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독립 가능할까] 미국 FRB의 사례로 본 한은의 개선방향

“미국의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의 선진 노하우를 배우려면 재정경제부 장관과 한국은행 총재는 매주 정례오찬 회동을 가져라.”

1936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재임시 메리너 애클즈 FRB 의장은 경기가 과열되자 금리인상 방안에 대해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었다. 모겐소 재무부 장관은 당시 금리가 인상되면 정부의 재정증권 이자부담이 늘어난다는 점을 들어 FRB의 방침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FRB는 7월 금리를 인상하는 대신 이와 동일한 긴축효과를 거둘 수 있는 지급준비율을 대폭 인상했다. 지급준비율 정책이란 은행이 받은 예금 중 중앙은행에 예금하도록 돼 있는 지급준비금의 비율을 조절하는 것이다.

애클즈 의장은 또 몇 개월 후 지급준비율의 추가인상을 단행했다. FRB의 기습적인 지준율 인상에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던 재무부의 입장으로선 모겐소 장관이 직접 FRB의 정책의도를 사전에 파악하기위해 애클즈 의장에게 매주 정례오찬을 제안하기에 이른다.

이때부터 미국의 재무장관과 FRB의장의 정례 오찬 회동은 전통으로 확립돼 지금까지 이뤄지고 있다.


FRB와 한은의 차이점은

FRB는 정책 및 조직 운영에 있어 법적으로 의회의 감시(oversight)를 받도록 돼있으나 대통령과 재무부 등 행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행정기구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 같은 성격을 지닌 기구는 방송위원회 정도다.

따라서 FRB와 한은에게 동시에 해당되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이란 현실적으로 출발점부터가 다르다. FRB가 의회의 감시를 받게 돼있는 것은 헌법에 화폐발행권이 의회에 부여돼 있고, 의회가 연방준비법에 의해 이 권한을 FRB에 위임하는 법적 체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회는 FRB의 정책과 조직운영에는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 다만 FRB의장은 연 2회 의회에 출석, 통화정책 및 경제상황을 보고하며 예산보고서만을 제출하면 된다.

또 의회는 FRB의 인사와 예산 및 조직운영에 대해 개입하지 않는다. 의회는 또 FRB가 결정한 정책을 번복할 수 있는 권한도 없다. 이에 비해 재경부는 한은의 예산 승인권과 금통위의 의결사항에 대한 재의 요구권을 행사하는 등 한은의 정책과 조직운영에 개입할 수 있다.

FRB의 정책 권한은 통화정책 뿐 아니라 가맹은행에 대한 금융감독과 지급결제제도 운영 등 통화ㆍ금융 전반에 걸쳐있다. FRB 의장은 금융기관 보고서 양식 및 감독방식의 표준화 작업과 감독 기관간 업무협조 등을 통해 금융감독기관의 협의체(FFIEC) 의장을 담당하도록 돼 있다.


노 코멘트로 일관하는 신뢰도

미 행정부는 FRB의 통화정책에 대해 공개적인 평가나 언급을 자제(노 코멘트)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FRB에 대한 시장의 신뢰도는 그 만큼 확고부동하기 때문이다. 빌 클린턴 정부 당시 FRB가 금리를 수 차례 인상했지만 재무부 장관과 대통령 경제자문회의 의장은 공동명의로 “행정부는 FRB의 독립성을 존중하며 FRB가 취하는 조치를 승인하거나 비판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발표할 정도였다.

FRB에 대한 높은 신뢰도 배경에는 물가안정을 위한 남다른 성과가 뒤따라왔기 때문이다. FRB는 제2차 석유파동이후 기업과 노동계의 비난을 무릅쓰고 고금리 정책을 통해 총수요를 억제하여 물가를 안정시키는데 성공했다.

또 80년대 말부터 FRB는 선제(先制)적 통화정책을 통해 물가안정과 경기호황을 이끌어내고 수 차례의 금융불안을 성공적으로 수습했다.

이승일 한은 부총재보는 “FRB는 법제뿐 아니라 금융ㆍ경제 환경에 있어 통화정책을 제약하는 요소가 우리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것도 FRB의 독립성을 유지하는데 있어 큰 장점”이라며 “한은의 통화정책 운용체계를 하루 빨리 시장 친화적으로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장학만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2/03/20 11:45


장학만 주간한국부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