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카페(97)] 한계에 도전하는 생명력

흔히들 끈질긴 생명력을 논할 때는 길가의 잡초를 논하곤 한다. 하지만 이 세상의 생물 중에 가장 생존력이 강한 것은 세균이다. 장수의 대명사인 십장생에도 포함되지 않는 세균이지만. 그 생명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 달 세계적인 과학 잡지인 ‘사이언스’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보통 공기의 압력보다 1만7,000 배(약 113톤의 무게감)나 높은 압력에서도 세균이 살아 남는다는 것이 실험으로 증명되었다.

지금까지 그 어느 생명체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던 압력이다. 이번 실험에 사용한 세균의 사람의 장내에 서식하는 유익한 세균인 대장균이었다. 이런 평범한 세균이 무려 113톤에 달하는 압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은 지구를 비롯한 태양계의 극한 상황에서 생물이 존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실험은 카네기 연구소의 아무레그 샤람 박사 팀이 주도했는데, 다이아몬드로 만든 모루 사이에 세균을 넣고 압력을 가하고 수 시간 동안 그대로 두었다가 생존한 세균을 조사한 것이다. 고압에 머물렀던 세균 중 약 1%가 살아서 화학물질을 소화하는 모습이 확인됐다.

하지만 분열을 하거나 생식을 하지는 않았으며, 일부는 그 형태가 심하게 변형된 상태였다고 한다. 특정 세균이 극한 상황에서 살아 남는다는 사실은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사실이지만, 이처럼 평범한 세균이 이러한 압력에서 살아 남는다는 것을 실험으로 증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같은 실험 이외에도 감히 다른 생물이 흉내낼 수 없는 세균 생명력에 대한 증거는 많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냉동실의 온도보다 낮은 영하15도에서 맨몸으로 살아 남는 크립포텐돌리토트롭스(Crypotendolithotrophs)라는 세균이 있다.

이 세균은 남극에서 산다. 깊이 1249m, 길이 1,000km에 달하는 남극의 얼음이 그의 집이다. 산성의 최고 값인 Ph0.0에서 사는 세균도 뉴멕시코의 칼스베드 동굴에서 발견되었다. 이탈리아의 불카노섬에서 발견된 파이로코크스 퓨리오수스(pyrococcus furiosus)라는 세균은 섭씨 113도에서 살며 황을 먹고 산다.

물의 끊는 온도가 100도이므로 다른 생물 같으면 익어버려도 남는 온도다. 이들은 열에 강한 특수한 단백질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땅속 900m에서 사는 세균도 있으며, 다이노코크스 라디오듀란스(deinococcus radiodurans)라는 세균은 이름 그대로 죽음의 방사선인 감마선 5백만 라드(rad)에서도 살아 남는다.

그런가 하면 바실러스 섭틸리스라는 세균은 나사의 한 시설에서 6년 동안 살아 남았고, 스트렙토코크스 미투스라는 세균은 달 표면에서 보호되지 않은 체로 아폴로12호 우주선의 조사용 카메라 속에 3년 동안 살아 있다가 발견되었다. 호염성 세균의 경우 염도 30퍼센트에서도 살아남는다. 이렇게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 남는 세균을 일컬어 ‘극한친화성세균(extremophiles)’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번 압력 실험에 사용된 세균은 평범한 장내 세균이라는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더욱 크다. 그만큼 생명체의 존재 영역이 기존의 생각보다 더 넓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그래서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는 향후 목성 등 우주의 생명탐사 때 표면뿐만 아니라 깊은 지하층까지 조사할 것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기온이 낮은 행성이든, 중력이 지구보다 아주 높은 행성이든 모두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상황은 된다는 것이다. 세균의 바로 이런 강인함 때문에, 진화론적 입장에서는 모든 생명의 선두에 세균이 있으며, 이들이 생명 탄생과 보존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생명의 기원이 어느 곳이든 적어도 지구와 우주를 왕복하면서 맨몸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생명력은 세균밖에 없다는 것은 이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원근 과학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www.kisco.re.kr

입력시간 2002/03/07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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