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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탈북' 엑소더스 봇물 터진다

국제 NGO등과 연계한 탈북자 150여명 외국대사관 전입 준비설

이번 ‘북한 주민 25인의 탈북극’은 국내외 인권단체 등 국제 비정부기구(NGO)와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한 ‘기획 망명’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탈북 사건과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역대 최다의 탈북 규모나, 유례가 없는 신속한 신변 처리도 이런 ‘제3 세력’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이들의 탈북 과정은 잘 짜여진 한 편의 시나리오 같았다. 3월 14일 오전 9시45분 베이징 중심부 외교가인 싼리툰(三里屯)의 스페인 대사관 앞 도로.

관광객으로 위장하기 위해 관광버스를 동원한 탈북자 일행은 붉은색과 푸른색 모자를 쓴 채 대사관 주위를 배외하고 있다가 10시 1분전 젊은 두 청년이 북문쪽 중국 경비원을 붙잡는 것을 신호로 일제히 스페인 대사관 안으로 몰려 들었다.

대사관 진입에 성공하는 순간, 이를 지켜 보고 있던 일본 민간 단체인 ‘북조선 난민 구원 기금’ 관계자들은 탈북자들의 영문 성명을 일제히 배포, 이번 탈북극이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된 것임을 대외에 알렸다.

탈북자들과 국제 NGO단체들은 세계 유수 언론에 자신의 거사 사실을 미리 알리는 치밀함을 보였다. AP, CNN 등 외국 언론사들은 탈북자들이 대사관 진입을 시도하기 2시간 전부터 대사관 주위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CNN과 AP통신은 탈북자들의 대사관 진입 전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취재, 전세계에 긴급 뉴스로 타전할 수 있었다.


북한체제 정면 비판, 정치적 난민 강조

탈북자들은 대사관 진입 후 25인 명의로 발표한 영어 성명서에서 탈북 목적이 “식량과 압제로부터의 자유”라고 명확히 언급, 과거 탈북자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기존 탈북자들의 거사 이유는 대개 식량 부족으로 인한 기아 문제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압제로부터의 자유’라는 식의 북한 체제 문제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서 자신들이 ‘정치적 난민’임을 강조했다.

이들은 국제 인권단체와 사전 조율을 한 듯 스페인 대사관 내에서도 시종 자신들의 난민 지위를 요구했다.

탈북자들이 발표한 영문 성명서는 일본 도쿄에 있는 비정부기구인 ‘국제인권자원자들(International Human Rights Volunteers)’과 ‘북한난민을 위한 생명기금(Life Fund for North Korean Refugees)’이라는 단체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탈북에 간여했다는 한 국내 인사에 따르면 이번 탈북 작전은 미국 독일 일본 프랑스 벨기에 스페인 남미 등 10여개국 인권 운동가들이 참여한 ‘다국적 프로젝트’였다.

국내외 인권운동가 30여명은 지난해 말부터 이 거사를 기획했으며 최근 이 내용이 외국 정보기관에 포착될 조짐을 보이자 당초 계획보다 1주일 앞당겨 실행에 옮긴 것이다. 이 인사는 “국내 인사들은 조선족을 통해 탈북자들을 모으고 통역을 해줬고, 외국 인권 단체들은 서방 언론 및 NGO측과 연락을 담당했다”고 밝혔다.

국내외 인권단체와 국제 NGO의 합작품인 이번 ‘기획 탈북’이 완벽한 성공을 거둠에 따라 향후 같은 방식으로 제2, 제3의 탈북 엑소더스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중국 현지 내에서는 또 다른 비밀 프로젝트가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탈북을 직접 진두 지휘 했다고 밝힌 독일인 노르베르트 폴러첸(44)씨는 사건 직후 인터뷰에서 “독일 미국 프랑스 한국 출신의 인권 자원 봉사자들로 구성된 네트워트가 이들을 도왔다”며 “이번 탈북이 성공한 이상 앞으로 조만간 다른 150명의 탈북자들이 지구상의 어느 대사관에 진입하게 될 것을 확신한다”고 말해 이들이 또 다른 건을 준비 중임을 강력히 시사했다.

그간 대규모 집단 탈북의 상징적인 사건은 1987년 일가족을 포함한 11명이 북한을 탈출한 김만철 일가였다. 이들은 아무런 대책 없이 소형 선박을 타고 무작정 탈북을 시도했다가 그야말로 운좋게 국내 경비정에 발견된 꿈에 그리던 남한 땅을 밟았다.

그 후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무모한 탈북은 줄어들고 외부의 도움을 받는 방식이 등장한다. 1996년 12월에 있었던 김경호 최현실 일가 17명의 탈북은 미국에 살고 있는 가족이 사실상 전과정을 준비했다.

그러다 소위 국내외 인권단체들이 개입된 ‘기획 탈북’이 지난해 ‘(장)길수 가족’ 탈북 때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다.

길수 가족은 ‘길수 가족 구명운동본부’(대표 김동규 고려대교수)와 재일교포가 주축인 ‘북한민중구조 긴급행동 네트워크(RENK)’의 도움으로 이뤄졌다.

길수 가족은 두 NGO의 도움을 받아 탈북자로는 처음으로 베이징의 유엔난민 고등판무관실(UNHCR) 사무소에 진입, 사건 발생 4일만에 꿈에 그리던 한국 땅을 밟았다. 이번 25인의 탈북자들도 길수 가족처럼 국제 NGO의 각본에 따라 탈북 시도 27시간 만에 필리핀으로 추방돼 서울에 들어오는 데 성공했다.

국내외 인권단체와 국제 NGO가 공조한 ‘기획 탈북’은 길수 가족과 이번 사건에서 보듯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 있다. 우선 거행되는 탈북자 규모가 엄청나게 늘어났을 뿐 아니라, 사건 처리의 신속성 또한 그 동안 개별적으로 이뤄지던 개인들의 무모한 탈북과는 비교할 없을 정도다.


중국 ‘인권’의식 신속처리

이런 ‘기획 탈북’의 장점은 탈북 사실을 전세계 언론을 통해 신속하게 알려 국제 이슈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주재국인 중국이나 탈북자를 보호하고 있는 해당국 대사관측이 국제 여론을 의식, 탈북자들을 북한으로 송환하는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다.

세계 각국의 이목이 쏠려 있는데다 국제 NGO의 감시 눈초리가 있어 이들을 탈북자들을 함부로 처리할 수 없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지난번 길수 가족과 이번 탈북 사건에 대해 신속히 ‘제3국 추방’이라는 절차를 밟은 것도 ‘인권 탄압 국가’라는 이미지를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한국 정부측에 대한 압력으로도 작용한다. 한국 입장에서도 외교력을 시험 받게 되기 때문에 탈북자를 끌어 안는데 더욱 노력을 기울일 수 밖에 없다. 여기에 탈북자들에게 ‘정치적인 망명을 시도한 난민’이라고 주장하도록 사전 교육 시킴으로써 탈북자 처리에 대한 절차상의 문제를 매끄럽게 만들어 주고 있다.

이번 기획 탈북의 성공으로 앞으로 최소 20~30명 단위의 대규모 탈북 행렬이 이어질 개연성이 높아졌다. 그러지 않아도 최근 남한으로 내려오는 탈북자 수는 엄청나게 늘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이번 사건이 터지자 15일 하영섭(37ㆍ가명)씨 등 18명의 북한 이탈 주민이 최근 제3국을 통해 입국했다고 밝혔다. 국정원 발표에 따르면 올해만 입국 탈북자수가 113명에 달한다. 북한 주민들의 엑소더스가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북한 주민의 탈북 러시, 특히 ‘기획 탈북’의 증가는 국내는 물론이고 한반도 주변 국가간의 역학 관계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우선 교착 상태에 있는 남북, 북미 관계에 직접적인 걸림돌로 작용한다.

또한 우리 정부의 대 중국 관계 개선, 그리고 탈북자들이 진입한 대사관의 해당 국가와의 관계에도 적잖은 부담을 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국내외 인권 단체와 국제 NGO들은 중국 등 제3국을 통한 탈북자들의 인권 보호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것임을 다짐하고 있어 당분간 기획 탈북자들은 늘어날 수 밖에 없을 전망이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herosong@hk.co.kr

입력시간 2002/03/20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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