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학점' 향해 가는 F-X사업

압력설·비밀문건 유출설 등 잡음, 기종선정 앞두고 '극도의 혼란'

차세대전투기(F-X) 사업이 기종선정을 불과 3주를 앞두고 극도로 흔들리고 있다.

참여 업체와 국가들이 막판 총력전을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기종선정 평가기준 변경 논란과 압력설, 비밀문건 유출에 이어 압력설을 제기한 공군 대령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공군 대령이 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가 입증될 경우 가계약서 상 국방부가 해당업체를 탈락시킬 수 있어 ‘대파란’이 발생할 가능성마저 점쳐지고 있다.

F-X 사업은 지난해 말 국방부가 공청회에서 ‘평가기준’을 발표할 때부터 ‘문제’가 잠복해 있었다.

당시 기종간 점수가 3% 이내면 시행하는 2단계 평가가 ‘한미 동맹관계’ 등 정책적 고려에 따른다고 설명, 언론에서는 “미국 보잉사의 F-15K를 위한 평가방법”이라고 비판했으며, 국방부는 ‘한미 동맹관계’는 잘못된 표현이었다고 해명했다.

수면아래로 가라앉아 있던 평가방법의 문제는 결국 이 달 초 불거졌다. 지난 2월 15일 국방부가 1단계 평가를 맡고 있는 한국국방연구원(KIDA), 국방과학연구소(ADD), 국방조달본부 등에 “최하위 요소별로 정하는 60~100점 사이에서 정량적으로 평가할 것”을 요구하는 공문을 발송한 사실이 언론에 알려졌던 것이다.

해당 업체와 군 안팎에서는 ‘이전되지 않거나 효용 가치가 입증되지 않는 핵심기술에도 0점이 아닌 최하 60점을 줘야 하느냐’며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기종별 점수차이 줄이기 의혹

국방부가 점수 폭을 줄인 것은 각 기종별 점수차이를 줄여 결국 2단계 평가로 이끌기 위한 의도적인 ‘계산’이 담겨있다는 게 문제제기의 핵심.

2단계 평가가 시행되면 1단계 평가에서 나타난 점수는 무시되고, 상호운용성과 외교관계 등 정책적 고려에 따라 기종을 선정하게 돼 있어 한국과 혈맹관계인 미국 보잉사가 유리해진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물론 국방부는 이에 대해 “평가기관 별로 동일한 평가잣대를 적용하기 위해 60~100점의 기준을 적용하도록 공문을 발송했을 뿐이며, 이는 KIDA가 지난해 말 평가요소로 결정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리고 “4개 기종 모두 공군의 시험평가에서 요구성능(ROC)을 만족해 세부적인 평가에서 최소 0점으로 처리하기는 무리이며 한국형 전투기(KFP) 사업에서도 60~100점의 배점기준을 적용했다”고 덧붙였다.

평가기준 논란이 가라앉기도 전에 ‘압력설’과 ‘비밀문건 유출사건’까지 터지면서 F-X사업은 더욱 혼선을 빚기 시작했다.

공군시험평가단의 간부였던 조모(49.공사 23기) 대령이 지난 3월3일 언론에 “국방부에서 전화 등을 통해 (특정 기종선정을) 강요하고 있다. F-15가 아니면 사업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국방부가 갖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군 고위층의 ‘특정기종 선정 강요’를 주장했다.

또 모 일간지는 3급 비밀인 ‘공군평가보고서’를 입수, 보도함으로써 사태는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국방부는 이에 대해 즉각 수사에 착수, 조 대령을 체포해 군사상 기밀누설 및 형법의 뇌물수수혐의로 3월9일 구속했다.

조 대령의 구속은 단순히 ‘구속’만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데 사안의 심각성이 있다. 공군 검찰부는 이날 조 대령을 구속하면서 그가 지난해 3월 초 F-X사업에 참여한 외국업체의 한국대행사 C사의 관계자와 접촉, 사업 진행상황과 관련해 ‘조언’을 해주고 1,100만원을 받은 혐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지난 3월5일 ‘F-X 획득추진 정책추진회의(공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군사2급 업무보고(시험평가단)’ 등의 비문을 허가 없이 보관한 혐의도 받고 있다.

그는 공군시험평가단 간부로서 지난 2000년 8∼12월 F-15K(미 보잉) 라팔(프랑스 다소) 유러파이터(유럽컨소시엄) 수호이-35(러시아 로소보론엑스포트) 등 참가 4개 기종을 상대로 한 국외시험평가 작업에 참가한 바 있어 공군에서는 뜻밖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공군간부 구속, 핵폭풍급 파장 오나?

군 안팎에선 공군 검찰부의 수사 결과, 조 대령이 만약 업체로부터 돈을 받고 ‘압력설’을 제기했다면 F-X사업은 ‘뜻밖의’ 방향으로 튈 가능성이 높아진다.

국방부 조달본부가 지난 2월19일 4개 업체와 교환한 가계약서에는 ‘불법로비로 확인되면 구매자는 계약의 전부나 일부를 취소할 권리가 있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어 국방부가 해당업체의 탈락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가계약서의 ‘F-X프로젝트 반(反) 뇌물수수 조항’에는 각 업체의 어떤 개인이나 간부, 에이전트 또는 그 업체를 위해서 일하는 어떤 사람도 F-X 사업과 관련된 어떤 사람에게도 불법적인 목적으로 대한민국법에 금지된 ‘어떠한 지불’(any payment)도 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어떤 뇌물’(any bribery)도 제공하지 않을 것임을 약속한다”고 명기돼 있다.

따라서 해당업체가 뇌물 제공혐의로 탈락될 경우 이는 외교적 문제로 비화할 소지도 안고 있다. 미국과 프랑스 등 각국 정부는 자국 업체를 지원하기 위해 총력을 동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은 지난해 11월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국방장관회담에서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직접 나섰듯이 정부 및 의회 관계자들이 직간접적으로 한국 정부에 ‘협조’를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프랑스 정부도 국방장관 특사를 한국에 파견,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친서를 김대중 대통령에게 전달하고, 김동신 국방장관에게 공정한 평가를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다 수사과정에서 조 대령이 제기한 ‘압력설’이 사실로 드러나면 이는 ‘핵폭탄급’의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군 안팎에서는 조 대령을 수사중인 국군기무사와 공군 검찰부가 수사중인 조 대령의 군 기밀 누설과 뇌물수수혐의와는 별도로 평가기관에 대한 압력설의 진위를 반드시 가려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뇌물수수, 압력설 물타기일 가능성도

일부에서는 국방부가 수사의 초점을 조 대령의 뇌물수수 쪽으로 몰고 가 압력설에 물타기를 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조 대령이 구속되자 곧바로 국방부와 언론의 인터넷 여론마당에는 이 같은 주장을 담은 글들이 게재되고 있다.

국방부도 이 같은 여론을 상당히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를 보이고 있다. 국방부의 한 고위 관계자도 “압력설을 반드시 수사한다. 하지만 없었던 것으로 결론 나면 국민들이 이를 믿지 않는 여론도 있을 것으로 보여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라고 털어놓았다.

지난해 6차례나 연기되고 당초 계획보다 10억 달러 가량의 예산을 추가 투입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F-X사업이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거쳐 국익을 위한 결정이 내려질 지 주목된다.

권혁범 사회부 기자

입력시간 2002/03/13 11:18


권혁범 사회부 hbkw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