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단금질 끝낸 박찬호·김병현, 본격출전 "이상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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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국 애리조나주와 플로리다주는 메이저리그 열기로 가득하다. 겨울 내내 이 곳에서 전지훈련을 실시했던 메이저리그 각 구단이 4월 1일부터 주 곳곳에서 시범경기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시범경기는 각 구단과 선수들이 스프링캠프에서 갈고 닦았던 실력을 만천하에 선보이고 시즌에 앞서 훈련을 마무리하는 자리. 따라서 시범경기라고 해도 실전이나 다름없을 만큼 뜨겁다.

지난해 말 LA 다저스에서 텍사스 레인저스로 유니폼을 바꿔 입은 박찬호(29)도 남다른 각오로 시범경기에 임하고 있다. 텍사스 에이스로서 입지를 굳히기 위해서는 시범경기부터 ‘믿음’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월드시리즈에서 두 차례나 9회 말 2사후 홈런을 맞는 악몽을 겪었던 김병현(23ㆍ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도 마찬가지다. 시범 경기를 통해 홈런의 악몽에서 벗어났음을 입증해야 한다.


텍사스 마운드 구심점으로 우뚝

지난달 16일부터 플로리다 포트샬럿에 마련된 스프링캠프에서 구슬땀을 흘려온 박찬호는 3일 신시내티 레즈와의 첫 시범경기에서 3이닝 동안 안타 3개와 2점을 내주며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8일 열린 두 번째 시범경기에서는 신시내티 간판타자 켄 그리피 주니어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등 4이닝 동안 삼진 6개를 뽑으며 팀 간판투수로서 위력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텍사스가 3월 한달간 가질 시범경기는 모두 32차례. 박찬호는 이 가운데 6~7 경기 정도 등판할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50개 안팎의 투구 수에 머무르고 있지만, 점차 늘려나가 시범경기 막바지에는 80개 이상까지 끌어올려 4월 2일 열리는 오클랜드와의 원정 시즌 개막전에 대비한다는 계획이다.

물론 시범경기서 체력을 담금질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뜻하지 않은 부상을 당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박찬호가 새롭게 몸을 담은 텍사스 레인저스는 지난 시즌 아메리칸 리그 홈런왕에 올랐던 알렉스 로드리게스 등 막강한 화력을 지니고도 마운드 난조로 메이저리그 30여개 팀 가운데 최하위를 맴돌았던 팀.

따라서 5년간 총액 7,100만 달러라는 거액을 쏟아 부으며 에이스급 투수 박찬호를 영입한 것도 마운드의 구심점을 마련하기 위한 구단의 ‘용단’이었다.

텍사스에서 박찬호에게 바라는 것은 올 시즌 동안 35차례 정도 선발로 등판, 20승 이상을 올리는 에이스 투수로서 말 그대로의 기둥 역할.

텍사스 레인저스 톰 힉스 구단주가 거액을 투자해 선발요원으로 버바, 발데스, 이라부 등을 영입하는 등 무려 35명이나 되는 투수진을 구축한 것도 마운드가 든든해야만 승리가 가능하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박찬호는 올 시즌 텍사스 투수진 35명의 구심점으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


강속구 부활로 20승 사냥

텍사스 에이스로서 우뚝 서기 위해 박찬호는 스프링 캠프 동안 엄청난 변신을 시도했다. 우선 투구 자세의 변화를 준비해왔다. 메이저리그에서 평균 15승을 거둔 에이스급 투수가 갑자기 투구 자세를 바꾸는 것은 상당한 모험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텍사스 투수 코치 오스카 아코스타는 박찬호의 투구 자세를 면밀하게 관철한 후 교정을 권유했고 박찬호도 선뜻 동의했다.

새롭게 바뀐 투구 자세는 셋 포지션에서 투수 판과 평행하게 디디고 있던 오른발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힘있게 틀면서 릴리스 동작에 들어가는 것과 오른 손 높이를 오른 어깨와 머리가 이루는 각도의 절반인 45도 정도를 유지하면서 머리보다 약간 높은 곳에 위치하는 것이다.

또 체인지업을 구사할 때 과거에는 손이 오른 어깨에서 왼쪽 어깨를 지나서 빠졌는데 이제는 수직으로 떨어뜨리도록 바뀌었다.

투구 자세 변화와 더불어 박찬호가 새롭게 시도하고 있는 것은 강속구의 부활이다. 상ㆍ하위 타선 구분 없이 장타를 자랑하는 아메리칸 리그의 타자들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 “장타자들과의 맞대결에서 정면승부를 피하고 유인구 위주로 피해가기를 할 경우 결국에는 투구 수 증가로 체력소모만 부를 뿐”이라는 것이 아코스타 코치의 조언이었다.

사실 박찬호는 빅 리그 데뷔 시절부터 시속 155㎞가 넘는 강속구를 주무기로 하는 파워 투수였으나 다저스에서 슬러브와 커브를 자주 구사하면서 지난해에는 한 경기 당 150㎞을 넘는 공이 10개가 채 안될 정도로 구속이 떨어졌다.

하지만 8일 신시내티 레즈와의 시범경기에서 박찬호는 왼쪽 타자들을 상대로 과감하게 몸쪽 직구 승부를 펼치는 등 올 시즌 달라진 모습을 예고했다.


김병현, 악몽 떨치고 거듭나야

김병현은 지난 달 애리조나 투산에 차려진 스프링캠프에서 훈련을 시작하며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올 시즌에는 더 이상 홈런을 맞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지난해 뉴욕 양키스와의 월드 시리즈 4, 5차전 9회 말 2사에서 티노 마르티네스와 스콧 브로셔스에게 통한의 홈런을 맞은 것을 떨쳐버리겠다는 각오를 피력한 것이었다. 하지만 홈런의 악몽에서 실제로 벗어날 수 있을지 여부는 아직도 미지수로 보인다.

8일 애리조나 투산에서 열린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3번째 시범경기에 7회초 중간계투요원으로 등판한 김병현은 좌타자 코디 매케이에게 우중간 담장을 넘어가는 135m짜리 대형 홈런을 허용했다. 월드 시리즈 홈런 이후 126일 만에 다시 홈런을 두들겨 맞은 김병현은 “카운트를 잡으려고 무심코 던진 슬라이더가 홈런이 됐다”면서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대부분의 메이저리그 전문가들은 시즌 초반 김병현의 재기 여부가 판가름 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사실 팀을 패배의 수렁으로 몰아넣은 월드 시리즈 홈런은 신예투수가 감당하기에는 끔찍한 기억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김병현이 시즌 초반 1~2차례 홈런을 허용할 경우 자칫 쉽게 빠져 나오기 힘든 슬럼프가 찾아올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홈런 악몽을 극복하기 위해 김병현이 선택한 무기는 집중력 강화와 체인지업 구사다. 특히 김병현은 올 초부터 서클 체인지업 연마에 매달려왔다.

일명 OK볼로 불리는 서클 체인지업은 타자 앞에서 힘없이 뚝 떨어지는 마구로 최근 메이저리그 투수들이 앞 다퉈 구사하고 있다. 특히 왼손타자에 약한 잠수함 투수로서는 타자 몸쪽에서 가라앉는 체인지업이야 말로 생존무기나 다름없다.

박천호 체육부 기자

입력시간 2002/03/13 18:57


박천호 체육부 tot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