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들여다보기] 사이버 동창회

명색이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여 석사학위까지 받았다는 것으로 빌게이츠와 앤디 그로브가 만들어낸 마법 상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자신을 가지며 살아왔다.

최근 인터넷이 우리 생활에 워낙 스며들어 이제는 우리가 정보의 바다를 항해나는 것이 아니라 정보의 해일과 풍랑을 피해 다녀야 될 지경까지 되었다.

아직도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아이들이 이제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제일 먼저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으로 게임을 하는 가 하면, 신혼 초에는 컴퓨터에서 팬 돌아가는 소리때문에 잠을 잘 수 없으니 제발 좀 꺼달라던 집사람마저 이제는 인터넷을 한답시고 컴퓨터 앞에 앉아 한두 시간을 가볍게 보내는 것을 보니 드디어 전국민의 인터넷 시대, 정보화 시대가 도래한 것을 안다.

그런데 막상 컴퓨터 입장에서 보면 그리 변한 것은 없다. 마치 독일의 칼 벤츠가 네 바퀴 달린 수레에 내연 기관을 얹어 만든 자동차가 지금가지 변한 것은 하나도 없는데 헨리 포드 덕분에 너도나도 타고 다닐 수 있게 된 것과 같다.

이제는 자동차 없는 세상을 생각할 수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미 컴퓨터 없는 세상은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100년전에 서울에서 점심 먹고 부산에서 저녁 먹을 수 있다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처럼 20년 전만해도 그림 문자 동화상 정보를 거의 실시간으로 누구나 손쉽게 세계어느 곳에서나 주고 받을 수 있으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었다.

이런 변화의 물결에 우리 집도 드디어 동참을 하게 되었는지 학원까지 3개월 다녀가면서 컴퓨터를 배웠다고 하면서도 컴퓨터 근처에는 가지도 않던 집사람이 도대체 어쩐일로 컴퓨터를 눈이 아프다고 하면서까지 두세 시간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바로 동창회 사이트에 접속해서 어렸을 때 학창 시절의 기억으 되살리며 즐거워하였던 것이다.

멀리 미국에 와 떨어져 살다보니 그 흔한 동창 모임에도 나가지 못하고 친구들도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있다가 인터넷을 통해 헤어진 지 이삼십년 된 옛친구들의 소식을 전해듣고 사진을 보디 두세 시간이 그냥 쉽게 지나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른 사이트 같았으면 포워드(Forvard)와 백(Back)을 몇 번 하다가 포기했을 것인데 워낙 반갑고 궁금한 친구들 소식이었기에 온갖 실험 정신을 발휘하여 하이퍼테스트(Hupertext)의 끈을 따라 다녔을 것이다.

이렇게 즐거운 인터넷 여행을 통해 옛 친구들을 만난 집사람은 자기와 친했던 사람들의 근황을 알게 되어 기뻐하더니 갑자기 모 선생님을 비난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학교 다닐 때부터 부모님이 자주 찾아오는 아이들과 자주 찾아오지 않는 아이들을 차별하여 편애하는 것을 알았는데. 이번 동창회 사이트를 들어가 보니 온통 그 선생님을 비난하는 글밖에 보이지 않더라면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한 선생님이 걸은 그릇된 사도의 길이 얼마나 많은 어린 아이들의 가슴에 멍이 들게 하였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 꺼림칙한 기억이 꼭 없다고 만 할 수는 없어서, 혹시나 해서 지금 4학년인 큰아이에게 물어본다. 학교 다니는 것이 좋으냐고, 친구들하고는 잘 지내고 있는가 등의 자잘한 물음이다.

큰 아이는 주저없이 자기는 학교가 너무 좋고 자기 담임 선생님이 최고라는 것이다. 숙제 잘 해왔다고, 그림 잘 그렸다고 아이들 앞에서 칭찬도 해주었다고 자랑이다.

얼마전 과학 과제물을 제대로 제출하지 않아 방과 후에 선생님과 큰아이 둘만 함께 남아 여섯 개가 넘는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모두 다시 실험하여 과제물은 제출할 수 밖에 없었다는 실수는 벌써 잊어버린 것 같다. 다행히 큰 아이 선생님이 과학 과제물에 대한 실수 때문에 그렇게 크게 야단 맞지는 않은 모양이다. 아니면 우리가 담임선생님을 너무 자주 찾아 뵙는 부모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어리석은 질문도 해본다.

어린아이들은 야단 맞고 혼나는 것은 쉽게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특히 그것이 정당하고 자신이 잘못을 고쳐주기 위한 것일때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30년이 지나고 나서도 사이버 동창회에서마저 비난받는다면 앞으로 우리는 어느 세상에서 어떤대접을 받을 것인가. 다시 한 번 후생가외임을 실감한다.

멀리 미국

입력시간 2002/03/05 16:22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