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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오른 정치권] 인터뷰/ 한나라당 기획위원장 윤여준 의원

안개정국, 昌의 조타수로 전면에…

“저는 언론이 그렇게까지 주목할 만한 주요 인사가 아닌데… 아마 과장된 소문이 돌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민망하고 과분합니다."

이회창 총재의 핵심 브레인인 윤여준(63) 의원이 6일 한나라당 기획위원장으로 전격 발탁돼, 향후 역할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윤 의원은 2000년 4ㆍ13 총선을 앞두고 김윤환, 이기택 등 야권 중진 의원들의 낙천과 관련된 ‘물갈이 공천 파동’의 주역으로 지목돼 선거전 당직(선거대책위원회 종합조정실장)에서 물러났던 인물.

그러나 지난 2년여간 이회창 총재를 지근 거리에서 물밑 보좌하며 막후에서 이 총재의 ‘책사’ 역할을 톡톡히 해 왔다. 당시 공천 파동에도 불구하고 윤 의원은 이 총재의 배려로 총선 직후 한나라당 비례대표 순서 11번을 배정 받아 금배지를 달았다.


昌 핵심브레인, 막투에서 최전선으로

이번 기획위원장 선임도 이 총재가 본인에게 사전 통보 없이 먼저 임명을 대외에 발표한 뒤 본인에게 추후 기용 사실을 알렸을 만큼 윤위원장은 이 총재의 핫라인의 앞쪽에 포진해 있다.

한나라당 안팎에서는 윤 위원장의 당내 복귀가 6월 지방선거와 12월 대선을 앞두고 이 총재가 본격적인 친정 체제를 구축하려는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특히 ‘박근혜 변수’로 촉발된 정계 개편의 소용돌이 상황에서 당내 주류를 재정비하고, 동요할 가능성이 있는 비주류를 다잡는 핵심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총재의 의중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고 있는 윤 위원장 역시 혼미 정국에서 ‘컨트롤 타워’로서의 역할을 할 만반의 각오를 보이고 있다. 이제 막후에서 뛰쳐나와 전장터의 최전선에서 참모장 역할을 기꺼이 수행하겠다는 자세다.

“이 총재와 연을 맺은 것은 올해로 만 4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짧은 기간에 비해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굵고 깊은 것은 사실입니다. 이 총재를 보필하기 시작한 때는 대선에서 패한 직후인 1998년 4월 초입니다.

그 때부터 이 총재는 그야말로 사선을 넘나 들었습니다. ‘세풍’, ‘총풍’ 등 서슬 퍼런 현 정권의 ‘이회창 죽이기’ 압박이 최절정에 달했던 때입니다. 당내에는 이 총재를 보좌할만한 사람이 없어 급한 대로 제가 나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정권의 무차별 집중 포화 속에서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느냐’ 하는 생존 전략을 짜느라 매일 밤늦게까지 머리를 맞대며 고민 했습니다. 정치적인 생사가 걸린 극한 상황에서 고락을 같이하면서 서로 인간적인 신뢰를 쌓은 것이지요.

아마 저와 마찬가지로 이 총재께서도 저를 가장 편하게 생각하실 겁니다. 총재께서 전격적으로 저를 전면으로 끌어 올린 데는 급변하는 현 정세에서 역할을 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


“파워게임에 날 끼워넣지 말아라”

하지만 이 총재와의 각별한 관계가 윤 위원장에게는 적잖은 부담이 되기도 한다. 이번 기획위원장 복귀에 대해서도 당 내부 여기저기에서 우려 섞인 이야기들이 터져 나왔다.

그간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ㆍ보선, 그리고 대선을 앞두고 이 총재에게 충성 경쟁을 벌이던 일부 인사들이 최측근인 윤 위원장의 등장을 새로운 변수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 위원장은 이런 주변의 우려를 단호히 부인한다. 자신의 당 업무 복귀를 공천이나 파워 게임과 연결 시키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2년 전 4ㆍ13 공천 파문은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저는 당시 총선기획단장으로 정직하고 공평하게 처리했다고 자부합니다. 하지만 저에게 주어진 음해와 인신공격은 너무도 가혹했습니다.

특히 ‘공천 과정에서 돈을 먹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한동안 울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저는 당시 공천 전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관련 자료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그것을 공개할 시기는 아닙니다.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것입니다. 또한 당내 비주류 중 일부에서 저의 당 복귀를 백안시 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정치적 야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 점이 제가 당당하게 당무를 처리할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윤 위원장은 주변에서 자신을 이 총재의 ‘책사’로 여기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제 국내 정치가 술수와 책략이 통하지 않을 만큼은 성숙해 있다는 것이다. 정당의 운영이 핵심 권력자 주변의 책사나 사조직에 의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지금은 책사가 필요한 시기가 아닙니다. 책사는 정치가 절대 권력자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때나 필요한 것입니다. 지금은 유권자가 정치의 주체인 시대입니다. 과거처럼 당권이나 정권을 쟁취하려고, 또는 정치적 위기를 얕은 책략이나 술수를 부려 한 순간에 반전시키려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이제 정치인들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모두 원칙에 입각한 정도 정치를 해야 합니다. 현 정권에서도 봤듯 눈 가리고 아옹 식의 책략은 더 큰 화를 가져 올 뿐입니다.”


“탈당사태, 당도 냉철한 자기반성 해야”

최근 박근혜 의원의 탈당 등 한나라당 내부의 동요에 대해 윤 위원장은 “이 총재 뿐 아니라 한나라당 입장에서도 큰 정치적 자신을 잃어버린 아쉬운 일”이라며 “이 일을 계기로 야당도 스스로를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고 일침을 놓았다.

윤 위원장은 “사실 박 부총재 문제는 이 총재가 매우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는 일입니다. 박 부총재도 그런 결심을 한데는 나름대로 고뇌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영향력을 가진 동지가 둥지를 떠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내부에도 문제가 없지 않다는 반증입니다. 냉정한 자체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털어 놓았다.

윤 위원장은 이 총재에 대한 인간적인 존경과 신뢰의 말도 빼놓지 않았다. 그간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면서 느낀 이 총재의 올곧은 신념과 불굴의 의지에 윤 위원장 스스로가 감동을 느꼈다고 털어 놓았다. 윤 위원장은 특히 절체 절명의 상황에서도 품격을 잃지 않으려는 이 총재의 여유와 기백이 자신을 더욱 채찍질하게 됐다고 말했다.

“세풍과 총풍이 불어 닥쳤던 1998년 저는 이 총재와 식탁 위에서 마주 앉아 ‘사느냐 죽느냐’를 놓고 밤늦게까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습니다. 당시 DJ 정부의 공격에 저항하는 내용을 담은 기자회견 초안은 제가 짜서 이 총재에게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 총재는 ‘한국 정치가 살벌한 것은 정치인들의 말 때문이니 발표 내용을 좀 더 품격 있게 하자’며 초안에 있는 ‘김대중 정권’이라는 말을 처음과 끝에 한 번씩 만 쓰고 중간에는 ‘이 정권’ 또는 ‘현 정부’로 바꾸자고 했습니다.

정치적 목숨이 백척간두에 걸려 있는 상황에서 이런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이회창 이라는 분의 실체를 본 것이지요. 그 때 인상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윤 위원장은 인터뷰를 마치면서 대선 승리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밝혔다. “힘든 싸움이지만 이 총재의 승리를 확신합니다. 현 정권의 어떤 시도도 국민의 선택을 막지는 못할 것입니다.”


◎ 윤여준 위원장 프로필

생년월일: 1939년 10월 17일 학력:경기고 중퇴 단국대 정치학과 본적: 충남 논산 경력: 동아일보(1966년)ㆍ경향신문(1969년) 기자, 대통령 공보비서관(1984년), 정부1장관실 보좌관(1990년), 국가안전기획부장 특별보좌관(1992년), 대통령공보수석비서관(1994년), 환경부장관(1997년), 한나라당 총재 정무특보(1998년), 여의도연구소장(1996년), 16대 국회의원(2000년).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herosong@hk.co.kr

입력시간 2002/03/12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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