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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독립 가능할까] 인터뷰/ 정운찬 서울대 사회과학대 학장

"낙하산 인사보다는 1년짜리 총재가 차라리 낫다"

“한국은행 총재에 낙하산 인사가 올 바에는 차라리 1년 임기의 ‘징검다리’총재가 되는 것이 나라를 위해선 바람직하다.”


경제 전문가들이 뽑은 한은총재 1순위 후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한국은행 노동조합이 이 달 말로 임기가 끝나는 전철환 한은 총재의 후임으로 ‘가장 바람직한 인물’에 대한 경제 전문가 21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총재 1순위’(29명)로 뽑힌 정운찬(54) 서울대 사회과학대 학장은 11일 “한은의 독립ㆍ중립성을 쟁취하기 위해선 임기가 채워지든 말든 그만둘 강한 소신을 가진 사람이 총재가 돼야 한다”고 ‘총재 소신론’을 강조했다.

최근 폐교론 등 서울대가 여론의 비난 대상이 되자 ‘서울대 위기’를 앉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봉사의 마음으로 서울대 사회과학대 학장 자리를 맡은 정 교수는 이 같은 ‘소신론’ 등으로 과거 수 차례 한은 총재 하마평 때마다 이름이 거론됐었다.

정 교수는 전 한은 총재 취임 직전인 1998년 3월에도 청와대로부터 총재직을 맡아줄 것을 10여 차례 요청 받고도 고사했다.

그러나 그는 이번 총재직 인선 과정에선 높은 곳에서 ‘러브 콜’을 받지 않은 것을 오히려 홀가분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한은 독립과 개방경제 시대에서 한은 총재가 갖춰야 할 자질 등에 대해 정교수로부터 들어봤다.


- 이번 한은 총재 인선을 놓고 일부에선 정권 말기 낙하산 인사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데.

“한은 총재의 임기보장이 상징적으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위한 전제조건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이를 뒤집어 볼 필요도 있다. 한은 총재가 기관의 고유권한을 지키기 위해 투쟁을 하다 보면 임기를 마저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총재의 임기보장이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52년 한은 역사에 총재가 임기를 채우고 떠난 역대 총재들은 일을 잘해서 보단 정부 말을 잘 들었기 때문인 경우가 대다수다. 적합한 인물이 제대로 뽑혀 4년 임기를 마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 정권이 바뀌면 한은 총재도 바뀐다는 통설에 대한 견해는.

“최근 유력하게 거론되는 모씨 등은 1970,80년대 재벌의 앞잡이 노릇을 한 사람 들이다. 그런 경력을 가진 사람이 총재가 되면 오히려 1년 임기의 ‘징검다리’ 총재가 되는 편이 나을 것이다.”


- 중앙은행 총재로서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을 꼽는다면.

“중앙은행 총재의 역할은 개방 경제일수록 그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통화신용정책에 대한 전문지식은 물론이고 이젠 세계금융의 흐름을 꿰뚫는 국제적 감각이 뛰어난 인물이 총재감으로 적합하다.

선진 중앙은행 총재와 자유롭게 국제 금융 시장상황에 대해 논의할 수 있고 상호 정보교환을 할 정도가 돼야 한다. 개방경제 시대에선 총재 개인의 자질과 현실감각이 중요한 부분이다. 국제경험은 물론 비 경제적인 분야에까지 폭 넓은 지식과 교양을 갖춰야 외국 중앙은행 총재와 교류가 원활할 것이다.”


- 현행 한은 정관에 따르면 금융통화 위원회가 열리기 2일전에 회의사항을 서면으로 재경부 차관에 통지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는데.

“모르고 있었던 부분이다. 하지만 한 마디로 말도 안 되는 내용이다. 재경부가 금리문제 등 한은의 고유권한을 무시하고 언론에 이를 먼저 흘려 시장으로부터 신뢰성을 잃게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재경부는 회의내용을 알고만 있고 절대로 언급해서는 안 된다. 결국 제도가 바뀌어야만 한은 독립이 이뤄질 수 있다. 전철환 총재가 임기 중 보다 적극적으로 이를 바꾸기 위해 노력을 했어야 한다.”


- 한은 독립을 위해선 인사ㆍ예산권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부분이다. 기관이 인사권과 예산권을 갖지 못한 상황에서 감히 어떻게 소신을 갖고 독립ㆍ중립성을 수호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소신에 찬 인물이 총재가 되더라도 제도적인 장치가 뒷받침 못해준다면 영향력은 축소될 수 밖에 없다. 장기적이라도 이를 관철시켜야 한다.”


- 한은 총재 선임절차는 국무회의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는데 이에 대한 견해는.

“외국의 사례를 살펴보더라도 경제 전문가들로 구성된 추천위원회를 통해 철저한 검증을 거쳐 선별되고 있다. 현재로선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는 형식이 바람직하다.”


- 한은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앞으로 강화해야 할 부분을 꼽는다면.

“ 돈이 많이 풀려 인플레이션과 물가인상 압력이 우려된다는 시각이 팽배하다. 그러나 사실 개방경제에서 물가는 예전만큼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공급이 부족하면 다른 나라에서 사오면 된다.

당면한 현안은 금융의 미시적인 문제다. 가계부채 급증 등 신용질서가 안정적이지 못해 금융시장이 불안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선 한국은행의 금융 감독기능 복원이 시급하다. 부실한 금융기관 들에 대한 한은의 감독과 검사 기능을 회복시켜 줘야 한다.

금융기관은 물론 금융시장의 자료를 실시간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금융감독원과의 긴밀한 협조도 이뤄져야 한다.”


- 최근 청와대로부터 한은 총재직에 대한 러브 콜이 있었나.

“(한 바탕 웃으며)없었다. 최근 아마도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얘길 너무 많이 해서인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이번 정부에선 나 역시 한은 총재직을 맡고 싶은 생각이 없다.”

장학만 주간한국부 기자 local@hk.co.kr

입력시간 2002/03/20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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