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카페(98)] 몸속의 치료자 ‘실리콘 칩’

과거 미국 정보국에서 특수공작원의 머리에 전자장치를 이식해서 행동과 정신을 통제했다는 사실이 세간에 회자된 적이 있다. 그 실제 진의는 알 수 없으나, 사실인 것처럼 회자되어 적지 않은 충격을 준 적이 있다.

또한 공상과학영화에서 인체와 결합된 전자장치나 체내 이식 칩에 관한 이야기는 이제 식상할 정도로 흔한 이야기다. 작년에는 실제로 세계 최초의 사이보그인 캐빈워릭 교수가 한국에서 로봇강연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기계를 생체 이식하는 일이 실용화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잠재적인 위험성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칩의 생체이식을 활용할 다양한 방안이 모색되고 있어 본격적인 실용화의 문이 열리는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최근 미국의 한 가족이 획기적인 시도를 했다. 가족의 건강을 지키고 또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피부 밑에 실리콘칩을 이식한 것이다.

이 가정의 가장인 아버지 제프는 암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로 지금 10가지의 치료를 받고 있다. 그가 병원에 입원한 상태가 아니므로, 그의 아내와 가족은 늘 불안해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가 없고 환자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특수한 칩을 아버지에게 이식하기로 한 것이다. 이 칩 속에는 건강에 관한 정보(환자의 이름, 연락처, 진료기록 등)가 안전하고 자세하게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환자의 증세가 심해져서 말을 할 수 없을 때 그의 입을 대신해서 의사에게 정보를 제공해 준다. 피부 밑에 이식한 이 칩은 쌀알정도의 크기다.

다만 칩의 정보를 읽기 위해서는 병원이나 치료기관에 스캐너가 있어야 한다는 불편이 아직은 남아있다. 이 아이디어는 12살난 아들 데렉의 아이디어로, 데렉은 컴퓨터광이며 마이크로소프트 시스템 기술자 자격을 받은 최연소자라고 한다.

제작은 플로리다의 어플라이드 디지털 솔루션(Applied Digital Solutions)이라는 회사의 캐이트 볼턴 박사팀이 담당했고, 베리칩(VeriChip)이라고 부른다. 환자의 몸에 이식해야 하기 때문에 까다로운 미 식약청의 허가를 받아내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이제 가족들은 다소 편안한 마음으로 쇼핑이나 외식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 칩이 막강한 생명구조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셈이다.

그 외에도 다양한 시도는 잇따르고 있다. 영국의 레스터 대학은 환경오염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서 세계 최소형(손톱크기) 실리콘 전자코를 개발했다. 코 속에 이식하는 이 전자칩은 화학물질을 감지할 수 있는 향센서와 코 신경에 신호를 보내는 시그널 장치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자동차 매연이나 공장의 연기가 코로 들어오면 재채기를 하게 만들어 오염물질이 몸 속에 들어오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노인병의 대표격인 파킨슨씨병 환자를 위해서도 칩의 이식이 시도되고 있다. 뇌에 칩을 이식해서 환자의 증상을 가중시키는 뇌의 나쁜 신호를 차단함으로써 환자의 몸 떨림이나 균형감각의 상실을 줄이기 위한 목적이다.

현재 3년간 실험한 결과, 적게는 13% 높게는 23%의 증상 완화효과를 얻었다고 한다. 독한 화학적 치료제를 쓰지 않고도 이정도의 효과를 보이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그 잠재적인 활용도에 거는 기대가 크다.

심지어 몇 년전부터 MIT공대는 약을 품고 환자의 몸 속에 들어가서 환자의 필요에 따라 필요한 약을 내보내는 소형 실리콘칩을 개발하고 있다. 몸 속에 살아서 환자를 치료하고 보호하는 실리콘 칩의 다양한 역할은, 이제 점차 화학적 치료제를 대체할 미래의 치료약으로 그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입력시간 2002/03/13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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