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 서울의 '문(門:Gate)'들

'문(門:Gate)' 사건이 줄을 잇고 있다. '게이트'가 무엇일까.

1972년 리처드 닉스 미국 대통령이 당시 정적의 동향을 감사히기 위해 도청장치를 해 놓았다가 들통이나, 대통령직에서 쫓겨나게 됐던 사건을 미국인들이 '워터 게이트'라고 표현한 것을 우리나라에서 그 '게이트'를 그대로 인용하고 있는 것 같다.

'워터 게이트'란 호텔에서 일어난 미국의 사건이었던 것이다.

'게이트'란 낱말은 '문(Gate)'이지 '비리'나 '의혹'의 뜻은 결코 아닌데도 이 사건 이후부터 미국에선 권력형 비리 사건을 '00게이트'로 쓰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미국의 그런 표현을 흉내내야 할까…

우리나라 수도 서울만큼 '문(門:Gate)'이 많은 나라도 없다. 이를테면, 동쪽에는 흥인지문(興仁之門:동대문)이 서쪽에는 돈의문(敦義門:서대문), 남쪽에는 숭례문(嵩禮門:남대문), 북쪽에는 숙정문(肅靖門:북문)이 있다.

이들 '문(Gate)'엔 아름다운 선조들의 철학이 깃들여 있다.

동대문은 '인(仁), 서대문은 '의(義)', 남대문은 '예(禮)'를 또, 북문격인 숙정문은 풍수지리설에 따라 문을 열어두면 도성안의 아녀자들의 음기가 움직인다하여 늘 닫아 두었다. 그래서 '지(智)'는자하문 밖의 세검정 아래쪽에 홍지문(弘智門)을 두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문에도 주역의 오행인 '인의예지(仁義 禮지)'의 철학이 심어져 있다. 마지막으로 인구 1,000만이 넘는 세계속의 큰 도시가 될 것을 예견이나 한 듯 시내 한 가운데 '신(信)'에 해당하는 보신각을 세워 믿음의 사회를 구현하고 있다.

또 이들 4대문 사이 사이에는 혜화문(惠化門:동소문), 소의문(昭義門:서소문), 자하문(紫霞門:북소문)과 광희문(光熙門:남소문)을 두고 있다.

서울의 정문격인 숭례문(남대문)은 도성으로 들어오는 관문이라, 예를 숭상한다는 뜻으로 해뜨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 동방예지국(東方藝之國)임을 묵시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숭례문으로 들어와 서울의 중심인 종로 보신각에 서면, 조선조 여러 궁의 문이 아련하다.(지금은 비록 도시화에 가려졌지만…) 경복궁의 광화문과 흥례문을 들어서면 근정문(勤政門)이다. 근정문! '나라 경영(다스림)을 부지런히 하라'는 뜻이 아닌가!

창덕궁의 돈화문을 들어서면 인정문(仁政門)이다. 인정문! '혹세무민 하지 말고 베푸는 정치를 하라'는 뜻이다. 창경궁의 홍화문을 들어서면 명정문(明政門)이다. 명정문! '밀실정치 하지 말고 밝은 정치하라'는 교훈적인 역사의 가르침이 아로 새겨져 있다.

문!문!문! 정말 서울엔 선조들이 가르침과 역사철학이 깃든 게이트가 즐비하다. 고사성어로 곧 잘 인용되는 등용문도 있다.

중국역사에 후한 말기는 환관과 탐관오리의 횡포가 극심했다. 그때 이응이라는 청렴하고 강직한 관리가 있었다. 출세가도를 순탄하게 달려오던 그도 환관들의 눈 밖에 나 지방으로 좌천되었다가 투옥까지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재기, 부패 세력을 가차없이 응징해 정의파 관료들의 영수로 받들어졌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그를 만나라 왔는데 그와 만나는 것을 마치 황하 상류에 자리한 골짜기 용문에 들어간다는 뜻으로 '등용문'에 비유했던 것이다.

문(門:Gate)! 게이트! 무슨 진승현, 이용호, 여운환, 이형택 게이트 사건이 잇달아 터져, 문만 열어도 썩은 냄새와 부정, 의혹으로 얼룩져 있으니…. 진정한 근정문! 인정문! 명정문이 그립다.

입력시간 2002/03/05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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