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k뉴스포탈 한국일보
일간스포츠
서울경제
KoreaTimes
대한항공 대우통신
주간한국  
www.hankooki.com  


 
주간한국 홈
구독신청
독자 한마디
편집실에서


   미래를여는사람들
   인터넷 세상
   한의학 산책
   땅이름과 역사
   논문 산책

카메라포커스 그림펀치

[이대현의 영화세상] 이정향 감독에 대한 유감

이정향 감독. 그는 2년 전 ‘미술관 옆 동물원’으로 단번에 성공적인 여성 상업영화 감독으로 부상했다. 한 집에 기거하게 된, 전혀 다른 성격의 두 남녀의 소통과 사랑을 정말 곰살맞게 그렸다.

심은하란 뛰어난 배우 덕분이기도 하지만 이정향 감독의 여성으로서 섬세한 심리묘사로 여성에 치우친 영화가 아닌 여성 감독이 만드는 상업영화의 가능성을 열었다.

그런 그가 두 번째 영화를 만든다며 충북 영동산속으로 숨어 들었다. 더 크고 화려한 영화를 하지 않겠냐는 예견을 일축하고 그는 작은 영화를 선택했다. 그리고 마침내 ‘집으로…’를 들고 나타났다.

영화는 ‘미술관 옆 동물원’과 일맥상통했다. 말을 못하는 팔순 노파와 서울에서 살다 잠시 떠맡겨진 일곱 살짜리 소년. 산골 외딴집이란 제한된 공간, 그들의 소통문제가 들어있다. 다르다면 보다 자연과 휴머니즘에 가깝게 다가섰고, 보다 문학적(예술적)이라는 느낌이 든다는 것 뿐.

그것은 이 영화가 저예산에 가깝다는 것,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처럼(사실은 전혀 다르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아마추어 배우들을 대거 등장시켰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

이정향 감독은 자신의 외할머니(지금은 세상을 떠난)에 대한 기억 때문에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중에서도 아름답고 따뜻한 기억일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기억에 대한 아름답고 안타까운 마음을 “이 세상의 모든 외할머니에게 바친다”고 했다.

그래서 영화는 시점은 지금이지만 그의 어린 시절인 1970년대의 분위기이다. 낡은 마을 버스나 ‘초코파이’조차 모르고 검정고무신을 기워 신고 있는 할머니나 매일 지게 지고 산에 나무하러 가는 동네아이가 그렇다. 턱없이 순박하기만 시골 사람들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전반부에 꼬마는 도시문명을 모르는 할머니를 끝없이 경멸하고 무시한다. 반면 할머니는 말 못하고 늙어서 힘이 없고, 가난하지만 묵묵히 사랑을 보여준다. 그리고 후반부에 아이가 할머니의 사랑을 깨닫고 할머니와 화해하는 과정으로 간다. 대립이 크면 클수록 화해의 감동이 크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감독은 이악스러울 정도로 아이를 내몰고, 할머니는 답답할 정도로 그것을 감싸준다.

극단적인 이분법과 합일이야말로 대중 멜로영화의 전형이다. 그것을 위해 영화는 등장인물 뿐 아니라 도시와 시골의 정서, 문화, 자연까지 극단적 대립으로 본다. 그것으로 아름다운 자연과 시골의 인심과 외할머니의 사랑은 더욱 극대화하고, 영화는 마치 지켜야 할 소중한 것들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다큐멘터리적인 느낌을 가지게 했다.

이런 영화에 감동 안 할 사람은 없다. 비록 그것이 1970년대를 배경으로 쓴 소설을 영상화한 ‘TV 문화관’ 수준이라 하더라도, 멜로적 관습을 한치도 벗어나지 않은 상투라도 말이다.

‘집으로…’야말로 이정향 감독이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 보여준 신세대적 가치관과 감각조차 팽개친 철저한 상업 영화이다. 메이킹 필름(시사회 때 일부러 틀어주었다)을 보면 이정향 감독 이 영화를 제작하면서 얼마나 고생했으며,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이 들어있나를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본 순간의 배신감이란? 자연스러움은 한걸음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감독의 계획이며, 휴머니즘조차 철저히 계산된 것이라는 사실. 물론 영화는 조작이다.

그러나 문제는 ‘집으로…’는 그 조작을 관객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었고, 그것으로 영화는 하나의 다큐적 예술성을 얻고자 한 것이다. 차라리 메이킹 필름을 영화 앞부분에 보여주고 그것이 어떻게 영화에 조작돼 나타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면 충분히 예술적 실험과 의미가 있다.

그러나 ‘집으로…’는 결국 관객에게 그 사실을 숨긴 채 현실 왜곡적이고 조작된 이미지들을 ‘휴머니즘’이란 이름으로 값싸게 팔아먹는 상업영화가 될 것이다.

그 음모가 싫다. 차라리 이것은 영화다. 그리고 나는 대중적 기호에 영합해 상업영화를 만드는 여성감독이라고 말하지 못할까.

임순례 정재은 이미연이 모두 예술적 평가를 받아서? 이 땅에 여성상업감독이 얼마나 필요한지 모르고 있는 걸까. 이정향 감독에게 정말 실망했다. ‘집으로…’에서 영악한 소년처럼 그에 대해 이제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된 때문일까.

입력시간 2002/03/12 13:54



 

◀ 이전화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