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DJ의 남겨진 1년

“지금 레임덕(권력누수)이 오면 정권이나 정부가 아닌 국가의 불행이다. 임기가 다된 정권이지만 큰책임감을 갖고 있다. 협력 해달라.”

김대중 대통령이 2월 25일 취임 4주년 행사차 각계 인사 200여명을 초청해 가진 행사에서 지난 4년을 회고 하며 한말이다. 힘이 빠져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를 두고 한 칼럼니스트는 “‘능력 있는 정치인’인 김 대통령은 그 동안 대통령으로서 드러내 놓지 않았던 ‘대화와 설득’으로 남은 1년을 매진 하라”고 주문했다. (한국일보 2월 27일자 정달영 칼럼)

이를 지켜 보며 대통령제 민주주의에서 임기를 1년에 앞둔 대통령들의 노력을 생각케 된다. 우리나라에도 대통령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미국은 더욱 활발하다. 전문 연구자는 물론 칼럼을 쓰는 언론인들도 대통령과 대통령의 레임덕에 대해 많은 글과 책을 내고 있다.

이중 하나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스피치 라이터였던 페기 누난(월스트리트 저널 칼럼니스트)이 지난해 12월 출간한 ‘인격이 왕일 때-로널드 레이건 이야기’다.

지난 2월 6일 치매 상태에서 91세를 맞은 로널드 레이건에 관한 책인데 레이건의 기질, 인성, 인품, 인격에 관한 에피소드 중심의 이야기들로 꾸며져 있다.

그녀의 전작 ‘나는 혁명을 보았다’와는 사뭇 다른 고찰을 하고 있다.‘나는 혁명을 보았다’에는 그녀가 백악관에 몸담고 있을 때인 1984부터 1986년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한 정치인 레이건에 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면 이번에 출간한 ‘인격이…’는 인간 레이건에 대한 이해를 시도하면서 정론 칼럼을 쓰는 언론인답게 미국의 대통령이 국민에게 주어야 할, 그리고 역사에 던져야 할 그 무엇인가를 유연하게 표현하고 있다.

누난은 ‘인격이…’이란 책을 왜 출간했는지에 대해 뚜렷하게 주장하지 않고 있지만 퓰리쳐상을 수상한 워싱턴 포스트의 칼럼리스트이며 미국 사회에 대한 저술가인 하인스 존슨(‘권력의 공백’ (1980년) ‘피그만 사건’(1964년)의 저자)의 레이건에 대한 비평서를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쓴 것 같다.

존슨은 1991년에 ‘몽유 상태 속에서의 역사 산책-레이건 시대의 미국’에서 레이건을 인격을 가진 대통령이라기보다 대통령이란 배역을 맡은 배우로 그려냈다. 누난은 그래서 ‘잠자는 미국에 국기(國旗)의 위대성이란 혁명’을 가져온 레이건의 캐릭터(character:인격)를 단순 배역으로 기술한 존슨을 논박하기 위해 ‘인격은 왕’이란 책 제목을 단 것이 아닐까?

사전에 의하면 누난의 책 제목인 ‘when character was KING”에 나오는 캐릭터란 단어의첫 번째 의미는 특성, 특질이다. 두 번째 풀이는 인격, 성격, 품성, 세 번째는 (소설의) 등장인물이나 (연극, 영화의) 배역으로 되어 있다.

존슨은 1981년 1월 20일에서 89년 1월 그날까지 미국 39대 대통령으로 재임한 레이건을 위대한 대통령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89년 1월20일 푸른색 코트에 하얀 목도리를 한, 이제는 퇴임한 대통령인 레이건이 백악관 뒤 뜰에서 전용 헬기1호에 탑승하면서 국민을 향해 거수경례 하는것은 위대한 미국 대통령상이 아니고 대통령의 퇴임을 극화한 영화의 한 장면에 가깝다고 요약했다.

레이건은 전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역을 맡았던 배우였다는 것이다. 이란에 억류된 인질을 석방시키기위해 테러리스트와 협상 하면서도 절대로 협상을 하지 않겠다고 세계에 공언했는가 하면 의회와의 약속을 어기고 니카라과 반군에게 무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레이건은 이 같은 표리부동한 행동을 한 사람은 애국심이 충만한 해병 중령 올리버 노스였으며 자신은 몰랐다고 말했다.

존슨은 미국 국민이이런 레이건을 진실 하다고 믿고, 노스 중령을 애국자라고 생각한 것이 바로 1980년대 미국이 몽유 상태였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레이건은 국민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그런 사실은 일어 났을 것이다. 콘트라(니카라과 게릴라 반군)는 무기를 받았다.

그러나 나는 무기를 주라고 한적이 없다. 그들(안보보좌관과 노스 중령)이 나에게 준다고 말한 적이 없다.” 국민의 90%이상이 레이건의 이런 대 국민 TV 고백을 진실로 받아 들였고 언론이 이 문제를 더 파헤치지 말 것을 주문했다.

존슨은 미국이 몽유 상태에 빠졌기 때문에 이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누난을 존슨의 책이 나온지 10여년의 세월이 흐른 2001년, 90세를 넘은 레이건의 여러 모습을 되살렸다.

그리고 누난은 레이건이 “(그녀의) 영웅이며 인격체로서의 미국 대통령 중 우등생임을 절감했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 그녀가 전하는 레이건은 가난하게 태어났고 어린 시절부터 정치인이나 기업가보다 예술인이 되기를 바랐다.

그는 만화가가 되고 싶었고 라디오 스포츠 중계를 할 때도 그의 머리 속엔 그림이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신문보다 TV를 좋아했다. 그의 연설은 짧고 에피소드 중심이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그는 호텔 배차원에게 하루 몇 대를 주차 시키며 팁으로 얼마를 받는지 묻기도 했다.

레이건은 농담이 지루한 일에 활력을 준다고 생각했다. 적잖은 사람들이 그를 비판하지만 그는 믿지 못하겠다거나 저질이거나 건방지다고 말하지 않는다.

누난은 주장하고 있다. “어린 아이들이 장난감 칼을 가지는 이유는 ‘나쁜 놈’을 없애기 위해서라고한다. 미국의 대통령은 이들 어린이들에게 올바른 영웅이 되어야 하고 인격까지 겸비한 대통령이어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을 썼다.”

김대중 대통령도 남은 임기 중 ‘준비된 대통령’이란 역할만 다 하면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한국의 바람직한 대통령상을 수립하겠다는 각오를 다졌으면 좋겠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2/03/06 10:45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