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의 경제서평] '변화의 축'은 무엇인가

■ 마켓쇼크
(토드 부크홀츠 지음/이기문 옮김/바다출판사 펴냄)

1994년에 번역 출간된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New Ideas From Dead Economics)’라는 책이 있다.

‘현대 경제사상의 이해를 위한 입문서’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경제학도는 물론이고 일반인들의 사랑을 줄곧 받고 있다. 부제 그대로 경제사상을 이해하는데 좋은 길잡이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을 우선 읽어보라고 추천하는 경제학 교수들이 적지 않다.

이 책은 스미스 맬서스 리카도 밀 마르크스 마셜 베블렌 케인즈 프리드먼 등 ‘세계를 움직인’ 경제학자들의 이론과 생애를 설명하고 있다. 아주 평이한 문장과 위트와 재치가 넘치는 서술, 깊이 있는 내용 등으로 ‘딱딱하고 음침’하다는 경제학의 선입견을 일시에 불식시킨다.

미국에서 경제학과 법학을 공부한 역자 이승환씨의 번역 또한 물 흐르듯 해 읽는 맛을 더한다.

저자 토드 부크홀츠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경제학을, 하버드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하버드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면서 최우수 강의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책이 나왔던 당시에는 백악관 경제담당 비서관이었다.

토드 부크홀츠의 또 다른 책이 번역돼 나왔다. 이번에는 워싱턴에 있는 ‘빅토리아 캐피털’의 대표이자 조지 W 부시 미국 정부의 ‘하이테크 신경제의 메가 트랜드’ 자문으로서 책을 썼다. 이론을 실전에 적용한 셈이다.

이 책은 글로벌 시장을 움직일 9가지 트랜드에 대한 설명이다. 무엇이 앞으로 세계 시장의 변혁을 가져올 것이며, 이에 맞춰 투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고 요즘 유행하는 단순하고 가벼운 ‘투자 지침서’는 결코 아니다. 세계시장 흐름의 본질을 논(論)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9년에 출판되어 ‘빛의 속도로 변하는 세상’을 못 따라 간다는 지적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는 단지 기우에 불과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저자가 말하는 9가지 트랜드는 정보통신과 생명공학, 고령화 사회, 일본, 중국, 유럽연합, 뮤추얼 펀드, 다민족 다문화 사회, 범죄와의 전쟁, 지구 온난화 등이다. 이것들을 보면 알 수 있듯, 저자는 미시적 경제지표보다는 거시적인 요소들, 즉 정치적 역학관계나 기술 진보, 인구 통계학적 자료들을 더 중시한다.

“정치적이고 기술적이며 인구 통계학적인 변화의 물결에 내던져진 채로 멍청하게 주저앉을 것인가, 아니면 그러한 물결을 타려고 시도할 것인가” 그러면서 저자는 “위험할 수도 있는 우량주 제일주의에서 하차해 신뢰할 수 없는 금융시장에서 자신들을 돌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기 위해 책을 썼다”고 밝혔다.

저자가 예상하는 미래는 비관적이다. 10년 내에 세계경제는 극심한 불황을 겪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암울한 회색 빛에 가깝다.

그가 미래시장의 가장 큰 변수로 꼽는 인구 노령화(우리는 역사상 최초로 아이들보다 노인이 많아지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는 정부의 재정을 파산으로 이끌 것이며, 정치적 야합의 소산인 유럽연합은 해체되고, 소비자가 중간 상인을 잘라버리는 ‘가위 경제’ 시대에 뮤추얼 펀드는 붕괴한다.

성인 범죄는 계속 감소하는 반면 10대 범죄율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10대 인구의 급속한 증가로 범죄율은 더욱 올라간다. 기대를 모았던 정보통신과 생명공학은 대부분 거품으로 끝나고, 일본의 노령화는 전 세계 은행에서 막대한 예금을 인출해 공황을 더욱 부축일 가능성이 있다.

시장경제와 민족주의를 결합한 주룽지 중국 총리(로렌스 서머스가 미국 재무부 차관 시절 그와 회담을 하고는 그의 아이큐가 200 정도는 될 것이라고 말했단다)의 정책(주노믹스)은 자유경제에 따르는 체제 붕괴를 막을 수 없고, 미국의 인종 갈등은 더욱 심화돼 유혈 충돌까지 부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자들은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중국의 예를 들어보면 화장품과 식품 산업이다. 소득 수준 향상에 따라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에이번 화장품이 가장 많은 돈을 번 것은 직접 판매를 앞세워 중국 광둥성에 들어갔을 때라는 것이다.

하지만 투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투자방식에 나름대로 통찰력을 갖도록 노력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주식시장에 완전히 얽매어 살지 말고 인간적인 생활을 영위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으른 손은 악마의 작업장이 될 수 있지만, 너무 바쁘고 좀이 쑤시는 손은 파산이라는 법정으로 인도하기도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여유 있는 태도가 결국 성공적인 투자에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이상호

입력시간 2002/03/13 19:36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