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오른 정치권] 흔들리는 한나라당, 울고 싶은 昌

탈당·서울시장 경선포기·총재단 사퇴촉구 등 잇단 악재

한나라당이 휘청대고 있다. 정권 초기부터 지금까지 세풍(稅風ㆍ국세청 동원 대선자금 모금) 안풍(安風ㆍ안기부 자금 대선자금 유용) 등 줄기찬 여권의 공세에도 꿈쩍 않던 한나라당이 뿌리 채 흔들리고 있다.

박근혜 의원의 탈당(2월28일)과 김덕룡 의원의 탈당 시사, 강삼재 의원의 부총재 사퇴(3월7일), 홍사덕 의원의 서울시장 경선 포기(3월9일), 이부영 부총재의 총재단 사퇴 촉구(10일) 등 불과 보름 여 동안 터져 나온 잇따른 악재들 탓이다.

이 기간 동안 민주당의 공세는 설훈 의원의 이회창 총재 빌라 관련 폭로밖에 없었으니 결국에는 스스로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이 총재는 10일 일본으로 출국하기 전 “거목은 잔 가지가 흔들릴지라도 큰 줄기는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거목은 흔들리는 게 아니라 한 순간에 꺾어지는 법. 현재의 한나라당은 말 그대로 내홍(內紅) 상태다.


홍사덕 이부영의 압박

서울시장 등록 포기로 한나라당의 분란을 가속화시킨 홍사덕 의원은 11일 탈당 가능성을 한껏 열어놓았다.

홍 의원은 이날 기자간담회서 집단지도체제 즉각 도입, 이 총재의 2선 후퇴 및 총재권한대행 체제 가동 등을 요구하며 이 총재를 압박했다. 홍 의원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돈으로 되지 않는 일이 있음을 반드시 입증하겠다”며 무소속 출마를 강행할 뜻을 내비쳤다. 무소속 출마는 탈당에 다름 아니다.

만에 하나 홍 의원의 탈당이 현실화하면 이는 박근혜 의원이나 김덕룡 의원의 탈당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당이 동요할 가능성이 있다. 홍 의원은 두 사람과는 달리 ‘이 총재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칫 ‘탈당 도미노’의 분기점이 될 수도 있다. 이유는 제 각각이지만 이 총재에게 불만을 갖고 있는 당내 인사들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고, 이들은 홍 의원의 선택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10일에 있은 이부영 부총재의 총재단 사퇴 요구도 불 난 집에 부채질한 격이 됐다. 자신의 의도가 무엇이었던 간에 이 부총재의 압박은 이 총재에게는 직격탄이 됐고, 이는 결과적으로 당을 더욱 흔들리게 만들었다. 이 부총재는 전날 이 총재와 따로 만난 자리에서 “당이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총재단이 책임을 지고 총사퇴, 구당(救黨)을 위한 비상대책기구를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 부총재는 “당을 구하기 위한 충정에서 이 같은 건의를 한 것일 뿐”이라며 “부총재직을 그만 둘 각오가 돼 있으나 탈당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며 일각의 탈당 관측을 부인했다.


허둥대는 당 지도부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말이 있다. 이 경구만큼 정국 현안에 대한 한나라당의 대응을 적확하게 표현하는 말이 없다. 최근 터져 나온 일련의 사태에 대한 한나라당의 대응 능력은 낙제점에 가깝다.

민주당 설훈 의원이 이 총재의 가회동 빌라를 문제 삼기 훨씬 이전에 한나라당은 이 문제의 발생 가능성을 감지했었다. 그러나 대응이 없었다. “그게 뭐 그리 큰 문제냐?”라는 지도부의 잘못된 판단 때문이었다. 당내 특보단이나 주요 당직자들은 대책회의 한번 하지 않았다.

설훈 의원의 첫 폭로가 나왔을 때도 당은 아무런 대책회의를 열지 않았다. 대변인실이 기자들의 채근에 밀려 마지못해 어정쩡한 해명을 하는 게 고작이었다. 일각에서는 “권노갑 전 최고위원의 경선 자금 파문을 덮기 위한 것”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상황 판단만 하고 있었다.

가회동 빌라는 곧바로 민심을 자극하면서 일파만파로 확대됐다. 한나라당은 뒤늦게 심각성을 깨달았으나 이미 초기 대응에 실패한 터라 수습에 역부족이었다. 대책회의가 열렸지만 진상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아래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이 총재에게 일일이 “2층에는 누가 살고 4층에는 누가 사는지”를 물어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에 앞서 박근혜 의원이 탈당을 선언한 날에도 한나라당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정치권은 물론 일반인들 사이에도 “소용돌이가 몰아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지만 한나라당에는 “올 것이 왔을 뿐인데 뭘 어쩌란 말이냐”는 무기력한 분위기만 가득했다.

한 핵심 당직자는 일련의 사태에 대해 “당에서는 누구 가릴 것 없이 손을 놓고 있었다. 당의 긴급 상황 대처 기능이 완전히 망가졌다”고 털어놨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의 대응

한나라당 지도부는 뒤늦게야 당 시스템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다. 더 이상 소를 잃기 전에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먼저 당의 일일 전략대응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거의 매일 열리는 당 3역회의, 일주일에 두 번 있는 총재단 회의 등 “머리 큰” 사람들의 회의만으로는 숨가쁘게 진행되고 치밀한 계산이 필요한 정국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당에서는 “이제 선거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후보와 직접 연결되고 수시로 의논하는 전략적 코아(CORE)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장기 전략으로 대선 때까지 터져 나올 수 있는 각종 돌출사안에 대한 대비도 서둘러 해 나갈 계획이다.

이를테면 향후 정치권의 주요 이슈가 될 정계개편에 대비, 각종 시나리오별로 가상 상황을 설정해 그 파급효과를 효율적으로 차단하는 작업 등이다. 이 총재도 이런 판단을 한 듯하다. 일본 방문 이후 대폭적으로 보좌시스템을 개편한다는 이야기가 흘러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이 총재 주변에 대한 관리 체계에 구멍이 있는 것으로 판단, 보완책을 강구키로 했다. 총재 주변 관리를 위한 전담체제를 가동시켜 여권의 공세에 즉각 맞설 수 있는 응급 대응 시스템을 갖추려는 것이다.

한 측근은 “이번 대선이 정책보다는 인물대결의 가능성이 크고 이 총재가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기 때문에 무수한 인신공격이 예상된다.” 면서 “시중에 떠도는 각종 루머들까지 모두 스크린, 대응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여권의 이 총재 주변에 대한 네거티브 공격을 방어하는 대 네거티브 전략팀의 조기구성도 포함된다.

최성욱 정치부기자

입력시간 2002/03/12 18:18


최성욱 정치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