한국 길들이기’를 시도했다고 밝혔다.

세계화란 도대체 무엇인가. 여러 개의 얼굴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 그 정체를 알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이책은 미국 주도로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세계화에 대한 비판이다. 유럽 국가 중에서 세계화에 대한 저항이 가장 강한 프랑스의 언론가운데서도 가장 비판적인 르 몽드 디쁠로마띠끄에서 펴내고 있는 시리즈 ‘세계를 보는 방법’ 중 하나인 ‘21세기를 생각한다’를 옮긴 것이다.

르몽드 디쁠로 마띠끄는 일간지 르 몽드의 자회사이지만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독립법인으로 르 몽드에 비해 훨씬 진보적이며, 서구 언론 가운데서는 드물게 공공연히 반 미국중심주의, 반 패권주의, 반 세계화를 표명하고 있는 월간 신문이다.

이 월간 신문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의 저자인 홍세화가 쓴 책 말미에 있는 ‘추천의 글’을 보면 참고가 된다. 그는 한 마디로 ‘세계의 진보적 지식인들과 운동가들이 만나는 교량’이라고 표현했다.

이쯤되면 이 책의 성격이 보다 분명해진다. 제목인 ‘프리바토피아’는 Private와 Utopia의 합성어로, 사유화의 유토피아라는 의미다.

세계화의 이름으로 인간 생활의 모든 것이 사유화하고 있는 이때, 언제까지 새롭고도 낡은 이 프리바토피아에 갇혀 있을 것인가를 묻는 것이다. 필자는 이냐시오라모네, 피에르 부르디외, 노엄 촘스키 등 반 세계화로 유명한 사람들이다.

“너무나 오랫동안 발언권과 선택권을 박탈당해 온 시민들이 전세계에 걸쳐 점점 더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젠 지겹다.’ 세계화를 운명처럼 받아들이는건 이젠 지겹다는 것이다. 시장이 정치 지도자들을 대신해 결정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지겹고, 세계의 몸과 정신이 상품으로 전환되는 것을 보는것도 지겹고, 앉아서 당하는 것, 체념 굴종도 지겹다.” 이냐시오 라모네가 쓴 프롤로그 ‘세계를 바꾸기 위해’는 이렇게 강렬하게 시작한다.

그리고‘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세계화’라는 에필로그로 끝을 맺는다. 세계화의 주역으로 IMF, 세계은행, OECD, WTO, NATO 등 5개 기구를 들고 있다.

이책은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새로운 사회’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연대의 파괴, 시장에 의한 착취, 공공영역의 파괴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2부는 ‘새로운 위험들’로, 생태환경의 위협, 자본주의의 자기 자신을 잡아먹는 속성이 지닌 위험, 유전적 차별, 사생활의 종말등을 다룬다.

미국 테러와 탄저균 공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예견됐던 바이오 테러리즘의 망령이다. 3부는 ‘새로운 권리’다. 평화에 대한 권리, 잘 보전된 자연을 가질 권리, 인류의 공동 자산에 대한 사용 접근권, 정보의 권리, 인적 자원 개발에 대한 권리 등이 새롭게 요구된다는 주장이다.

4부는 대안을 이야기하는 ‘새로운 희망을 찾아서’다. 범 세계적 차원의 새로운 사회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구체적 실천방안을 모색한 ‘시민우선의 십계명’이 주목을 끈다.

이책이 세계화의 문제점을 다룬 다른 책들과 구별되는 점은 세계화가 가져오는 여러 측면을 각 분야별로 분석ㆍ비판하고 대안을 모색ㆍ제시하고 있는 점이다. 단지 현실의 모순을 지적하는데 그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특장이다.

그러나 이 책은 어렵다. 책에 수록된 논문들은 그 분량이 적다. 짧은 글 들이지만, 석학들의 수준 높은 담론이어서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경우가 적지않다. 다소 생경한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사회과학 용어들이 많이 등장한다. 하지만 꼼꼼히 읽고 나면 그 내용은 더욱 명확히 와 닿는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이 책에 나오는 몇 가지 신조어를 이해하는 것이 내용 파악의 지름길이 될 지도 모르겠다. 세계화의 지배 계급을 지칭하는 ‘하이퍼 부르주아지’,전 세계적으로 거의 불가항력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미국 맥도널드 문화인 ‘맥월드’, 비트로 표출되는 소리와 비디오로 변한 이데올로기인 ‘비디올로지’등이 그것이다.

부록인 ‘새로운 사회, 새로운 사유를 위한 주요 인테넷 사이트’도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다.

입력시간 2002/02/28 14:47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