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중국바둑, 세계화의 물꼬를 열었다

'철의 수문장' 섭위평의 중일 슈퍼전②

섭위평은 오늘의 중국 바둑을 세계 속에 있게 만든 장본인이다. 조훈현이 멸시받던 한국 바둑을 세계 정상권으로 올려놓은 주인공이라면 중국에 있어서도 섭위평은 그에 못지 않은 선각자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중국의 조훈현이랄까.

그러나 중국에 있어서 섭위평의 위치는 조훈현의 한국에서의 위치보다 더하면 더 했지 결코 못할 것 없는 위치다. 조훈현은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 왔지만 섭위평은 중국에서 갈고 닦은 기량으로 세계 속에 우뚝 세운 인물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섭위평은 조훈현에게 패해 제1회 응씨배를 놓친, 불운한 중국 바둑의 대부 정도로 알고 있으나 어디까지나 그것은 조훈현의 기세가 더 컸기 때문이고 섭위평은 그보다도 몇 십 배 화려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의 얘기를 하면서 빠질 수 없는 해가 1975년과 1986년이다.

사람들은 1986년은 제법 안다. 중일 슈퍼전이 있었던 해이니까. 그리고 섭위평이 일본의 강타자들을 주르륵 베어 버렸으니까.

그러나 1975년은 잘 모른다. 중일 교류전에서 중국이 처음 일본을 이긴 해다. 그때 기라성 같은 스타들을 제치고 중국에서 "귀(耳) 셋 달린 이"가 중국 바둑의 대표주자로 선 해다.

중국이 바둑 수준을 현재의 실력으로 끌어올리는 데에는 일본 중국간의 바둑교류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일본은 독야청청한 실력으로 세계 정상의 실력을 자타가 공인해 왔지만 그 반면 너무 다른 나라와의 실력 차이가 나기 때문에 바둑이 세계화하는 데는 의문부호가 늘 따라다녔다.

따라서 일본은 자기 돈으로 자기와 맞설 수 있는 상대를 찾아 상당한 노력을 했다. 오늘날 한국 바둑이 일본을 제친 결과도 사실은 일본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을 그렇게 미워할 것만은 못 된다.

일본이 중국으로 눈을 돌린 것은 과거 오청원(吳淸原)의 발굴에서 알 수 있듯이 꽤 오래된 일이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은 1960년이다. 일본 바둑사절이 중국을 방문하여 서서히 서구세계로의 진출을 노리던 중국과의 묵계가 딱 맞아떨어졌다. 이때의 교류는 정치적 목적도 다분하였다.

중국측의 성적은 2승 1무 32패. 참으로 초라하였다. 중국측에서는 있는 고수 없는 고수 전부 다 찾아왔을 테지만, 일본측의 입장이야 어찌 그런가. 지금으로 치면 랭킹 10위권 기사가 '얼굴마담'으로 단장으로, 신예 기사라든지 중국을 가보지 못한 노장기사를 섞어서 갔을 테니까.

그러나 중국 기사들은 낮은 성적에 구애됨이 없이 열심히 교류를 갈구한다. 1967년 문화 대혁명으로 일시 중단될 때까지 총 5차례의 초청과 한 차례의 방일대국을 가졌다. 이때까지는 중국바둑의 개척자인 진조덕(陳祖德) 만이 겨우 일본의 노장기사와 상대가 되곤 했다. 문화 대혁명까지 5차례의 대결에서 1965년 11승 2무 22패가 중국이 거둔 최고의 성적이었다.

1961년 일본 여류기사 5단이 중국을 방문했는데 중국측에서는 아무도 승리를 거두지 못하였다. 1962년 일본을 답례 방문한 중국 선수단은 진조덕을 포함해 6명의 당시 최정예가 참가했으나 아마추어가 끼어있는 일본선수단을 12승 23패라는 참담한 성적으로 패배했다.

두 차례에 걸친 교류전은 뼈저린 참패로 판결 났다. 이미 패배는 예견된 일이지만 그렇게 패배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 냉혹한 현실은 중국바둑의 수준이 일본에 많이 뒤지고 있다는 사실을 중국 바둑계에 똑바로 인식시켰다. 그리고 "10년 내에 일본을 뒤를 따라가자"는 정치인들의 입김이 뜨거워졌다.


[뉴스화제]



진정한 국수(國手)는 바로 ‘조국수’

국내 최고(最古) 기전 국수전 도전1국에서 챔피언 조훈현 9단이 승리, 국수 타이틀 2연패의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

3월11일 한국기원 특별 대국실에서 벌어진 제45기 국수전 도전5번기 제1국에서 조 9단은 도전자 이창호 9단을 맞아 149수만에 흑 불계승을 거두고 타이틀 방어를 위한 베이스기지를 마련했다.

이날 대국에서 조9단은 중반 무렵까지 불리한 양상을 보였으나, 상변에서 포인트를 올리며 승기를 포착한 데다, 이어 등장한 이9단의 백100이 결정적인 완착이 돼 첫 대국을 무난히 승리로 이끌었다. 이날 승리로 조9단은 이9단을 상대로 109승 164패를 기록하게 되었다. 2000년 이후에는 7승10패의 성적.

도전 2국은 4월4일 전남 해남에서 벌어질 예정이다. 해남은 작년 왕위전 도전기를 벌일 예정이었으나 조훈현 9단의 기권으로 도전기가 무산된 지역.

진재호 바둑평론가

입력시간 2002/03/2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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