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정상질주…역사적인 100번째 타이틀

이창호의 '미완성의 승리- V100'(36)

장강(長江)의 흐름을 돌리는 데는 실패했지만 이세돌은 국후 그의 말대로 ‘쓰디쓴 보약’으로 삼을 만하다. 그리고 세계 정상에 오르는 일이, 이창호를 꺾는 일이 그렇게 간단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을 것이다.

1974년 일본기원 선수권전에서 조치훈과 당대 일인자 사카다 에이오(坂田榮男)에게 도전하여 2승 후 3연패를 당했던 조치훈의 나이가 18세였다. 이후 사카다에게 12연패를 당했을 정도로 철저하게 죽임을 당한다. 조치훈도 그런 아픈 기억이 있다. 그리고 우뚝 섰다.

이창호. 이 청년은 2연패 후 3연승의 기적을 이루며 100번째 왕관을 머리에 얹었다. 이세돌은 18세 소년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솜씨와 투혼으로 내일을 예약했다. 그래서 2001년 LG배는 우리 바둑계가 이창호를 지켜내고 이세돌을 새로 얻은 기념비적인 잔치였다. 승자도 패자도없는 그런 쟁투였다.

242수만에 흑을 든 이세돌이 돌을 거둠으로써 대장정은 이창호의 수성으로 끝이 났다. 꼭 10년 전동양증권배를 16세의 나이에 타이완의 린하이펑(林海峰)을 맞아 3:2로 역전승한 이후 가장 극적인 피날레다.

이창호의 국후담이다. "전투와 접전이 계속돼 어려웠다. 나중에 좌상귀에서 패가 났고, 바꿔치기의 결과가 좋아 승기(勝機)를 잡을 수 있었다. 이세돌의 기력이 충분히 강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2연패를 당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용적으로도 완패였다. 초반 2연패를 당했을때만 해도 꽤 부담이 되었는데, 막상 연패를 당하자 마음이 가라앉아 오히려 편하게 두었다."

이창호의 V100은 입단한 지 15년 만에, 89년 첫 타이틀 획득 12년 만에 이뤄낸 초고속 기록이다. 그를 능가할 불세출의 천재가 또 다시 등장하지 않는 한 영원히 깨지기 어려운 기록이다.

이창호는 역시 대단했다. 이로써 꼭 대소의 세계대회에서 15번째 국제 타이틀을 포함하여(기록적으로는 문제가 좀 있다. 어느선까지가 세계대회인지 좀 아리송한 면은 있음) 100번째 타이틀을 차지했다.

이로써 이창호는 한국바둑사상 일년 수입이 10억을 돌파하는 신기원까지 이룩했다. 과연 살아있는 기록 제조기 답다.

1992년 제3기 동양 증권배를 우승하며 최연소 세계 챔프에 오르면 그의 타이틀 획득사는 시작된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해 8관 왕에 오르면서 고속 성장을 기록한 이후 매년 10개 안팎의 타이틀을 독식하는 '공룡'이 되어버렸다. 더욱이 95년에는13개의 타이틀을 따내 최다관왕 신기록까지 세우면 '1강 체제'를 유지했다.

현재 이창호의 세계대회 우승전적은 통산 15회(준우승 1회)이다. 통산 우승부문 세계 최고기록은 조훈현의 153회. 조훈현은 1974년 제14기 최고위전에서 첫 타이틀을 획득한 이후 1989년 제28기 최고위전에서 우승하기까지 만15년 만에 100회 우승을 달성한 바있다.

신화는 계속되고 있다. 이 글이 연재되는 동안에도 그는 계속해서 타이틀을 획득하여 지금은 총 타이틀 획득수가 104개나 되었고 또 기성전에서는 9연패중이다. 이창호가 바둑을 두고, 이기는 한 기록은 계속될 것이다.

과연언 제까지 지금 같은 무풍질주를 거듭할 수 있을까. 그리고 30대 이후, 결혼을 해서도 그 기세를 이어갈 수 있을것인가. 또 언제쯤 스승 조훈현이 이룬 금자탑(통산타이틀 수 153개)을 능가할 수 있을 것인가. 가슴 뿌듯하게 지켜보자. 이창호 같은 바둑계의 위인과 우리는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뉴스화제]



●목진석 기서전서 이창호에 불계승

'괴동' 목진석 6단이 '끝내기의 신' 이창호 9단을 물리치고 기성 쟁취에 단 1승을 남겨두게 되었다.

2월 23일 제주 크라운 프라자호텔 벌어진 제13기 현대 자동차배 기성전 도전 3국에서 도전자 목진석 6단은 이창호 기성을 상대로 225수만에 불계승을 거둬 5번기 전적에서 2:1을 기록, 기성 획득에 1승만을 남겨놓았다.

이날 대국에서 목 6단은 초반부터 의욕적인 포진과 날카로운 행마로 주도권을 잡아나가기 시작했으며, 중반부터 이어지는 끝내기의 신(神) 이 9단의 끈질긴 추격을 뿌리치고 승리를 굳혔다.

아직 한번도 '비4인방' 기사에게 본격 타이틀전에서 패퇴한 적이 없는 이 9단의 프리미엄을 과연 도전자 목 6단이 뛰어넘을 수 있는지 주목되는 가운데 다음 도전4국은 3월중에 열릴 예정이다. 12기 기성전의 우승 상금은 2천 2백만원. 기성 이 9단이 지금까지 9번 연속 우승했다.

진재호 바둑평론가

입력시간 2002/03/06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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