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후유증, 호주는 '상처투성이'

재정적자와 치솟는 주택가 등 물가 상승ㆍ세금 부담 늘어

올림픽 개최 1년6개월째를 맞는 ‘햇볕의 도시(The City of Sunshine)’ 시드니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다.

시드니 도심과 외곽 주변은 건물 3개중 평균1개 꼴로 입주자를 찾는 광고문이 창문마다 내걸려 있다. 도심 전체가 마치 세일중인 듯 착각할 정도다.

2000년 9월 올림픽 개최 이후 경기침체에 따른 기업들의 잇따른 부도 여파로 시드니의 도심 빌딩 공실률은 사상 최고 치에 달하고 있다. 실업률 역시 올 1월 들어 7%를 넘어섰고 물가상승률도 6%대로 치솟은 상태다.

또 물가상승의 주요요인으로 꼽히는 주택가격은 최근 1년 새 하늘을 찌를 만큼 급등세를 보여 호주 현지인은 물론 종자돈을 짊어지고 온 한국 이민자들까지도 부동산 투자 열풍에 휩싸이고 있다. 호주 뉴 사우스 웨일즈주의 주도인 시드니의 핵심부 조지 가(街).

남반구에 위치해 우리와는 절기가 정반대인 3월초 시드니는 여름의 열기가 꺾이는 가을 문턱에 접어들면서 오후 8시가 넘으면 이곳을 찾은 외국 관광객 이외에 도심전체가 텅비어 거리엔 어둠과 싸늘함만이 가득하다.

세계 3대 미항(美港)으로 꼽히는 시드니의 상징 오페라 하우스의 화려한 야경 뒷편으로 ‘올림픽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시드니의 그늘진 경제는 한일 월드컵 개최 80여 일을 눈앞에 둔 우리에게 ‘월드컵 그 이후’를 먼저 생각하게 한다.


체감 물가 인상률 10% 이상

시드니 도심과 북쪽 주택 밀집지역을 이어주는 유일한 창구 시드니 하버 브릿지(1930년대 완공)를 건너 출ㆍ퇴근하는 시드니 시민들은 매번 통행료로 3달러(약2,100원ㆍ이하 호주달러)를 지불한다.

싱글 아치 구조로 만들어진 다리 중 세계에서 2번째로 긴 하버 브릿지의 통행료는 올림픽 개최 직전 만해도 2달러에 불과했지만 1년 여 만에 무려 50%가 급등했다.

호주인의 주음료인 우유가격의 오름세도 심상치 않다. 소ㆍ양의 수가 전체 인구(1,830만명)의 약 100배에 달하는 세계 대표적인 낙농국가로 꼽히는 호주의 우유가격은 한 마디로 이곳 물가를 반영하는 기준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호주의 우유 한 병 (1리터 용) 당 소비자가는 현재 1달러50센트(한화1,150원)로 낙농 후진국인 우리나라와 그 차이가 300원도 채 나지 않는다. 1년 여 만에 우유값이 30~40% 뛰어올랐기 때문이다.

호주 재무부에 따르면 올림픽 개최이후 시드니의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6%로, 전년도 2.4%에 비해 3배 가까이 치솟았다.

그러나 세제개편 등으로 부과되는 각종 세금의 부담 등을 감안하면 시드니 시민들이 생활 속에서 느끼는 실제 물가 체감 인상률은 10%를 넘어설 것이라는 것이 현지인들의 설명이다. 호주정부는 올해 말까지 물가 인상률을 2.6%로 잡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물가상승의 원인은 올림픽 개최이후 호주정부의 심각한 재정적자에서 비롯된다.

호주정부는 당시 올림픽 경기시설과 관련 인프라 건설을 위해 25억 달러(한화 약 1조6,200억원)을 쏟아 부었다. 이로 인해 올림픽 개최 당해 연도의 재정수지 적자는 97억 달러로 전년 39억 달러 적자의 약 3배에 달했다.

여기에다 지난해 재정적자도 54억 달러를 기록, 최근 4년간 재정적자 규모는 약217억 달러에 이르러 이를 충당하기 위해선 국토의 일부라도 팔아야 할 만큼 다급한 상황이다.

또 여기에다 지난해엔 난민 증가와 ‘테러와의 전쟁’등으로 예상치 못했던 국방비 예산마저 늘어 5억 달러 이상의 추가 지출이 불가피해 재정악화를 부추겼다.

호주정부는 올림픽 개최 2개월 전에 단행한 세제개혁을 통해 호주 시민들이 먹고 마시고 즐기는 모든 상품 거래와 서비스 등에 10%의 부가가치세(GST: Goods &Services Tax)를 부과, 물가인상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건설업계에 종사하는 레스 쉐어먼씨(46ㆍ시드니 거주)는 “올림픽 개최당시 재원확보를 위해 시드니의 대표적 상징인 ‘시드니 타워’를 미국 회사(AMP그룹)에, 시드니 동물원 ‘원더랜드’를 일본 기업에 매각하는 등 정부의 노력과는 달리 그 효과는 기대이하”라며 “호주달러의 평가절하와 미국 태러 사태 여파로 최근 외국관광객은 늘고 있지만 정작 시드니 시민들의 세금ㆍ물가압력은 한 층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교민사회에까지 불고있는 부동산 투자열풍

호주정부는 올림픽 개최 이후 지난해 심각한 재정적자와 세계적인 경제침체에도 불구하고 2%대의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그 배경에는 건설업체들의 선전으로 내수경기가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호주 정부는 경기 진작책의 일환으로 5차례에 걸친 금리인하와 각종 부동산 구입 지원책 등을 통해 건설경기 활성화에 주력했다.

지난해 주택마련 대출금리는 5%대 선으로 내려앉았고 처음 주택을 마련하는 수요자들에 대해서는 구입희망 건물의 건축 시기에 따라 무상으로 7,000~1만4,000달러의 자금을 지원하는 파격적인 경기 활성화 방안을 내놓았다.

이 같은 영향으로 지난 한 해 시드니와 멜번 등 주요 도시 지역의 주택가는 평균 40% 껑충 뛰었다. 시드니 북쪽 주택 밀집지역으로 교육시설이 뛰어나고 교통이 편리한 것이 특징인 아타몽과 체스우드, 린 필드 등의 집값은 150~200평의 경우 평균 60만 달러 정도 하던 것이 1년도 채 못돼 100만~120만 달러로 두 배 정도 치솟았다.

4만 명에 이르는 시드니 한국 교민사회에서 부유층은 물론 일반 교민들까지도 지난해 주택을 마련하기 위해 국내에서까지 무리하게 자금을 끌어들이는 사례도 잇따랐다.

최근 시드니 교민사회에서 부동산 중개업이 가장 각광 받는 사업으로 꼽히는 것도 이 같은 부동산 투자 열풍의 영향때문.

시드니에서 부동산 중개업소를 운영중인 오식원 오리얼티 대표는 “시드니의 주택가격 급등은 최근 서울 강남 아파트 투기열풍을 연상시킬 만큼 부동산 내수진작의 차원을 넘어서 물가상승은 물론 빈부격차를 심화 시키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호주에서는 경기침체 속에서 불안정한 증시를 떠나 유일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재테크 수단으로 주택구입이 각광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사라진 올림픽효과

시드니는 이미 ‘올림픽 효과’가 사라진지 오래다. 호주 정부는 지난해 외국인 관광객수가 최소 500만 명을 훨씬 넘어설 것이란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나 실제로 지난해 방문객수는 490만 명에 그쳤고 올해 방문객 수는 더 줄어들 전망이다. 올림픽에 따른 고용창출의 기대도 컸다. 사실 올림픽 직전인 2000년 7월 실업률은 과거 19년 만에 사상 최저인 5.4%로 떨어졌다.

그러나 올림픽 1년 반 뒤인 올 1월 현재 실업률은 다시 7%대로 치솟아 오른 상태다. 지난해 주요 기업들의 잇따른 부도도 올림픽 개최 이후 그늘진 호주 경제를 한층 암울하게 만들고 있다.

호주 최대 손해 보험회사인 HIH와 통신업체인 원텔(Onetel), 2대항공회사인 안셋(Ansett) 등이 경기침체에 따른 경영악화로 간판을 내림으로써 실업률 증가를 부추겼다.

KOTRA 시드니 무역관 이승희 부장은“시드니 올림픽 개최 이후 치솟는 물가ㆍ세금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호주 국민들의 부담은 그나마 안정된 사회복지 정책 때문에 심각한 사회문제로까지 확대되지않는 것이 다행”이라며 “우리도 월드컵 개최이후 예상되는 모든 경제적 파급효과를 철저하게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드니=장학만 기자

협찬=빙그레

입력시간 2002/03/06 17:43


시드니=장학만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