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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 고정관념을 깬 감각적 언어극의 비틀림

■극단 산울림‘쉬-쉬-쉬-잇“

“짓궂고 불손한 어뢰군요?”(여인)

“잠수함이 정열적이어서 그래.”(사내)

“더 무엄하게 굴면 삼켜 버릴 테예요.”(여인)

“그러지 않아도 쳐들어 갈 참이었어.”(사내)

“노크 좀 하고 쳐들어 올 수 없어요?”(여인)

암전된 무대에서 남녀 말소리만 들린다.둘이서 만 있기 때문일까, 대화의 수위는 더 높아 간다.

“난 들어가서 노크를 하는 버릇이있지”(사내) “밉지 않은 실례군요”(여인) 여인의 숨소리가 서서히 높아 가기 시작한다. 한 대목만 떼어 본다면, 분명 뒷골목 포르노극 뺨치는수준이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극단 산울림의 ‘쉬-쉬-쉬-잇’(이현화 작, 채윤일 연출)이 공연된다. 번득이는 언어와감각으로, 아무렇지 않은 일상과 고정 관념의 허를 찌른다. 1976년 극단 자유가 초연, 파격적 구성과 기법으로 리얼리즘극의 상투성에 반기를 들고,한국적 부조리극의 시대가 왔음을 알렸던 화제작이다.

놀라운 장광설이 결국은 무의미한 요설이었음을보여 주었던 베케트나 이오네스코의 작품들처럼, 언어의 무의미성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이오네스코의‘대머리 여가수’ 등 부조리극 처럼, 의사소통을 포기한 언어들은 허공에 제각각 떠 돌고 있다.

첫날 밤, 신부가 자리를 비운 사이웬 낯선 사내의 느닷 없는 방문을 받은 남자로부터 극은 시작된다. 부부가 된 남녀는 각각 30, 25세다. 이들과 쌍을 이루는 침입자 또는 대체자아(alter-ego)의 남녀는 35, 30세로 설정돼 있다. 이들 넷의 무대에 극의 방향을 약간씩 비트는 호텔 보이 두 사람이 있다. 희곡에서부부는 남자-여자, 침입자는 사내-여인으로 구분돼 있다.

마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두 남자주인공 블라미르와 에스트라공, 그들과 쌍을 이루는 주인과 하인이 있고, 소년이 가끔씩 등장해 바깥 세상 소식을 전하는 것과 흡사한 구도다.

무단 침입자들은 이날 밤 신혼 여행온 두 사람의 개운치 못 한 과거를 들이밀며 그들을 서서히 조여 간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새삼스럽게 감귤 같은 새콤한 과일을 유별나게 찾는점을 꼬집어 낸다거나, ‘배멀미 라기엔 어쩐지 수상한 헛구역질을 애써 숨기려다 들킨 적이 여러 번 있었노라’고 주장이라도 한다면?”. 네 과거를까 발기겠다는 노골적 협박이다.

신부는 신랑이 이 말을 행여 들을까질겁한다. 이 지점에서 분신은 실제 인물의 무의식 또는 죄의식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둘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 목욕탕으로 들어간다. 객석은 이대목에 이르면 ‘서로가 서로를 속이려 드는 이 진실 게임은 어쩌면 우리의 현실 아닐까?’하는 의문을 자연스레 품게 된다.

30년 전 작품이지만 대사들은 이시대 감각으로 봐도 파릇하다. 예를 들면, “콧노래라도 부르며 물속에 들어가 있어야, 솜털들이 으쓱 으쓱해져서 살결이 한결 고와 진다구”, “(어떤종교 의식의 일부분이라는 듯 두 손으로 경건하게 여인의 다리를 받쳐 들며)사실 난 오늘 밤 우리의 ‘첫 번’을 혀끝으로 맞이하고 싶었어”….

연극의 제목은 여인이 아직 잠에서덜 깨 끈끈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의 제목이다. “…쉬-쉬-쉬-쉬잇/묻지 마시고 눈빛으로 들어요/창 너머 그늘에서/누군가 보고 있어요/벽 저편구석에서/누군가 듣고 있어요…”

남자 역에는 뮤지컬과 정극을 오가며기량을 펼친 남윤길, 여자로는 생동감 있는 연기로 무대에 활력을 불어 넣는 이훈경이 각각 출연한다. 이들 상대로는 50여편의 작품을 통해 선이굵은 연기를 보여 온 전국환, 매력적 악녀 역에 제격인 박호석 등이 나온다. 4월 7일까지 산울림소극장. 화~목 오후 7시 30분, 금~일 오후4시 7시 30분, 일 오후 3시(02)334-5915

장병욱 차장 aje@hk.co.kr

입력시간 2002/03/11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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