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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이 남긴 것들…

‘태조 왕건’이 남긴 것들…

한민족의 생명력 확인시켜준 '국민드라마'

천하 평정, 충성과 의리, 임금의 도, 승자와 패자, 불과 피…. 이들 앞에서 여인이란 야망과 웅지 한켠에 옹송그린 부차적 존재에 불과했다. 트랜디 드라마 등 여성적인 것이 지고의 가치인 양 떠오른 페미니즘의 시대, ‘태조 왕건’은 정반대의 전략으로 밀고 나갔다. 사나이의 하드 보일드.

그러나 결과는 대성공. 시대의 허를 찌르고, 시청자의 의식을 보란 듯 흡인했다. 2000년 4월 1일 첫 전파를 타고, 지난 2월 24일 전파를 거둬들인 KBS1-TV 대하 사극 ‘태조 왕건’은 국민 의식을 점령했다. 총 방영 기간 837일에, 방영 회수는 200회.

방영 2주만에 시청률 36%를 넘어 서더니, 넉 달 만인 8월에는 40%로 당시 시청률 1위였던 SBS의 ‘덕이’를 제쳤다. 이 파죽지세에 언론은 ‘국민 드라마’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남자들은 TV앞에 앉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드라마에 빨려 들어 갔다. 왕건 궁예 견훤은 그대로 최수종(40) 김영철(49) 서인석(53)이었다. 최수종은 부잣집 아들 같던 이미지를 완전히 벗고 컬컬한 목소리로 천하를 호령하는 대장수로 거듭났다.

김영철은 방영 내내 완전 삭발을 자청, 재림 부처를 자처하던 괴이한 인물 궁예를 무색케 했다. 또 착한 중년남에 제격이었던 서인석은 권모술수로 천하 경영에 나선 늙은이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세 명의 노련한 연기를 통해 시청자가 경험한 것은 차라리 일종의 착시 현상이었다.

이 드라마는 작가 이환경(52)씨가 맥빠진 국민에게 띄우는 장문의 편지였다.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로 온 국민의 어깨가축 처져 있던 때, 그는 국내는 물론 중국 옌벤까지 가서 관련 자료를 구했다.

1400여년 전 신라에 의해, 1000여년 전 고려에 의해 이뤄졌던 한반도의 통일 실화에서 또 한번의 상상력을 제공받는 계기였다. 그것은 바로 한민족의 생명력이었다.

첫 회 방영이 나가자 KBS의 홈페이지에는 몇 대목이 사실과 어긋난다는 지적이 따르긴 했다. 궁예의 부인인 강비가 왕건의 옛 애인으로 잘못 묘사됐다거나, 종간에 너무 큰 비중이 주어졌다는 점 등이었다.

사미승이자 궁예의 모사로 나오는 종간은 정사에는 출생년도만 나오는 사람이 아니냐는 인터넷상의 관심 어린 항의였다. 그에 대해 ‘드라마틱한 각색’이라 변명하는 제작진의 기분도 나쁘진 않았다.

한치도 양보 없는 정립(鼎立) 상황, 3파전의 형세는 국내 드라마에서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소재였다. 세 나라가 있었으니 세 나라를 대표하는 걸물이 짭짤한 맛을 더했다.

최응(왕건)-종간(궁예)-최승우(견훤) 등 빅 쓰리를 측근에서 보좌하던 세 명의 모사에, 왕건을 모시던 세 명의 여인이 따랐다. 인자스런 선혜왕후 유씨-계략의 장화황후 오씨-비련의 강연화 등 세 여인이 그들. 김혜선, 염정아, 김혜리 등 여우들의 연기 경쟁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제작비 200억원, 전투장면 분장에만 10시간

이 드라마가 시종일관 시청자들의 호감을 샀던 것은 정통 사극의 패러다임을 TV라는 매체의 어법으로 확립했다는 점이다. 대규모 전투장면에서 500여명에 달하는 엑스트라를 분장하는 데만도 10시간을 잡아야 했다. 모든 것은 200억 여 원이라는 제작비가 받치고 있던 덕택이었다.

25억원의 제작비를 투여, 3개월 동안 3,000여명이 완성한 문경의 야외 세트는 ‘태조 왕건’이 남긴 커다란 족적이다.

기와집 47동, 초가 48동 등 모두 95채의 집이 학계의 고증에 힘입어 원형대로 완성된 것이다. 2010년이면 소유권이 완전히 문경시로 이전될 이 야외 세트는 지역 관광 명소로 키워나갈 것을 염두에 두고 지어져, 고증에 정성을 기울이는 등 여타 사극 세트와 컨셉부터 다르다.

‘태조 왕건’은 우리나라의 역사로, 우리나라의 인력과 기술로, ‘삼국지’ 보다 더 생생한 한편의 거대한 드라마를 띄워 올릴 수 있음을 입증해 보였다.

금성(나주) 전투, 상주 전투, 공산 전투 등 3대 전투 장면을 치밀한 역사적 상상력으로 재현해 낸 것은 역사 드라마로서 이룩한 최대의 미덕으로 평가될 부분이다.

시기적으로 ‘태조 왕건’은 IMF를 맞아 재건국이라는 비장한 각오까지 필요한 시점과 절묘하게 맞물렸다. 드라마가 거둔 찬란한 성공의 이면에는 난세의 역사로부터 위안을 받고, 교훈을 구하려는 집단 무의식적 희구가 갈려 있었다.

장병욱 주간한국부 차장 aje@hk.co.kr

입력시간 2002/03/06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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