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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독립 가능할까] 'No'!라고 외친 역대 총재들

한은법 개정을 둘러싼 52년 한은의 독립운동 발자취

한국은행의 52년 역사는 정부 당국의 끊임없는 한국은행법 개정 시도와 ‘중앙은행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한은인의 끈질긴 저항정신의 대결로 점철되어 왔다.

특히 한은 총재가 누구 인가에 따라 한은의 위상에도 큰 차이를 보였다. 정부의 간섭에 과감히 ‘노(No)!’라고 외친 역대총재들의 사직파문은 곧 한은 독립의 정신으로 부활됐다.

1948년 3월 블룸필드 박사가 원안을 작성한 한은법은 재무부 재정금융위원회의 수정을 거쳐 국회에서 제정됐다. 당시 한은법은 다양성과 전문성을 중시하는 법제로 영ㆍ미 각국의 발달한 공법 또는 행정위원회 제도와 유사했다. 한은의 체계도 행정위원회 형태로 직무상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인정됐다.

그러나 1952년 11월 재무부는 ‘금융통화에 관한 사무일체를 재무부가 관장한다’고 규정한 정부조직법(제18조)을 들어 “한은에 대한 권한 역시 재무부에 귀속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벌어졌다.

당시 법무부는 한은법 제109조에 따라 “한은에 이양된 사항은 정부조직법에 규정한 재무부장관의 권한에서 삭제된다”는 유권해석으로 한은 독립의 초석을 다지게 됐다.

한국전 이후 이승만 자유당 정부는 국내저축을 통한 자본동원 보단 중앙은행의 신용창출에 의한 투자재원 확보 필요성을 역설하며 한은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논리보다 정치권의 특권적 욕구라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1956년 11월 인태식 재무부장관은 “한은법을 재무부의 지시·감독을 받도록 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김유택 2대 한은 총재는 기자회견을 통해 한은법의 입법정신에 따른 중앙은행의 독립성 보장을 요구하며 사표를 제출했다. 당시 사직파문은 한은법 개정을 보류시킬 만큼 큰 충격이었다. 이것이 한은법 개정을 둘러싼 정부와 한은 간의 첫 공방전이었다.


박 정권때 '재무부 남대문 출장소' 별명

박정희 군사정부가 들어서면서 한은법은 ‘수난의 대개악 시대’를 맞게 된다.

1961년 11월 재무부는 금융정책의 최종적 책임을 행정부로 귀속시키는 것과 한은 내부경영에 관한 재무부의 감독권을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한은법을 작성, 62년 3월 각의통과 후 5월24일자로 공포 시행했다.

유창순 6대 총재는 한은법 개정안이 한은법 제82조에 명시된 금통위 자문도 거치지 않고 불법적으로 통과된 것에 반대해 사직했다. 이때부터 한국은행은 소위 ‘재무부 남대문출장소’라는 불명예 시대를 맞게 된다.

1963년 재무부는 은행감독원마저 정부 고유의 행정권에 속한다는 명분아래 재무부 산하기관으로 분리하려는 개정 작업을 비밀리에 추진했다.

그러나 민병도 7대 총재와 금통위원 들은 이에 결사반대하며 재무부의 은감원 분리공작에 정면으로 맞섰다. 민 총재는 급기야 이 조치의 부당성을 언론에 공개한 후 사표를 던졌다. 재무부는 사직파문의 확대를 우려, 은감원 분리작업을 중단해야 했다.

재무부의 은행감독원 분리 시도는 이후에도 끈질기게 이어졌다. 1967년 한은에서 은감원을 분리하는 대신 명분상 조사부를 강화한다는 한은법 개정안을 비밀리에 추진했으나 실패로 끝났다.

또 장영자 거액어음부정사건을 빌미로 1983년 5월 은감원을 한은에서 분리, 금융감독원으로 개편하고 금감원, 증감원, 보험공사를 일원적으로 지시할 금융감독위원회를 신설하는 개정안을 금융산업발전심의회에 상정했다.

하영기 14대총재는 이에 대한 책임을 통감, 한은을 떠나는 또 한차례의 사직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금발심은 은감원 분리가 중앙은행의 기능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 결국 개정안은 철회됐다.

1987년 6.29선언을 계기로 군사문화의 잔재인 5공 헌법을 개정할 길이 트이게 된다. 한은 직원들은 당시 한은 독립성 보장을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며 한은 역사상 처음으로 헌법 기관화를 추진했다.

그 해 8월 국회는 중앙은행을 헌법 기관화 하는 한은법 개정 움직임이 일었다. 또 88년 대선과 89년 국회의원 선거에도 여야 각당이 모두 선거공약으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약속했다. 그러나 현행법을 고수하려는 금통위의 저항에 막혀 2년간의 한은법 개정 투쟁은 여운만 남긴 채 불발로 끝나 버린다.

1997년 1월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금융개혁위원회를 통해 한은을 기능별로 분리, 물가안정을 목적으로 하는 금통위와 은행신용제도의 건전성을 관장하는 금융감독위원회로 분리하는 개정안을 내놓았다.

이경식 20대 총재는 김인호 청와대 경제수석과 강경식 재경원장관과 만나 합의 안에 서명한다. 이경식 총재 퇴진 서명운동에 나선 한은 노조는 밀실야합으로 이뤄진 정부안에 강력 반발했지만 환란 직후인 12월29일 국회 본회의에서 한은법 개정안은 통과됐다.

장학만 주간한국부 기자 local@hk.co.kr

입력시간 2002/03/20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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